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이 인생에서 가장 큰 관문인 대입이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는 것에 대해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설렘도 있었다.
어린 시절 광안리 바닷가에 살던 나는 여름이 되면 산수 문제집과 수건 한 장을 들고 바다에 나가곤 했다. 헤엄치고 놀다가 따뜻한 모래사장에 몸을 묻고 산수 문제집을 풀었다. 이런 내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는 부산에 계신 외할머니 댁에서 여름을 보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었다.
하지만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가 부산 외가에 갈 수 있는 기간은 여름휴가 3~4일 정도가 전부였고 그 기간은 아이가 꿈꾸는 여름을 보내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아이는 KTX만 태워주면 할머니가 역에서 맞아주실 테니 혼자라도 가겠다고 했다. 연로하신 할머니가 혼자서 감당하시기에 너는 아직 어리고 손이 많이 가니 고등학생이 되면 생각해보자고 아이를 달래왔다.
그러니까 아이 입장에서 고등학생이 된다는 것은 여름방학을 부산에서 지낼 수 있는 나이가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이가 원하고 엄마가 찬성한 일이니, 1학기 중간고사를 치고 어버이날을 전후해서 부산에 내려갔을 때 친정집 근처의 학원가를 돌아보며 공부할 학원을 물색하기도 했다.
다만 고등학교는 방학이라고 해도 자율학습이 있을 수 있으니 학원을 실제로 보내기 위한 준비는 고등학교 첫 방학의 실체가 드러난 후에 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여름방학의 실체는 이랬다. 기간은 3주. 다니던 학원에 쭉 다니는 건 문제가 없었지만 부산에서 방학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학원을 보내기도 안 보내기도 어중간한 기간이었다. 한 달 정도만 되었어도 자율학습을 안 보내고 외가에서 보내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말이다.
자율학습도 있었다. 아이는 주어진 규율을 충실히 따르는 성향이어서 학교 자율학습에 참여하기로 했다. 5월에 할머니가 무릎 수술을 하셔서 8월에 컨디션이 얼마나 회복될지 알 수 없다는 점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했다. 오후에는 학원 일정이나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자유롭게 나올 수 있지만 일단 오전 12시까지는 채워서 공부를 해야 출석으로 인정해준다고 했다.
아이는 오전 7시 반에 집을 나서야 했다. 시원한 교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좋은데, 점심 도시락을 준비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처음엔 학교에서 중식 신청을 받았다. 신청자 수에 따라 중식 가격이 달라지는데 결론적으로 한 끼에 1만 원에 가까운 단가가 나왔다. 비용 때문에 급식으로 중식을 제공하는 것이 취소되었다. 아이는 난감해 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밥에 김초밥 양념을 하고 반찬은 볶음김치 하나만 넣어주시면 돼요."
밥에 김치라니 다른 집에서는 상전이라고 불리는 고딩이 요구하는 소박한 도시락 메뉴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날라리 워킹맘 엄마라도 아침에 간단한 도시락을 싸는 것이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 도시락을 담을 그릇을 찾아 찬장을 뒤졌다. 앵그리버드와 헬로키티 캐릭터가 그려진 소풍용 도시락통이 나왔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 1년에 두 번 봄, 가을 소풍 갈 때만 쓰던 통이다.
생각해 보니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도시락을 싼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만 3세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고, 초등학교, 중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거의 매일 기관에서 식사를 준비해주신 덕분이었다. 아, 덕분에 짐을 많이 내려놓고 아이를 키웠구나. 뒤늦게 감사한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더불어 엄마 생각도 났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새벽 6시 40분이면 집을 나서야 했는데 그 아침에 밥, 국, 구이가 갖춰진 최소 5첩반상을 차려내고 오빠와 나의 도시락을 하루 두 끼씩 싸고 학교로 출근하셨다.
지치는 일과 끝에 도시락 뚜껑을 열며 오늘은 어떤 국이 들어있을까 기대하는 재미도 기억 저편에서 떠올랐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어요?" 여쭤보면 "그땐 다 그랬지"라고 심상하게 대꾸하신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유부초밥, 샌드위치, 초밥 양념에 볶음김치, 김치볶음밥에 계란 프라이, 온갖 간단한 메뉴를 쥐어짜서 도시락을 채웠다. 주말을 손꼽아 기다리며. 자율학습 기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와중에 7시 반에 나가는 아이의 시간을 맞추지 못해 학교 정문에 도시락을 맡기러 간 일도 몇 번인가 있었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도시락통을 넣기에 일반적인 에코백이나 종이백은 바닥의 너비가 부족했다. 억지로 넣으면 들어는 가지만 결국 좁은 바닥에 부대껴 비스듬히 쏟아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여고생의 도시락 가방으로는 위험해 보였다.
마침 바닥 크기가 도시락과 딱 맞는 종이백을 찾아냈다. 이걸로 여름방학 도시락 가방은 해결되었다고 좋아한 것도 잠시. 일주일이 지나자 종이 가방이 헤져서 쓸모를 다해버렸다. 종이 가방을 재활용 쓰레기로 보내주기 전에 가로, 세로, 높이를 재어 같은 크기의 가방을 만들었다. 도시락 가방이니 음식이 샐 수도 있어서 안감은 방수되는 천으로, 수저를 꽂을 수 있는 주머니도 넣어주었다.
자율학습의 지각 여부와 출결 현황은 성적에 반영되거나 입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음 방학 자율학습 때 지정석과 사물함을 배정해주는 소수로 선정될지에만 영향을 준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매일 아침 성실하게 집을 나섰다. 겨울방학에도 2학년, 3학년의 방학에도 아이는 이 도시락 가방을 들고 방학 자율학습을 할 것이다.
대문 밖은 위험하다지만 아이는 더위로, 추위로 잠깐 배움을 내려놓는다는 방학 기간에도 도시락 가방을 들고 문을 나설 것이다. 도시락 뚜껑을 열어볼 때 작은 즐거움과 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도시락이 들어있을 수 있도록 엄마의 내공을 좀 키워야겠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