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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철이 지나고 있다. 11월쯤 첫 딸기를 먹던 아이들의 반짝임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여전히 딸기를 좋아하지만 초겨울 마트에서 처음 만난 그 비싼 딸기를 바라보며 짓던 함박웃음은 겨우내 딸기를 쏠쏠히 먹고 먹고 먹으며 점차 옅어진다. 이제 곧 수박이 나올 것이고 첫 수박을 자르는 그 순간, 아마 다시 물개 박수를 치며 소매를 걷어부치고 달려들 것이다.
 
이 세상 최고의 딸기
▲ 이 세상 최고의 딸기  이 세상 최고의 딸기
ⓒ 한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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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이 세상 최고의 딸기>는 바로 그 마음을 그리고 있다. 귀하디 귀한 딸기 한 알이 흔해지며 생기는 무덤덤함, '가장 소중하고 맛있는 딸기는 처음 먹었던 딱 한 알의 그 딸기였노라' 고백하는 북극곰을 보며 첫 설렘의 소중함, 적게 가져서 얻어지는 기쁨, 흔하다고,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님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아이는 그저 북극곰의 딸기를 바라보며 미소 짓지만 딸기 너머의 북극곰을 살피며, 소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어른인 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미니멀의 깔끔함을 동경하는 미디엄 맥시멈 어지러미스트라 정의할 수 있겠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미니멀은 못 되고, 그리고 맥시멀도 아닌 그 중간인데 정리 정돈에 재주가 없어 언제나 뭔가 어질러져 너저분한 그런 상태이다.

미니멀을 동경한다. 이것저것 치장하고 꾸미는 데에는 관심이 없어 사실 나의 소유는 미니멀에 가깝긴 하다. 옷도 많지 않고, 가방도 한두 개, 그릇도 결혼하며 시어머니께 받은 것 그대로에 아이들용 식판이나 스테인리스 접시 몇 개를 구매한 것이 전부이다.

소유욕 자체는 크지 않으나 문제는 아이가 둘이라는 것. 아이들의 물건은 내가 관장하는 영역이 아니다 보니, 아이들을 위한 물건이 집안 대부분을 자리하고 있다. 계절에 한 번씩 돌아오는 어린이날이며 크리스마스, 두 아이의 생일을 비롯한 크고 작은 이벤트마다 구매한 장난감들, 아이들의 소확행 뽑기 장난감들에 유치원에서 만들어 들고 오는 작품들, 아직은 정리하기 애매한 두 형제의 옷가지들, 내가 사주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사주시고, 물려주시는 장난감들에 우리 집은 그런 상태이다. 상상이 가능한, 아이가 둘인 집.

다행히 무언가를 사달라고 심하게 떼를 쓰거나 드러눕는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들의 쇼핑은 통제가 가능하다. 다만 때에 맞추어 새 장난감이 생기면 무언가는 비워야 하는데 그것이 아직은 너무 어려운 영역이라는 것이 문제다.

아이들과 상의하여 동의 하에 비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보니 한참 갖고 놀지 않은 장난감을 관찰한 후 내가 갖다 버리거나 나눔 하는데 그러면 꼭 귀신같이 그 물건을 찾는다. 그 물건들이 떠나면서 아이들에게 쪽지라도 남겨놓은 것처럼.

그러면 한동안 갖고 놀지 않았음을, 이제는 형님이 되어서 필요 없어진 장난감임을 주야장천 설명을 늘어놓게 된다. 기껏 돈 들여 장난감 사는 것도 일인데 비우는 것도 이렇게 일이라니, 첫 장난감을 들이던 날의 환호는 며칠 가지 못하는데 그 후로 한동안 공간만 차지하고, 막상 치워 버리기도 이렇게 힘이 든다. 추가로 버리는데 돈이나 더 안 들면 다행이다.

첫 딸기를 받아 들고 행복에 겨워하는 북극곰에서 딸기가 너무 많아 결국엔 심드렁 해지는 북극곰의 모습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기 때문에, 그래도 북극곰은 딸기로 케이크도 만들어 먹고, 파이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잼으로 만들어 쟁여 두고 일 년 내내 먹을 수도 있고, 친구들에게 선물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그저 이제는 딸기가 지겹다며 처음 받았던 그 딸기 한 알의 설렘을 그리워한다. 꼭 우리의 모습 같이.

북극곰은 그 많은 딸기들을 어떻게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꾸역꾸역 다 먹었을까. 설탕이나 냉동으로 저장하였을까, 친구들과 나누었을까. 아니면 혹시 버렸을까. 확실한 건 딸기가 없던, 혹은 한두 개만 있던 딸기 미니멀의 시절이 이 북극곰에게는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환경 동화 <쓰레기가 쌓이고 쌓이면>
 환경 동화 <쓰레기가 쌓이고 쌓이면>
ⓒ 한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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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쌓이고 쌓이면>이라는 또 한 권의 그림책이 있다. 미생물이 먹어 치우기 불가능할 만큼 너무 많은 것이 버려지는 요즘, 우리가 청소를 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쓰레기들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주는 환경 동화이다.

물자와 장난감이 흔하고, 포장이 당연해진 시대. 쓰레기와 지구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책이다. 새 장난감을 살 거면 집에 있는 것을 정리하고, 버리라고 이야기하는데 버려진 장난감이 이렇게 지구를 오염시킨다니, 버릴 수도, 안 버릴 수도, 살 수도 안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집 안에 차고 넘치는 장난감 안에서 아이들은 딸기 안에 파 묻힌 북극곰처럼 심드렁하다. 이를 어쩐다?

결핍이 귀해진 세상에 소유의 소중함을 배우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소유의 소중함을 알게 될 때가 있지만, 그건 비정상적인, 수급의 불균형으로 가격이 폭등할 때뿐이니, 오히려 그렇게라도 경각을 느끼고 소유의 소중함을 스쳐 느끼기라도 하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 둘을 키우며 집안에 짐이 엄청 늘었다. 아이가 하나라면 또 달랐겠지만, 아들이 둘이니 어떤 물건을 들여도 뽕을 뽑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구매가 쉬워진 탓도 있다. 이런저런 물건을 들이며, 또 버리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차라리 이런 육아 용품들, 애들 장난감이 백만 원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쉽게 안 살 텐데, 함부로 버릴 일 없고, 소중하게 두루두루 물려 쓰고, 환경을 위해, 나의 미니멀을 위해 그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북극곰의 딸기와 쌓이고 쌓이는 쓰레기에 관한 그림책을 읽으며 삶의 방향을, 소유의 본질을 생각해 보았다. 적게 사서 소중히 쓰고, 끝까지 쓰고 적게 버리자고. 깨끗이 치우며 우리 집에서 나간 쓰레기가 결국엔 어디로 갈지 생각하며 딸기 한 알에 몇 날 며칠을 행복해하던 북극곰처럼 살자고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올릴 예정입니다.


이 세상 최고의 딸기

하야시 기린 (지은이), 쇼노 나오코 (그림), 고향옥 (옮긴이), 길벗스쿨(2019)


쓰레기가 쌓이고 쌓이면

박기영 (지은이), 이경국 (그림), 웅진주니어(2010)


태그:#소유 , #쓰레기 , #미니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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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 교육과 독서, 집밥, 육아에 관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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