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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남쪽나라 산야(山野)에만 봄꽃이 있다던가요. 산과 바다 강과 들판이 아름다운 군산에도 지천에 봄꽃이 드러누워 피고 또 피어나네요"라고 남쪽 사는 지인에게 군산의 사월 대문을 활짝 열어주며 꽃 사진으로 안부를 건넸다.

삼월과 사월의 문턱이 얼마나 차이날까 했는데 신기하게도 지난 주말(4.1-2일) 사이에 군산의 봄기운은 일거에 일어났다. 덩달아 깨알같은 모습의 꽃눈들이 실룩실룩 거리더니 앞다투어 피어났다.

3월엔 봄바람따라 올라온 입소문으로 제주도의 유채꽃, 광양의 매화마을, 구례의 산수유를 즐겼다. 그다음은 누구일까. 봄의 얼굴에 가장 부드러운 분가루로 치장하고 나타나는 벚꽃이다. 이번에는 군산의 벚꽃으로 호강할 차례라고 일찍이 그리운 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마을어머님들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는 풍경
▲ 마을정자에서 바라본 월명산벚꽃  마을어머님들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는 풍경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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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이 있는 말랭이 마을은 월명산의 가운을 입고 있는 형국이어서 사방 어디를 봐도 벚꽃 천지다. 매양 그 꽃이 그 꽃 같지만 한 번이라도 그 속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을까 하고 어른들께 물었다.

"어머님들, 지난 주말 어떻게 보내셨어요. 벚꽃 구경이라도 하셨어요? 우리 마을에 핀 꽃만 봐도 배부르지요."
"꽃만 보면 보고 살 팔자면 얼마나 좋아. 주말마다 관광객들 대접하느라 시간이 없어. 그렇다고 우리가 놀러 가버리면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왔는데 누가 대접허겄어. 우리가 해야제."


과수원집 가족들은 싱싱하고 모양 이쁜 과일 한 번 못 먹어본다더니 딱 그 형국이었다. 마을 길목마다 집집마다 넘치는 꽃들과 초록 새싹으로 발뒤꿈치를 들고 다닐 정돈데 막상 마을 사람들은 자연의 그 사랑을 다 받지 못했다. 금주의 글방 수업은 야외체험활동이라고 전했다.
 
점심시간 산책나온 고교생들의 환호성으로 꽃이 더 피어났다.
▲ 월명호수로 내뻗은 벚나무 가지 점심시간 산책나온 고교생들의 환호성으로 꽃이 더 피어났다.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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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찾은 은파호수길
▲ 주말(4.1) 군산은파벚꽃길 야경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찾은 은파호수길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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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랭이 마을 주변에는 십여 개의 크고 작은 정자들이 있다. 문화마을 조성사업으로 산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정자를 만들어 놓으니 산책 나선 사람들의 쉼터로서 제격이다. 나만 해도 작년, 올해 두 번의 일출을 이곳에서 맞았고 종종 군산 말랭이 댁으로서 재밌게 살아갈 다짐을 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곳이다.

글방 학생인 어머님들은 돗자리를 깔고 수업 교재를 펼쳐놓고 기다렸다. 오늘도 한글수업 출석 백점이라고 칭찬하니 '빠지면 안 되지.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는디'라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어느새 자음 14개 글자와 연관된 단어와 문장 말하기를 마쳤다. 오늘은 모음 4글자 '아야오요'를 만나는 날이었다.
 
"어머님들, 뒤를 돌아보세요. 산빛이 신부 화장처럼 포샤샤 해지고 있지요. 우리 월명산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왔네요. 오늘의 수업은 두 가지예요. 모음인 '아야오요'가 들어있는 말하기 게임하고요, 두 번째는 우리 마을 꽃 사진 찍기예요. 명색이 우리가 마을 주인인데 손님이 와서 마을을 소개 해달라고 하면 꽃 얘기, 월명산 얘기도 하면 좋지요."


그때서야 어머님들은 하얀 벚꽃으로 물들은 월명산등성이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당신들은 어디를 보고 다니는지 정신이 없다고, 작가님 말대로 산천에 다 꽃이 피었다고 한바탕 행복한 비명이 있었다. 정엽어머님은 '야'자로 시작하는 말로 '얄미운 사람'을 외치고, 정자어머님은 '요'자가 들어있는 '요즘이 최고여'라고 나섰다. 자연과 함께 살아있는 한글수업 현장이었다.

오늘의 동화로 권정생 작가의 <오소리네 집 꽃밭>, 오늘의 시로 김용택 시인의 <꽃이 피고 새가 울면>을 함께 읽으며 마을 어른들은 정자마루를 배움의 즐거운 잔치마당으로 만들었다.

- 산에서 산벚꽃이 하얗게 날려오는 꿈 때문에 홀로 일어나 어둔 산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진달래꽃 핀 것을 보았지만 진지는 몰랐습니다. 산이 그렇게 혁혁한 공을 세우고 달빛이 방 안까지 깊이 찾아들어 내 얼굴을 덮었습니다 - (김용택시인의 '꽃이 피고 새가울면' 중)

"자 어머님들, 시도 읽고 동화책도 읽었으니, 지금부터 꽃 사진 찍어볼까요. 이번주 숙제는 쬐끔 어려워요. 꽃 사진을 찍고 그 옆에 글을 쓰는 거예요. 꽃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기도 하구요, 어머님들이 꽃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면 돼요."

"하고 싶은 말은 많지. 너는 피었다 져도 내년에 또 피는 인생인디, 나는 한번 가면 못 오는 인생이니 슬프구나. 잡초같은 민들레야, 네 인생이 부럽다. 밟아도 죽지 않고 이렇게 또 찾아왔으니 고맙구나."

 
핸드폰으로 처음 사진을 찍어본다는 그녀들의 설렘.
▲ 꽃 사진 찍는 마을 어머님들 핸드폰으로 처음 사진을 찍어본다는 그녀들의 설렘.
ⓒ 박향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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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을 가지고 있지만 사진을 한번도 찍어본 적이 없는 한 어머니는 핸드폰 화면을 꽃 얼굴에 대었다. 그러니 꽃사진이 찍히겠는가. 이게 맞는 건지 묻는 할머니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핸드폰의 뒷면에 있는 카메라를 보여주고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주니, 그때부터 보이는 꽃마다 연신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을 가지고 처음으로 별의별 것을 다해본다고 신기해했다.

골목길마다 피어있는 벚꽃, 목련, 산수유, 철쭉, 진달래, 제비꽃, 민들레, 흰민들레, 개나리, 명자꽃, 동백, 꿀풀, 봄까치꽃 등을 찍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눈물이 날까. 지금도 여전히 산말랭이 동네에 사는 그들의 외부적 삶에 큰 영화로움은 없다 할지라도 '몇 십년 동안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자신이 이제는 정말 자랑스럽다'라고 말할 만큼 자존감이 높아진 어르신들의 삶이 정말 멋지다.

산과 들이 불타오른다. 불타오르는 군산의 봄 산은 말랭이마을을 둘러싼 월명산에서 시작한다. 산 앞자락에 있는 금강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더해져 봄꽃으로 물드는 군산의 산야는 촉촉하고 뭉클하다. 어느 마술사가 이토록 아름다운 마법천지를 만드는지 자랑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전국의 상춘객들이여, 당신 봄의 멋진 추억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으시다면 군산으로 오세요.

<참고> 군산벚꽃풍경 주요 장소 남겨드려요. 은파호수길, 종합운동장길, 대야오일장길, 청암호수길, 월명산호수길, 월명수시탑과 삼일탑길, 오성산길, 고군산군도, 말랭이마을 벽화길(개화기 4.1-5.10)

태그:#군산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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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희망은 어디에서 올까요. 무지개 너머에서 올까요.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임을 알아요. 그것도 바로 내 안에. 내 몸과 오감이 부딪히는 곳곳에 있어요. 비록 여리더라도 한줄기 햇빛이 있는 곳. 작지만 정의의 씨앗이 움트기 하는 곳. 언제라도 부당함을 소리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희망 얘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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