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9월 7일 광주고등법원에서 열린 납북귀환선박 동림호 선장 신평옥씨의 재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지난 1971년 납북되었다가 이듬해인 1972년 귀환한 후 신평옥씨를 비롯한 선원들은 한국해상에서 조업 중 북한 경비정에 납치되었고, 사상교육이나 기밀누설, 간첩 지령을 수수한 바 없다고 주장했으나 당시 법원은 피해자들의 주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선장과 선원 모두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결국 반세기 만에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납북귀환 어부로 처벌받은 것 이외에 또 다른 수사기관의 처벌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신평옥씨와 함께 납북되었다가 돌아온 선원 중 신명구씨가 그 피해자이다.

신명구씨는 1972년 반공법 위반 등으로 기소되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나 고향 여수를 떠나 군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어업에 종사하며 생활하던 중 1976년 가을 갑자기 군산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연행된 이유는 납북되었을 당시 북한에 대해 보고 들었던 것을 동료 선원들과 이웃들에게 말해 북한을 찬양했다는 혐의였다.

 
 신씨 사건으로 기소되어 처벌 받은 피해자들이 기재된 판결문
신씨 사건으로 기소되어 처벌 받은 피해자들이 기재된 판결문 ⓒ
 
실제 군산경찰서는 신명구씨로부터 북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A씨를 연행해 모진 고문을 동반한 강도 높은 수사를 했다. 고문수사 결과 A씨로부터 자백받은 내용은, 신명구씨로부터 북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진술을 근거로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군산경찰서에 연행되어 조사받게 되었다.

여수엑스포역 내 카페에서 만난 당사자 신명구씨는"북한에 다녀온 뒤로 여수 경찰에서 너무도 심한 고문을 당하며 고생해서 북한의 북 자도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혹시라도 술이라도 마셨다가 실수로 북한 이야기를 할까 봐 술도 마시지 않았다니까요. 그리고 항상 경찰들이 우리 집과 주변을 돌며 늘 감시하고 있는데 어떻게 북한 이야기를 떠들고 다닌단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리고 내가 북한 이야기를 했다는 사람들은 같은 여수 사람들이어도 군산에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군산경찰서에서 몽둥이로 쥐여패는데 없는 소리도 했다고 해야 할 판이었어요"라며 강압에 의한 허위 진술이라고 했다.

실제 신씨가 군산교도소에 입감될 때 작성한 수용자신분장의 신체 특징에는 '다친 자리'가 두 곳이나 표시되어 있다.
 
 신씨의 수용자신분장에 기재된 신체 특징표. 다친 자리가 두 곳이나 표시되어 있다.
신씨의 수용자신분장에 기재된 신체 특징표. 다친 자리가 두 곳이나 표시되어 있다. ⓒ
 
결국 북한을 찬양한 혐의로 신씨는 징역 5년이라는 중한 처벌을 받게 되었고, 신씨로부터 북한을 찬양하는 말을 전해 들었다는 피해자들 역시 모두 불고지죄 등으로 처벌을 받게 되었다.

지난 10월 5일 군산에서 B씨를 만났다. B씨는 A씨로부터 신씨에게 전해들었던 북한 이야기를 재차 전해들었다는 피해자였다. B씨 역시 이 사건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은 피해자였다.
 
 피고인들은 신씨에게 직접 북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전해들었다는 이유로 처벌 받았다.
피고인들은 신씨에게 직접 북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전해들었다는 이유로 처벌 받았다. ⓒ
 
B씨는 면담에서 "나는 군산에서 신씨를 본 적도 없습니다. A씨와 제가 사촌지간이라 군산에서 같이 사는 저를 엮어 넣은 것이지요. 제가 군산경찰서에서 며칠간 갇혀서 조사를 받는데 어느 날 한밤중 옆방에서 A의 비명과 몽둥이로 사람을 때리는 소리가 '퍽퍽'하고 나더라고요. 그렇게 사람을 두들겨 패니 없는 소리도 했다고 해야지 별수 있겠어요?"라며 당시 군산경찰서에서 고문이 있었음을 진술했다.

B씨와 같은 혐의로 연행되어 조사받고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모두 20여 명에 이른다. 이들 모두는 B씨와 같이 신씨로부터 북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야기를 다시 전해 듣고 신고하지 않았다는 혐의였다.

그러나 당사자인 신씨는 북한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한 적이 없으며, 모두 군산경찰서가 고문으로 조작한 허위라고 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만난 공동 피해자들 모두 신씨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신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앞으로 열릴 재판을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그러나 적어도 누군가에게 직접 들은 내용도 아닌 '전언(傳言)의 전언'의 행위를 처벌했다는 점과 그 이야기라는 것이 북한의 실상에 대한 이야기 정도였다는 점에서 당시 군산경찰서의 처벌이 무리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 씨는 공익법률지원단체 '파이팅챈스' 소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 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파이팅챈스#FIGHTING CHANCE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