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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갑진년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 2024년 신년사 발표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갑진년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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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일 신년사를 발표했다. 대통령의 신년사는 지난 한 해의 국정 운영을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한 해의 포부와 다짐을 밝히는 내용인 만큼, 많은 주목을 받는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올해 신년사는 아쉬움을 넘어 문제적으로 보이거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내용이 적지 않았다. 그 중 네 가지만 짚어봤다.

① 가계부채·부동산 PF 잘 관리했다? 실상은 정반대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민생'이라는 단어를 9번 사용하며 민생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2024년을 "민생 회복의 한 해로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신년사 말미에도 민생 현장 속에 들어가 민생 정책을 추진할 것을 재차 강조했다.

민생 강조가 무색하게도 윤 대통령은 정작 민생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 현실과 정반대의 인식을 지녔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부동산 PF, 가계부채와 같이 우리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리스크는 지난 한 해 동안 잘 관리해왔고, 앞으로도 철저히 관리해나갈 것"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작년 한 해 윤석열 정부를 돌이켜보면 이러한 평가가 적합한지, 또 윤 대통령의 다짐이 믿을 만 한 건지 의심이 든다.

지난해 11월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91조 9000억 원으로 8개월 연속 전월 대비 증가했고 6개월 연속 역대 최대 규모를 갱신했다. 국제금융협회(IIF)가 지난해 11월에 발표한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3분기(7∼9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2%로 조사대상인 34개국 중 1위에 자리했다. 

이러한 가계부채 증가에 그동안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지적해왔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까지 올리며 고금리를 유지해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고자 했으나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 등 부동산 규제 완화와 시중은행에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함에 따라 가계부채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으로 그 심각성이 드러난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문제 역시 정부가 해결은커녕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9월 정부는 '9.26 공급 대책'을 발표하며 PF대출 보증의 규모와 대출한도를 확대하고 심사기준도 완화했다. 사실상 민간 금융기관들에게 부실한 부동산 PF대출을 유도함으로써 PF발 리스크를 조장한 셈이다.

이후 연말이 되도록 PF발 리스크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12월 12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나서서 "자기 책임 원칙의 진행이 불가피하다"며 그제서야 부실 PF를 정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태영건설의 PF 규모만 해도 9조 원에 달한다. 이런 와중에 <파이낸셜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두고 "은행이 지금 돈이 많다"며 얘기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사안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눈치다.

② 수출이 개선되고 경기회복과 성장 주도?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다가오는 한 해 동안의 다짐이 즐비하다. 국가정책이 으레 그렇듯 그 다짐이 1년 만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기에 신년사에는 전년 신년사와 겹치는 내용이 있기 마련이다. 윤 대통령 역시 작년 신년사와 마찬가지로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작년 신년사에서 강조했던 다짐 중 사라진 것도 있었다. 

2023년 신년사에서 윤 대통령은 세계 경제의 복합위기를 수출로 돌파해야 한다며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연대 속에서 외교의 중심을 경제에 놓고 수출전략을 직접 챙기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수출 영토를 전 세계로 확대해 나가기 위해 모든 정책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도 다짐했다.

하지만 올해 신년사에서는 작년과 같은 수출에 대한 다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 우리 정부는 민생을 국정의 중심에 두고 모든 노력을 다해왔다"고 자평했지만 그 예시로 건전재정 기조, 부동산 규제 철폐, 법인세 인하 등을 얘기했을 뿐 수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윤 대통령은 "글로벌 교역이 회복되면서 우리 경제 전반의 활력이 나아지고 수출 개선이 경기회복과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며 별다른 근거 없이 수출이 개선될 것이라는 낙관 섞인 전망을 내비쳤다. 수출 관련 언급이 사라진 까닭은 윤 대통령의 작년 신년사 속 호언장담과 달리 2023년 전체 수출액이 2022년 대비 7.4% 감소해 100억 달러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2023년 신년사에서 윤 대통령은 "새로운 기술과 산업을 발굴한 나라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며 새로운 미래기술·전략기술에 대한 투자와 지원에 대한 다짐에 8줄을 할애했다.

반면 올해 신년사에서는 관련 내용이 단 한 줄에 그쳤다. 제아무리 윤 대통령이라도 작년 신년사에서 정부의 기술 투자를 강조하며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도 처음으로 정부의 R&D 투자는 30조 원의 시대를 열었다"고 자찬한 사실은 부끄러웠던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③ 비판 언론은 압수수색하면서 외신 칭찬 강조 

한편 윤 대통령은 이번 신년사에서 <이코노미스트> 등 외신의 현 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강조했다. 우리 정부를 향한 외신의 긍정적 평가를 폄하하고픈 마음은 없을뿐더러 그러한 평가를 신년사에서 언급하는 것 역시 그 자체로는 잘못됐다고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도 윤 대통령을 향한 질책을 아끼지 않는 와중에 국내언론의 비판에는 귀를 닫고 심지어는 '가짜뉴스' 딱지에 압수수색도 강행하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한 외신만을 추켜세우는 행태를 보면, 소인배스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난 한 해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외신 또한 적지 않았다. 윤 정부를 칭찬하는 언론만을 참언론으로 여기는 걸까.

④ 동어반복 신조어, '패거리 카르텔'

윤 대통령의 '카르텔' 사용은 지난 2021년 6월,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당시에도 쓰였을 정도로 그 사용 기간이 길었으나 신년사에는 올해 처음 등장했다. 이권 카르텔, 사교육 카르텔에 이어 등장한 카르텔은 바로 '패거리 카르텔'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지금까지는 적어도 노조나 전 정부, 사교육계 등 특정 집단을 콕 집어 카르텔이라고 지칭했다. 이번에는 별다른 특정 없이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이 카르텔이라는 용어를 써왔던 선례를 돌이켜볼 때 '패거리 카르텔'은 '역전앞'과 같은 일종의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기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카르텔을 써왔을 때의 상황을 돌아보면, 카르텔의 원래 뜻인 '공급자 담합'보다는 '같이 어울려 다니는 이들을 낮잡아 부르는 명칭'이라는 패거리의 사전적 의미와 더욱 맞아떨어지잖는가.

이처럼 윤 대통령의 이번 신년사는 그릇된 현실 인식과 지난 다짐에 대한 무책임한 망각, 편협한 언론관과 뚜렷한 대상조차 없는 비난으로 얼룩진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제 고작 이틀 지난 2024년의 앞날에 희망보다 걱정부터 앞서는 까닭이다.

태그:#윤석열, #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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