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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와 조카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녀와 조카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권진현

추석이 코앞이다. 마트와 백화점 매대에 선물 세트 진열이 한창이다. 직장인들은 고향 방문이나 가족여행 계획을 잡느라 분주하다. 여느 때보다 어수선한 나라 안팎의 정세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상승의 기세는 서민들의 마음을 한없이 위축시키지만, 엔데믹 이후 처음 맞이하는 장장 6일의 연휴는 우울한 가운데서도 왠지 모를 기대감을 주는 것 같다. 

이번 추석에는 경기도에 있는 형의 가족이 부산에 올 예정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커가는 조카들을 볼 때면 빈약한 주머니 사정이 무색하게 뭐라도 쥐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진다. 자녀들은 사촌들과 함께 놀 생각에 벌써부터 잔뜩 흥분해 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며칠간 집에 머무는 것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아이 셋인 대가족과 며칠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나보다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아내의 입장에서 특히 더 많은 부담이 된다.

혹시나 제수씨가 조금이라도 불편하지는 않을지 꼭 물어봐달라고 형이 당부했다. 손님 치르는 게 보통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머무는 게 여의치 않을 경우 본가나 처가에서 머물러도 되니 조금도 부담 갖지 말라는 말과 함께. 

"당연히 괜찮지. 우리도 경기도에 가면 형님네 집에서 1주일씩 살다 오는데 뭐."

조카들과 함께 먹을 간식을 준비하는 준비하는 아내를 보며 아마도 즐거운 추석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풍요로운 한가위, 풍요롭지 않은 삶

가족구성원이 많던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80년대 생인 내 또래는 1~2명의 형제나 자매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명절 풍경도 내가 어릴 때에 비해 많이 단출해졌다. 지금도 어머니를 포함한 6남매는 명절 때마다 모이는데, 외가 어른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 자녀들을 데리고 가면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어색해하는 것을 느낀다.  

다음 세대들이 맞이할 명절은 어떤 모습일까? 갈수록 학력은 높아지는 반면 취업의 문턱은 좁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10대~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한다. 꽃이 제대로 피기도 전에 스스로 삶을 그만둘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 출산은 경사스럽고 축복할 대상이 아닌 국가부양을 위한 시민의 책무 정도로 치부되지는 않을까.

명절이면 가족과 친지들이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고 음식을 먹던 모습이 기억 한 편에서만 존재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낀다. 

"추석 때 부모님 용돈 얼마 드릴 거냐?" 

친구의 물음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육아휴직 중이라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용돈을 드리지 않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팍팍한 주머니 사정으로 풍요로운 한가위를 보내는 것은 꽤나 힘겨운 일이다. 

"차라 코로나 때가 좋았는데."

왠지 모르게 공감 가는 말이었다. 한창 거리두기가 강조될 때에는 모임 자체가 불가하다 보니 부모님과 조카들에게 줄 용돈을 아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엎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코로나가 고작 특정 지출을 줄여준다는 이유만으로 그립다고 하는 것은,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설, 추석 명절이 더 이상 풍요롭고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시사하는 게 아닐까. 

일자리가 절박한 취준생은 더 고달프다. 소득의 크기가 개개인의 가치로 환산되는 사회에서 구직자에게 추석 연휴는 그저 사치일 뿐이다.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취업을 해서 '인간구실'을 하거나, 끝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택받지 못한 채 비자발적 실업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위를 보면 각자의 본가가 멀리 떨어져 있는 부부들이 많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빠듯한 삶을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방문하는 시간 같은 것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런 삶 속에서 아이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1년에 한두 번 보는 사람' 정도로 인식되지 않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명절이 되면 부모님 댁을 향해 먼 길을 떠나지만,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는 방문은 기쁨과 행복이 아닌 부부간의 말다툼과 불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별하지 않아도

우리 집과 본가는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처가와 본가는 걸어서 3분 거리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접근성으로 인해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것에 늘 감사하다.

매주 일요일에는 3대가 함께 예배들 드리고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본가에서 식사를 한다. 종종 반찬을 얻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는 아이들을 맡기기도 한다. 양가 부모님 댁 방문이 잦은 나는 사실 명절과 평소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다.

작년 설에는 아버지를 뵙기 위해 본가가 아닌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2년 전 겨울 큰 수술 이후 아버지는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아 입원을 한 상태였다. 코로나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라 제한된 시간 동안만 면회가 가능했다.

여느 때처럼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떡국을 먹고 세배를 하지는 못했지만, 병실에서 부모님을 뵙고 아버지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것 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명절을 보냈던 것 같다.  

기억 한 편에는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명절이지만, 이제는 명절이라는 단어가 즐거움보다는 부담과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은 것을 느낀다. 사람들은 왜 명절에서 부담과 불편함을 느끼는 것일까? 어쩌면 '그래도 추석인데 (남들 하는 만큼)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일종의 부책의식이나 의무감 때문이 아닐까? 

추석이라고 해서 꼭 평소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어야 된다거나, 행복하기 위해 무언가를 추가적으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부모님께 많은 용돈을 드리지 못해도, 함께 할 가족과 친구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도, 남들이 추석 연휴를 즐길 때 꾸역꾸역 노동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할지라도,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설렘을 함께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의 무탈한 삶을 이어가는 것만으로 괜찮은 일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넉넉한 한가위를 보내기 위해서는 풍성한 음식과 물질,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버라이어티한 시간도 좋지만, 그보다는 매일의 삶 속에서 평안한 마음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 가을바람과 함께 추석이 성큼 다가온 요즘, 소소하지만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는 일상이 되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 게재합니다.


#추석#명절#현실#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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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래를 좋아하고 국밥과 칼국수를 사랑합니다. 가끔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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