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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은 단 하루도 금융과 분리된 일상을 생각하기 힘들다. 출근 시 교통요금 카드결제로 지불을 쉽게 해주고 적금·펀드 등으로 우리의 부를 관리해 주며, 가계로부터 자금을 모아 실물경제에 자금을 공급해 주고, 자동차보험, 무역보험과 같이 개인의 일상생활과 기업활동의 위험을 덜어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금융은 소중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역사 전문작가인 패트릭 와이먼(Patrick Wyman)은 <창발의 시대>(The Verge)에서 중세 후기 낙후되었던 유럽이 세계의 지배자로 등극한 주요인은 모험자본을 모으고 빌려주는 금융업을 발전시킨 데에 있다고 주장했듯이 금융은 인류문명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해왔다.

그러나 일반 시민이 느끼는 금융업에 대한 인식은 그러한 고마움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일상생활에 밀접하나 어렵고 복잡하며, 먼 옛날부터 고리대금업으로 상징되는 금융업은 부자들을 위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또한 금융업은 자신의 노력보다 더 큰 경제적 보상을 받는다는 인식으로 대중의 시선은 좋지 않다.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에 더욱 결정적이고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시장 참여자는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므로 정부는 시장에 간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지배해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금융회사들이 규제완화와 금융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신금융기법에 힘입은 위험부담행위를 계속함으로써 발생해 세계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

위기 대처 과정에서 납세자의 돈으로 여러 금융회사를 구제했으나, 회사 경영진은 고액의 성과보수를 받기만 하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구제금융을 둘러싼 사람들의 분노는 그들이 자격이 없음에도 부를 취득했다는 것이며, 그들의 행태가 너무 탐욕적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1년 저축은행사태, 2013년 동양그룹 회사채 사태, 2019년부터 환매가 중단된 여러 부실사모펀드 사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금융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2020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자영업자 등 서민대중은 커다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국내은행이 2022년 한 해 동안 이자수익 만으로도 56조 원을 버는 등 금융회사들은 역대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직원에 대해서는 거액의 성과급, 명예퇴직금을 지급하였다. 이에 대해 국민은 커다란 좌절감을 느꼈다.
 
고금리·고물가 여파로 상가 공실이 늘고 임대료는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분기 중대형 상가의 경우 공실률이 13.1%로 2분기와 동일했으나 소규모 상가는 2분기 6.6%에서 3분기 6.8%로 늘었다. 또한 3분기 상업용 부동산 임대가격 지수는 중대형 상가가 2분기 대비 0.04%, 소규모 상가는 0.08%, 집합상가는 0.06% 각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에도 불구하고 고물가, 고금리 등에 따른 경기침체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임대료가 전 분기 대비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2022년 10월 26일 오후 공실이 된 명동의 건물들 모습.
 고금리·고물가 여파로 상가 공실이 늘고 임대료는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분기 중대형 상가의 경우 공실률이 13.1%로 2분기와 동일했으나 소규모 상가는 2분기 6.6%에서 3분기 6.8%로 늘었다. 또한 3분기 상업용 부동산 임대가격 지수는 중대형 상가가 2분기 대비 0.04%, 소규모 상가는 0.08%, 집합상가는 0.06% 각각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에도 불구하고 고물가, 고금리 등에 따른 경기침체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임대료가 전 분기 대비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2022년 10월 26일 오후 공실이 된 명동의 건물들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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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공정해야 올바른 사회라 볼 수 있다. 올해 초 일반인의 공정에 관한 상식이 무시되는 판결이 있었다.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50억 원을 받은 것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이다. 오래전에 버스비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버스 기사에 대해서는 그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결정이었다.

이는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다. 강자의 부정의에는 관대하고 약자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했다. 세상이 공정하지 못하면 각종 비리가 만연하게 되고, 사회구성원 사이에 신뢰가 상실되어 정상적인 사회가 유지되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은 성과 그 자체보다는 공정성 여부에 민감하다. 시민들은 공정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경제구조를 갖기 원한다.

공정은 게임의 규칙이 올바르고 기회의 균등과 결과의 형평이 추구되어야 한다고 할 때 금융업은 이를 성취한다고 할 수 있을까? 금융업이 본래의 기능은 잘하지 못하면서 금융서비스의 가격만 높아 권한과 책임이 불균형하다면 과연 금융업이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가?

금융업의 공정성 논의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금융거래의 규칙이 올바른가이다. 금융상품은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 사이 계약의 규제를 받는데, 계약에는 당사자간 합의와 상호이익의 존재라는 정당성이 존재해야 한다.

누구나 생각하듯 복잡한 금융상품을 일반 소비자가 금융회사와 동등하게 협상할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 이러한 비대칭성을 극복해줄 제도(Rule)가 올바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 룰이 금융업자에게만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금융회사가 정치화되어 규제 당국과 긴밀히 연결되어 금융제도가 '그들만의 리그'에 유리하게 운영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둘째, 금융이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이다. 시장은 거래를 통한 시장 참여자 이익의 증가, 경쟁으로 인한 부당이득의 감소를 기대하는데 금융시장은 그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은행은 가계의 저축을 혁신산업 등에 대한 투자로 연결시키는 자금중개 기능보다는 손쉬운 가계대출로 이자소득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는가? 보험은 불확실성이라는 불안을 제거해주는 리스크관리 보다는 밀어붙이기식 판매에 치중하지는 않았는가? 증권은 기업의 장기자금 수급을 조절하는 자본시장에서 제 역할을 하기보다는 수수료 수익 사업에 편중하지는 않았는가?
 
반등세를 보이는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따라 특례보금자리론 금리도 반년 만에 인상을 앞두고 있다. 주택금융공사(HF)는 지난 1월말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이후 3월부터 5개월 연속 금리를 계속 동결해왔지만, 그동안의 재원조달비용 상승, 대출신청 추이 등을 고려해 오는 8월 11일부터 일반형 상품의 금리를 0.25%p 인상해 적용하기로 했다. 사진은 7월 30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특례보금자리론 상품 현수막이 걸려 있다.
▲ 특례보금자리론 금리 반년만에 인상 반등세를 보이는 주택담보대출 금리에 따라 특례보금자리론 금리도 반년 만에 인상을 앞두고 있다. 주택금융공사(HF)는 지난 1월말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이후 3월부터 5개월 연속 금리를 계속 동결해왔지만, 그동안의 재원조달비용 상승, 대출신청 추이 등을 고려해 오는 8월 11일부터 일반형 상품의 금리를 0.25%p 인상해 적용하기로 했다. 사진은 7월 30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특례보금자리론 상품 현수막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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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가 스스로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민간의 투자 활동을 지원하고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보다는 금융회사의 동기와 시스템이 지나치게 단기이익을 좇지는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금융감독당국도 그 역할 수행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금융상품은 복잡하고 변동성이 심하며 국제적으로 긴밀히 연동되어 있어 사전에 모든 금융사고를 막기는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금융감독당국은 '국가 위험관리자'로서 제대로 대응했는가? 또한 금융시장에서 '공정한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셋째, 은행의 예금·대출금리, 증권의 각종 수수료, 보험료 등 금융상품의 가격이 공정하며, 금융 종사자에 대한 보수는 적정한가 하는 점이다.

물론 모든 시장가치가 공공선에 기여 하는 정도와 비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980년대 이후 세계가 제조업 중심에서 금융업 중심으로 금융자본화 하고 있고, 금융업이 소수 면허받은 자들만이 영위하는 독과점 특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과연 금융이 사회에 기여 하는 정도의 서비스 가격을 받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올해 초 금융권의 보상 관련 논란은 금융업의 사회 기여가 커서이기보다는 팬데믹 시대의 과잉 유동성, 금리 상승기의 예대마진 확대 등 '우연성'의 결과로 성과를 과다하게 챙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존 롤스(John Rawls)는 우연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면 공정한 게임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영국의 금융감독청(Financial Services Authority) 청장을 지낸 아데어 터너(Adair Turner)가 비판하듯 금융규모가 커질수록 생산경제에 투입되는 자금의 비중은 작고 기존자산이나 파생상품으로 가 금융활동이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실물경제에서 지대(불로소득)만을 끌어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넷째, 금융업이 계약당사자인 금융소비자를 공평하게 대하고 고령자, 취약계층 보호 등 공공적 측면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금융업이 사회적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소수에게만 허가되는 것은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사회공헌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면도 있는 것이다.

금융이 이렇듯 공정성 측면에서 공감을 얻고 있지 못하더라도 비난만 하기에는 현대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다.

금융은 우리사회의 발전단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금융은 여전히 성장 잠재력이 큰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디지털 기술의 발전,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국민의 안정적인 노후를 지원하는 등 자본주의의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

금융은 인간이 만든 제도로 그 자체는 아무 잘못이 없다. 금융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을 뿐이다. 금융의 공정성은 기회의 균등, 결과의 공평을 넘어 금융업이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완벽한 금융은 없다. 또한 어느 상황에서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다. 현재 세상은 사회 경제적 문제가 시장의 힘에 많이 맡겨져 있다. 하지만 국가가 정의를 바로 세울 부분이 있고, 시민사회가 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현상을 정확히 분석해 논리적 대안을 만들어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금융시장 실패의 역사를 돌아보고, 우리나라 금융시장·제도의 공정성, 금융감독기구 및 금융회사의 역할, 금융소비자 보호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개선을 위한 생각을 나누어 보겠다.

태그:#금융의 공정성, #금융거래의 규칙, #금융의 역할, #금융상품 가격의 적정성, #금융의 사회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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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에서 30 여년을 근무하고 부원장보를 마지막으로 퇴직했습니다. 건전하고 공정한 금융질서 확립과 금융소비자보호라는 조직의 존재이유와 내 본성, 가치추구와의 어울림이 커 업무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올바른 금융시장을 위한 고민을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이 글이 금융업의 공정성제고를 위한 생산적 논의의 장이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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