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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 확대나 비정규직법 제·개정 등 노동 전반의 사항에 대해 '노·사·정'이 논의하고 결정할 때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곤 한다.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의 테이블이 꾸려지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가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투쟁이었다.

2017~20188년, 노동자들이 문제 제기한 불법파견 및 임금 체불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SPC, 정당 등이 모여 사회적 합의를 맺었다. 그러나 SPC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고, 2022년 노동조합은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지회장과 간부 단식농성 등의 투쟁에 나섰다. 많은 노동 시민사회단체가 연대체를 꾸렸고, SPC로 하여금 다시 합의에 나서게 했다. 

파리바게뜨 노동자 투쟁은 상당한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많은 시민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지를 선언했고, 노동자를 착취해 산업재해 사망사고까지 이어진 SPC 불매운동도 전개됐다. 그 최일선에서 투쟁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아래 지회) 임종린 지회장을 지난 6월 14일 만나, 사회적 합의에 나서게 된 상황, 평가, 한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지회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2022년, SPC에 휴가 사용, 점심시간 보장, 모성보호, 2018년 사회적 합의사항 이행 등을 요구하며 임종린 파리바게뜨 지회장은 단식에 돌입했다. 지회장과 간부들의 단식 투쟁은 사회적 관심을, 또 한번의 SPC, 정치권, 시민사회와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2022년, SPC에 휴가 사용, 점심시간 보장, 모성보호, 2018년 사회적 합의사항 이행 등을 요구하며 임종린 파리바게뜨 지회장은 단식에 돌입했다. 지회장과 간부들의 단식 투쟁은 사회적 관심을, 또 한번의 SPC, 정치권, 시민사회와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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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의 불법파견과 임금 체불 문제를 세상에 드러낸 노조

2017년, 지회는 파리크라상의 불법파견과 임금 체불 문제를 드러냈고 회사에 교섭을 요구했다. 지회의 요구를 상당히 껄끄러워하던 회사는 법 위반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여러 방법을 써가며 지회의 교섭 요구를 피하거나 무력화시켰다.

"저희 제빵기사들은 전국의 11개 협력사랑 노동계약을 맺고 각 가맹점에 파견돼 일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파리크라상이 실제 업무 지시를 내렸기에 불법파견이었다는 게 인정됐죠. 또 본사 제빵기사들과 저희의 연봉이 1000만 원씩 차이 난 것도 임금 체불로 인정됐었죠.

이를 시정하라는 투쟁을 할 때, 회사는 처음에 제빵기사들이 파리크라상 소속 노동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어요. 심지어 제빵기사들한테 '파리크라상이 고용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서명까지 하게 만들었어요. 불법파견이라고 노동부가 인정했지만, 회사는 전혀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죠.

2018년 1월에 있었던 사회적 합의의 모습은 저희가 요구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지회는 이전에도 꾸준히 회사와 교섭하고 있었고, 합의서 초안도 저희가 만들었어요. 당시 회사는 불법파견이 인정돼서 과태료 500억 원(제빵기사 1인당 1000만 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기한(2018년 1월)이 오니까 합의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합의하러 간 자리에, 합의서 내용에 관여하지도 않았던 한국노총, 가맹점주협의회,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나와 있었어요. 을지로위원회는 가맹점주협의회에서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사회적 합의'가 체결됐습니다."


이후 회사는 한국노총 핑계를 대며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고, 지회 조합원들은 회사로부터 탈퇴 종용까지 받았다. 과연 지회에 사회적 합의는 약으로 작용했을까?

"합의서 초안을 작성할 때, 회사는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취하하면 위로금을 주겠다고 했어요. 저희가 한 발 물러서서 3년 안에 본사직과 임금을 맞추기로 했고, 복리후생도 맞추고, 또 과태료 납부 기간을 유예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어요. 직접 고용은 못 해도 본사가 51%의 지분을 갖는 자회사를 세운다는 내용이 들어갔고, 그 후로 논의를 위해 계속 만났어요.

저희가 노조를 세운 이후 다른 노동조합이 여러 개 만들어졌어요. 그러다 교섭 창구 단일화를 할 시기에는 저희 포함해서 한국노총, 기업노조 이렇게 3개 노조가 남았어요. 그런데 저희 빼고 두 노조가 연합노조라고 선언했고, 관리자들이 대부분 가입하면서 규모가 커졌죠.

이때부터 회사는 소수노조인 저희와 교섭할 필요가 없다면서 버텼습니다. 교섭권 있는 노조랑 협의해야 한다면서요. 위로금 주겠다고 했던 것도 한국노총이 반발하기에 민주노총에만 줄 수는 없다면서 없던 일로 만들어 버렸어요. 어떤 요구를 해도 한국노총 핑계를 대면서 아무 약속도 지키지 않았어요. 거기다 2021년 3월쯤부터는 관리자들이 저희 조합원들 찾아가서 민주노총 조합원은 진급이 어렵다고 협박했고, 저희 조합원들도 많이 탈퇴하고 그랬죠.

그런데도 회사는 사회적 합의 잘 이행했다고 행사까지 열었고, 저희의 임금을 본사 노동자들이랑 똑같이 맞췄다고 홍보도 했어요. 전혀 맞지 않는데도요. 그래서 저희는 또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노동조합이 사회적 지지를 얻어 사측을 압박하는 게 노동조합의 목표였을 테지만, 무책임한 사측에 더해 어용노조가 사측이 책임에서 벗어나도록 도우면서 지회의 발목을 계속해서 잡았다. 어느 순간 20배가 넘는 규모를 자랑하는 1노조가 된 한국노총 피비파트너즈 노조는 다수 노조라는 지위를 이용해 지회가 사측과 어렵게 체결한 노동조건 개선 내용이 담긴 합의를 무효로 만들기도 했다. 그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에게 적용되는 내용이라 할지라도.

2022년 2차 사회적 합의

2022년 파리바게뜨 사회적 합의 검증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SPC는 2018년 합의
사항 중 핵심 항목들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행한 것은 두 개뿐이고(파리크라상이 피비파트너즈 지분 51% 이상 보유, 노조가 고용노동부의 SPC에 대한 행정·사법처분 유예 요청), 노동자 처우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사간담회·협의체 운영 등 5개 항목은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

2018년 첫 번째 사회적 합의 이후 지회는 계속해서 사회적 합의 이행, 노조 탄압 중단, 점심시간 보장, 모성보호, 휴가권, 임금차별 시정 등을 요구하며 투쟁했다. 하지만 회사는 지회가 지속하여 요구한 임금표 제공 요구에 대해 가공된 자료만 보내올 뿐이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합의를 다 이행했다는 자축 행사를 열었다.

"회사는 지회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강요했어요. 그러다 2022년에 제가 단식을 시작했고, 시민들이 관심을 보이니까 회사가 합의 자리에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임금 자료는 보여줄 수 없다고 했어요. 간부들도 이어서 단식했고, 결국 회사를 테이블로 앉혔죠.

이 시기에 사회적으로 관심을 상당히 많이 받았어요. SPC그룹 계열사인 SPL 공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나서 SPC 이미지가 더 나빠졌죠. 그제야 회사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기 시작했어요. 비공식적으로는 임금이 맞지 않았던 걸 인정도 하고요. 그렇게 2차 합의를 맺고 임금을 맞춰가기 위한 대화도 외부의 인물과 함께 진행하자고 하던 중이었는데, 한국노총에서 합의서 무효소송을 제기했어요.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도 했고요. 회사와 지회가 비공개하기로 한 부속 합의서도 있었는데 그것까지 포함해서 가처분 신청했더라고요. 가처분은 인용됐어요. 

중요한 건 조합원의 임금과 처우를 개선해나가는 건데, 한국노총은 거기에는 관심 없고 자신들의 교섭을 부정하는 행위란 주장만 해요. 회사와 한통속이라고 볼 수밖에 없죠."


합의가 오고 가다가 결국 깨지는 것을 확인한 조합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회사가 그렇게 했다고 하면 '그럴 줄 알았다'는 냉소적인 반응을 해요. 서로 아쉽죠. 최근에 조합원들 만나면 그래도 2017년보다 나아지긴 했다는 말들을 합니다. 교섭을 하지는 못 해도 우리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해하니까요."

두 차례 사회적 합의의 의미와 한계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과 정의당 당원들이 2022년 10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SPC그룹 사옥 현관 앞에서 SPL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 노동자를 추모하며 노동자들의 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과 정의당 당원들이 2022년 10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SPC그룹 사옥 현관 앞에서 SPL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 노동자를 추모하며 노동자들의 안전 보장을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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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는 노사뿐 아니라 정치권이나 시민들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 때문에 기업에 분명 압박이 된다. 그러나 그 관심이 꾸준히 거세게 이어질 수는 없기에, 기업은 스리슬쩍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2차 사회적 합의에서 요구한 것이 합의서에 담기긴 담겼어요. 저희는 효력이 클 줄 알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행이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한계입니다. 사회적 합의가 이행됐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 것이고, 조합원 규모도 훨씬 커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쉬웠던 것 중에는 정부 역할도 있어요. 정부가 합의 이행이 됐는지 확인하고 후속 조치를 해야 했는데, 나타났다가 빠져버리니까 남은 사람들만 싸워야 하는 거죠."


조합원 동력과 함께, 여전히 지회에게 사회적 관심, 사회적 합의는 중요하다.

"같은 상황이 된다면 사회적 합의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여전히 저희에게 교섭권이 없잖아요. 뭔가 투쟁을 하고 정리할 필요도 있고요."

2018년과 2022년 두 차례 사회적 합의는 파리바게뜨지회의 힘찬 투쟁, 사회적 연대의 힘으로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행이 잘 됐다면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노동조건이 많은 부분 개선됐을 것이다. 그러나 교섭권이 없는 노동조합에게 사측은 오히려 책임 회피, 합의사항 무효화로 맞섰다.

'사회적' 합의는 말 그대로 사회가 만들어내고 약속한 내용이어야 한다. 그런데 말의 무게가 너무 가볍게 여겨졌던 것은 아닐까? 사측의 합의사항 이행, 또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정치의 역할이 있어야 그 이름에 합당하고 신뢰가 서는 합의가 되지 않을까? 

물론 가장 힘이 센 것은 단결한 현장 노동자들이다. 사측과 손 맞잡고 노동환경을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는 어용노조를 변화시키는 일도 현장을 스스로 바꾸려는 조합원들이 할 수 있다. 이것이 파리바게뜨지회로 뭉쳐 현장을 바꿔보려 한 노동자들의 희망이기도 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청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7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파리바게뜨지회_사회적합의, #SPC_합의불이행, #SPC_위험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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