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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 3월 13일부터 5월 12일까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우리들의 이야기'란 주제로 조합원 대상 수기 공모를 진행했습니다. 수기 공모 수상작을 <오마이뉴스>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기사수정 : 10일 오전 10시 52분]

안녕하세요. 저는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입니다.

최근 뉴스를 보다보면, 전국 병원에 전공의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천대 길병원 같은 경우 지원한 전공의가 없어 소아청소년과 입원진료를 중단했습니다. 지방일수록 전공의 부족은 더욱 심각합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도 예외는 아닙니다. 소아과에서 몇 년 째 근무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소아과에 지원하는 전공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근무 중인 신생아집중치료실은 간호 인력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고위험 신생아인 극소, 초극소 미숙아들도 많고 아이들의 중증도도 높으니 전공의 선생님들께서 많이 힘들어하고, 오기를 꺼려하는 부서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인력 부족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경험담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3월 어느 봄날 나이트(Night) 근무 출근이었습니다. 그날 제가 근무 선임이기도 했고, 막 독립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신규 간호사와 함께 해야 했던 터라, 조금 긴장한 채 집중치료실에 입실했는데, 다들 분주해 보였습니다. 이브닝 근무 선생님들이 인큐베이터에 아기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계시던 주치의 선생님은 쉬는 날이신지 야간 당직의가 내려와 있었습니다.

나이트 출근하자마자 들려온 소식에 심장이 콩닥콩닥
 
고위험 신생아의 경우, 보통 초기 응급처치가 아기의 예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한 판단으로 응급처치를 시행해야 합니다(자료사진).
 고위험 신생아의 경우, 보통 초기 응급처치가 아기의 예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한 판단으로 응급처치를 시행해야 합니다(자료사진).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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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주 6일 트윈(쌍둥이) 나온대."

불안함이 현실이 된 그 말을 듣자, 심장이 콩닥콩닥 빨리 뛰기 시작했습니다. 고위험 신생아 출산의 경우 어탠딩(attending)을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어탠딩이란 고위험 신생아 출산 시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이 출산에 참여해 바로 응급처치를 시행하고 신생아집중치료실로 데려오는 일을 의미합니다.

고위험 신생아의 경우, 보통 초기 응급처치가 아기의 예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한 판단으로 응급처치를 시행해야 합니다. 보통 어탠딩은 주치의 선생님의 일이지만 쌍둥이거나 삼둥이일 경우 PA(전담간호사)선생님이 함께 가주십니다.

하지만 그것도 데이(Day), 이브닝(Evening) 근무에 한정된 이야기입니다. PA 선생님들은 야간근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PA 선생님이 쉬는 날이거나 야간에는 일반 간호사가 가야합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NRP(신생아소생술) 교육을 받고 있지만, 담당 환자를 보다가 수술방에 가서 나오는 아기를 받은 뒤 처치까지 해야 하는 상황은 조금 버겁습니다. 

그날 태어날 아이는 쌍둥이였기 때문에 저희 나이트 근무 조에서 2명이 가야했습니다. 나이트 근무는 보통 6명이 하고, 보통 밤사이 각각 6~7명, 많게는 10명까지 아가들을 맡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은 안 계시고, 환자는 많고, 간호사 2명은 담당 환자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수술실에 가서 아기를 받아와야 하고… 한숨을 쉬며 담당 환자를 배정하는 데에만 몇 분을 쓴지 모릅니다. 차분하게 환자를 나누고 저와 다른 간호사 선생님은 이브닝 근무 선생님의 인계를 받자마자 수술실로 출발했습니다.

고위험 신생아 수술답게 수술실 안에는 긴장이 가득했습니다. 쌍둥이의 예상 몸무게는 900~1000g 내외. 야간 당직의와 아기가 나왔을 때의 시뮬레이션을 마치고 아기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다른 간호사 선생님이 먼저 첫째를 받아 처치를 하고 저는 더 작은 둘째를 받아 분만실 간호사, 당직의 선생님과 함께 처치를 시작했습니다.

정말 작았던 아이는 자극을 줘도 울지 않았습니다. 숨을 쉬지 않으니 산소포화도는 올라오질 않았습니다. 아기의 몸은 산소를 주는데도 시퍼래졌습니다. 더 지체할 수 없어 당직의 선생님은 기관 삽관(기도 확보를 위해 기도 내에 관을 삽입하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작은 아이여서 그런지 기관 삽관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옆에서 어시스트를 하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생아집중치료실에서 근무하면서 예후가 좋지 않거나 사망까지 하는 아기들을 여럿 봐 왔기 때문에 혹시 이러다 아기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어쩌지, 병실은 상태가 안 좋은 아기를 받을 준비를 잘 하고 있을까, 신규선생님은 잘 하고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엉켜 앰부를 짜는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없이 아이들을 보고
 
병원(자료사진)
 병원(자료사진)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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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기관 삽관 후 아기는 바로 회복됐고, 저와 당직의 선생님은 바로 수술실을 나왔습니다. 기관 삽관까지 하느라 시간이 꽤 오래 지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아기에게 안정을 주기 위해서 신생아집중치료실까지 온 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병실에 아이가 도착하자 다른 아기들을 보고 있던 선생님들이 쌍둥이들에게 바로 붙어 빠르게 도와주었습니다. 저도 도착하자마자 수술 가운을 벗고 아기를 조심히 옮기고 처치를 도왔습니다. 쌍둥이이기 때문에 각각 두 명씩 붙어도 남은 인력은 2명뿐이고 그 2명은 남아있는 아기들을 대신 봐줘야 했습니다.

인공호흡기와 모니터 알람, 배가 고파 여기저기서 우는 많은 아이들, 처치에 바쁜 간호사와 여러 오더들을 하는 당직의 선생님들... 정신없는 와중에도 신규선생님이 잘 하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신규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이 아기를 받느라 미처 보지 못하는 다른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비록 아기를 받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안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한시름 놓고 쌍둥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인공호흡기 세팅, 아기 상태 확인, 엑스레이 촬영, 수액 연결할 혈관 잡기 등 처치를 마치고 나서야 저는 제가 담당한 다른 아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른 아이들을 보는 사이 당직의 선생님은 쌍둥이 곁에 앉아 밤새 아기들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없이 아이들을 보고, 다음 근무조 선생님들이 오기 전에 신규 선생님이 놓친 것은 없는지, 실수한 것은 없는지 봐주고 나니 날이 밝는 게 보였습니다.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에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다행히 당직의 선생님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28주 쌍둥이들은 심박동수, 산소포화도 모두 밤사이 안정적이었습니다.

인력 부족이 해결돼야 하는 이유

다들 애써 준 덕분에 나이트 근무는 무사히 끝났습니다. 가장 신경 쓰였던 쌍둥이들의 상태도 좋았고, 신규선생님도 걱정했던 것보다 자신의 일을 무사히 끝내주어 고마웠습니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잘 끝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쉴 시간도 없었던, 정신없는 근무였지만, 그래도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 다른 아픈 아이들의 생명을 밤사이 잘 지켜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인력부족으로 인해 나타나는 이러한 일이 매번 좋은 결과만 가져다 줄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력 간호사들은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을 주로 보는데, 이제 막 환자를 보기 시작하는 간호사들의 뒤까지 봐줘야 하다보니 정신적, 육체적 부담이 굉장히 큽니다.

의사들의 인력 부족으로 인해 어탠딩 이외에도 다른 것까지 일반 간호사가 떠맡게 된다면, 간호사들은 환자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특히 예상치 못한 실수로 아픈 아기들에게 더 큰 아픔을 줄까봐, 그게 가장 걱정됩니다. 하루빨리 인력부족이 해결되어 온전히 아가들에게 집중하고 간호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하랑(가명)는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이자 현직 간호사입니다.


태그:#보건의료, #병원, #인력부족, #신생아집중치료실,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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