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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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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노사교섭에 응하지 않는 사업주를 비난하는 내용의 펼침막과 팻말을 내건 행위에 대해 사업주와 검찰은 명예훼손이라고 했지만 법원은 죄가 안된다고 판단했다.

30일 금속노조와 법무법인 '여는'에 따르면, 민주노총 금속노조 판매연대지회 조합원들은 경남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류준구 판사로부터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 지난 21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금속노조 판매연대지회 부산울산경남지역 조합원 5명은 통영에 있는 한 자동차 대리점 소속으로, 2020년 7~8월 사이 통영시 일원에 펼침막을 내걸고 팻말 시위 등을 벌였다.

이들은 대리점 대표로부터 현대자동차 본사 지원금과 캐피탈 인센티브를 지급받지 못했고, 이에 금속노조가 요청해 같은 해 6~7월 사이 다섯 차례 단체교섭이 진행됐지만 결렬됐다. 경남지방노동위원회는 노동쟁의 조정중지 결정을 했다.

당시 조합원들은 대리점 앞과 대표가 다니는 교회 앞에 "노동 3권 쟁취, 비정규직 철폐, 노동탄압 박살"이라거나 "직원 모두에 결과물인 지원금, 해도 너무합니다. 자동차 대리점 대표", "하루 종일 쫄쫄 굶겨가며 노예처럼 부려먹는 악덕 사업주", "당직자 점심 밥값조차 안주는 파렴치한 악덕사업주", "다 같이 이룬 지원금 혼자독식?" 등이라고 적은 펼침막·팻말을 내걸었다.

이에 자동차 대리점 대표는 조합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검찰은 "공모하여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피해자(대리점 대표)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기소해, 그동안 재판이 진행돼 왔다.

법원 판단은 달랐다. 류준구 판사는 조합원들의 행위는 형법(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돼 위법성이성립 안 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조합원)들의 행위는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이라는 목적 하에 사용자인 피해자에게 노사교섭에 응할 것을 요구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한 노조의 단체활동"이라고 판단했다.

대리점 쪽과 관련해선 "노동쟁의 과정에서 노동관계 당사자가 그 주장을 관철할 목적으로 행하는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인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했다.

쟁의행위를 두고는 "노조원 전원 찬성으로 계속된 쟁의행위의 시기, 절차상 요건도 갖춰졌고, 사용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거나 폭력적 방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므로 수단·방법상 요건도 충족됐다"고 봤다.

펼침막·팻말 설치에 대해서는 "그 특성상 사용자에 대한 사실 적시가 불가피하고, 정당한 쟁의행위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는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하거나 모욕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 이상, 사실을 적시해 사용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해하는 것은 사용자로서 감수할 필요가 있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또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것은 쟁의행위의 본질이고, 공소사실 기재 행위는 정당한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한 이상, 펼침막·팻말이 장기간 설치됐거나 창문(쇼윈도)을 가려 영업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해도 달리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조합원들이 대리점 대표가 다니는 교회 앞에 펼침막을 내건 행위에 대해 재판부는 "휴일인 일요일에 근무장소인 대리점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한 행위임을 고려할 때 대리점의 정상적인 업무 운영을 방해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조합 활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대리점 대표)가 피고인(조합원)들에게 당직근무를 시키면서도 당직식비는 지급근거가 없다면서 이를 지급하지 않아온 사실은 피해자도 인정하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적법하게 허가받은 집회장소에서 경영지원금, 인센티브를 자동차 판매원인 피고인들에게도 분배해주고 당직식비를 지급해달라는 내용으로 요구하면서 펼침막·팻말을 게시한 것인 이상, 교회 교인들이 예배를 위해 오가는 도중 이를 볼 수 있게 했다는 것만으로는 공소사실 기재 행위가 근로계약상의 성실의무를 위배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며 "이에 피고인들의 행위는 정당한 조합 활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검사는 명예훼손 혐의만 기소하고 모욕죄나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는 기소하지 않았지만, 재판부는 "집회시위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조합 활동의 하나로 이루어지는 펼침막·팻말 게시의 경우, 그 특성상 사용자에 대한 사실 적시가 불가피하다"며 "정당한 조합활동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하거나 모욕에 해당하지 않는 않는 이상, 사실적시로 사용자의 사회적 평가를 일부 저해하는 것은 사용자로서 감수할 필요가 있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고 보는 것티 타당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기소된 5명 가운데 4명은 '무죄', 다른 1명은 고소 취하와 명예훼손 처벌 의사표시 철회로 '기각'을 선고했다.

조합원들을 변론했던 김두현 변호사는 "조합 활동으로서의 적법한 집회를 허위도 아닌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것은, 조합활동과 집회를 노조법이나 집시법이 아닌 형법을 통해 우회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엄격히 판단돼야 한다"며 "법원이 집회가 조합활동으로 이뤄진 점을 고려하여 무죄로 판단한 것으로 타당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판결과 관련해 항소했다. 사건은 창원지방법원의 항소심에서 다시 다투게 된다.

태그:#창원지방법원, #자동차 대리점, #금속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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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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