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인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들어서며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인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들어서며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스토킹 살인사건 관련 국가배상금 소송에서 "112 신고에 '여자가 살려달라고 소리쳤다'는 내용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남자가 여자를 폭행했다는 것일 뿐" 등의 이유로 경찰의 안일한 대응을 눈감아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도 그는 아동 성폭행범 감형, '성평등 걸림돌 판결' 등 과거 사건에서 시대에 맞지 않는 성인지 감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서울중앙지법에서 근무하던 2007년 7월 스토킹 살인 피해자 유족들이 사건 당시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의 조치가 미흡했다며 제기한 국가배상금 청구소송에서 '경찰들은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범죄 정황을 확인하지 못하자 현장을 떠난 것이 비록 최선의 조치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범죄가 저질러진 주거에 강제로 진입하여 범죄를 예방하지 못한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이유였다.

초동대응 문제됐는데... "'소리쳤다'는 신고만으론 알기 어려워"

하지만 사건 내용을 들여다보면 '범죄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 2006년 9월 피해자 A씨는 연인이었던 B씨가 계속 '다시 만나자'며 나타나자 강간과 협박으로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한다. 긴급체포됐다가 풀려난 B씨는 약 일주일 뒤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A씨는 지인 C씨에게 전화를 했고, 그의 집 맞은편에 살던 이웃주민이 '계단에서 갑자기 여자가 살려달라고 소리지르고 남자가 여자를 떄리면서 끌고 들어갔다'고 112에 신고했다.

'남자가 여자 폭행'이라고 전달받은 뒤 출동한 경찰은 A씨가 살던 다세대 주택 앞에서 정확한 호수를 몰라 헤매던 C씨를 만났고, A씨의 집 초인종을 눌렀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C씨는 경찰에게 갑자기 '아' 하고 비명소리가 나고 전화가 끊겼고, B씨가 며칠 전 폭행사건으로 수사받은 적이 있는데 A씨가 폭행당하는 것 같으니 집안으로 진입해달라고 했다. 경찰은 '범죄 정황이 없고, 안에 누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으며 가족 등 동의 없이 강제로 문을 열 수 없다'며 거절했다.

경찰은 이후 다세대주택 관리인에게 협조요청을 했으나 관리인은 '수색영장을 가지고 오든지, 열쇠수리공을 불러서 문을 열라'며 거부했다. 경찰은 건너편 건물과 옆 건물 등에서 A씨의 집 내부를 확인하려고 했으나 시야가 가려져 불가능하자 112에 신고한 이웃주민에게 '주변에서 순찰을 하고 있을 것이니 다른 특이사항이 발견되거나 소리가 들리면 신고해달라'고 부탁하고 현장을 떠났다. 

한편 B씨는 A씨를 흉기로 찌른 뒤 자살을 시도하며 가족에게 연락했고, 현장에 도착한 그의 가족들은 112와 119에 '자살기도자가 있다'고 신고했다. 이후 경찰은 다시 출동했고,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대가 창문을 열어 내부로 들어갔을 때 A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유족들은 112센터와 지구대에서 최초 출동한 경찰들에게 신고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지 않았고, 현장 경찰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A씨가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1심 재판장이었던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신고에 '여자가 살려달라고 소리쳤다'는 내용이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112신고센터와 지구대가 이 사건이 단순한 폭행사건을 넘은 살인사건이라거나 피해자인 여자의 생명에 급박한 위험이 닥쳤다는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이 후보자는 또 "신고내용에 남자가 흉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등 살인 등의 강력범죄 범행을 예상할만한 어떠한 내용도 없었으며 경찰관들이 C씨 등으로부터 들은 내용도 역시 남자가 여자를 폭행했다는 것일 뿐"이라고 봤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집 안에 있다는 사실도 확신할 수 없"었으며 "피해자에 닥친 생명에 대한 위험은 절박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용이하게 알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앞서 본 바와 같이 경찰이 범죄가 저질러진 현장의 주거에 출동하여 C씨와 함께 피해자 집의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눌러보며,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문 앞에 조용히 있어보기도 하였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주변건물에서도 301호 내부를 살펴보고 순찰자를 이동시킨 후 계속해서 301호의 내부 상황을 살폈으나 범죄의 정황을 확인하지 못하자 현장을 떠난 것이 비록 최선의 조치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범죄가 저질러진 주거에 강제로 진입하여 범죄를 예방하지 못한 것이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원고(유족)들의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한다."

결국 뒤집힌 판결... "성폭행도 감형, 성인지 감수성 검증해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1년 뒤, 이 판결은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신고 내용과 현장 상황 등을 볼 때 성폭행 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가해자의 전력 등을 볼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는데도 경찰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봤다. 2009년 대법원은 이를 그대로 확정했다. 

이 사건은 10여년 전 일이지만, 이 후보자는 최근 재판에서도 다소 성인지 감수성에 둔감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2020년 서울고등법원에서 12세 아동을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 A씨가 '징역 10년을 선고한 1심은 부당하다'며 항소하자 "범행을 모두 자백하며", "2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라는 이유 등으로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징역 7년으로 줄여줬다. 2021년 강간 및 카메라이용촬영 사건 항소심에서도 비슷한 사정을 참작해 징역 7년을 3년으로 감형했다.

박용진 의원은 "이 판결은 스토킹 등 성범죄에 대한 이균용 후보자의 보수적 시각을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그는 "'여자가 살려달라 소리쳤다는 내용만으로는 생명에 급박한 위험이 닥쳤다는 사정이 인정되기 부족하다'고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밖에 성폭력 사건 감형, 서울 YMCA 여성회원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아 2007년 '성평등 걸림돌 판결'로 선정된 일 등 2023년에 맞지 않는 후보자의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관련 기사]
대통령실이 빼먹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과거 https://omn.kr/25b0l

태그:#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스토킹 살인, #성인지 감수성, #박용진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