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는 선거제 개편 논의로 한창입니다. 선거제를 어떻게 바꿀지도 문제지만, 국회가 결단해야 할 정치개혁 과제들도 산적해 있습니다. 선거제 개편이 아닌 개혁이 되기 위해, 나아가 정치개혁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매주 칼럼을 통해 논하고 평가해 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기자말] |
국회에 방문하려 했다가, 경찰에게 끌려나온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 마음이 급해서 질문이 좀 빨랐습니다.
혹시 국회를 방문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많은 분들이 국회에 직접 찾아갈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국회를 직접 방문해본 경험은 없으시더라도, 누군가로부터 서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으신 적은 한번쯤 있으시겠죠. 이런저런 법의 제정이나 개정을 위해서요.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라던가, 최근 전세사기 피해, 깡통전세의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던가요. 혹은 다른 서명도 있을 수 있겠죠.
그렇다면 여러분이 했던 서명은 어디로 가는지 아시나요? 대부분 국회로 갑니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가 없는 세상을 원했던 피해자와 활동가들도 제대로 된 피해자 구제방안을 담은 법을 만들라 촉구하기 위해 국회에 서명을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5월 23일 오전 11시,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피해자 대책위원회와 시민대책위는 8934명 시민의 서명이 담긴 박스를 품에 안고 국회 정문 앞으로 향했습니다. 국회 의원회관에 있는 민원실에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실 관계자를 만나 서명을 제출할 계획이었죠.
이는 국회 국토교통위 위원장실 측과도 이미 사전에 협의돼있던 사항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원실로 향하려던 기자회견 참가자 15명을 국회 정문부터 막아선 것은 다름아닌 국회 경호과와 경찰이었습니다.
한 순간에 국회 정문 앞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국회 경호과와 경찰이 그들을 막아서고, 펜스를 이용해 출입을 막고, 참가자들의 몸을 밀치거나 당기더니 끝내 끌어낸 것입니다. 경찰은 강제해산 명령을 내렸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참가자들이 다치고, 한 참가자는 탈진 증상으로 병원에 이송되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국회 경호과와 경찰이 출입을 통제한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민원실에 출입할 수 있는 인원은 5명까지인데 15명이 출입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국회 건물 안에서 농성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서명만 제출하고 오겠다'는데, 민원실 출입 인원을 왜 제한해야만 했을까요. 대책위와 시민대책위는 인원을 제한하는 근거 규정이 무엇인지 국회 경호과에 물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추정입니다만, 혹시 규정이 없어서 답변을 못한 것은 아닐지요.
국회, 중요시설인 것 알지만... '국가시설' 보다는 '국민시설' 돼야 하지 않나
국회는 국가중요시설, 그것도 최고로 높은 "가"등급 시설입니다. 국가중요시설이란 적에 의하여 점령 또는 파괴되거나 기능이 마비될 경우 국가안보와 국민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되는 시설을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경호체계를 갖추고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제 개인적 견해로 이름을 붙여보자면 국회는 '국가중요시설'보다는 '국민중요시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중요시설이 특정 집단에 의해 독점되거나 소통이 마비될 경우, 민주주의와 국민소통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는 국민과 제대로 된 의사소통 체계를 갖추고 국민의 의사를 듣기 위해서라면, 그게 어떤 자리라도 마련해야 합니다.
이게 어려운 임무 같다고요? 사실은 국회 스스로 어렵게 만든 것입니다. 각 의원실은 국회의원회관 3층부터 10층에 자리하고 있는데, 시민이 의원회관에 들어가려면 우선 사전에 약속을 하고 1층 접수대에서 자신의 신분증을 맡겨야 합니다.
그런 뒤 수하물검색기로 가지고 있는 소지품과 신체를 검사받아야 합니다. 만일 국회 건물 내에서 소란을 일으키거나 위협적인 도구를 소지했다면, 국회청사관리규정에 따라 출입이 제한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전에 약속된 층만 출입할 수 있도록 각 층마다 설치되어 있는 '스피드게이트'까지 지나야 합니다. 유권자가 직접 선출한 국회의원을 만나러 가겠다는 것 뿐인데, 마치 테러리스트나 잡상인이라도 된 기분입니다.
그러나 국회는 국회의원의 안전한 의정활동을 보장하는 수준을 넘어, 국민과의 상시적 소통을 가능케하는 곳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지 선거시기에만 유권자의 의견을 수렴해 제대로 일하겠다고 선언할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이날 시도했던 서명 제출 형식은 사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과 활동가들이 오랫동안 활용해온 의사표현 방식 중 하나입니다. 국회가 이를 문전박대하거나 폭력적인 수단으로 국민을 끌어내는 권력을 행사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국회를 시민 품으로... 국민에게 개방해야 한다
다시 아수라장이 된 국회 정문 앞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가"등급 국민중요시설의 '진짜 주인'인 국민이 정문을 지나가겠다고 합니다. 국민 15명이 또 다른 국민 8934명의 목소리를 담은 상자를 들고서요. 이걸 그 누가, 어떤 근거로 막을 수 있을까요.
국회라는 공간은 국민에게 원칙적으로 개방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가"등급 '국민중요시설'에 4년 동안 입주해있는 국회의원들에게 고합니다. 잊지 마세요. 선거는 1년도 안 남았고, 국민들의 국회 감시에는 휴일도 없다는 사실을요.
국민을 당연하게 끌어낼 수 있는 권력을 누리는 국회의원에게 또 다시 4년을 맡길 유권자는 없다는 것도요. 그러니, 국회를 시민 품에 안길 방안을 제대로 고민하셔야 한다고요. 지금, 국회를 열라는 시민의 주문을 이행해야 할 사람은 누구도 아닌 국회의원들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민선영씨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입니다. 이 글은 참여연대 홈페이지와 슬로우뉴스에 중복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