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공격하도록 러시아를 격려하겠다고 말하자 서방 사회가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1일(현지시각) 성명에서 "동맹이 서로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는 미국을 포함해 우리 모두의 안보를 훼손하고 미국과 유럽의 군인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린다"라고 밝혔다.
이어 "나토를 향한 모든 공격에 회원국들이 단결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며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든 미국이 강력하고 헌신적인 나토 동맹국으로 남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강조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엑스(옛 트위터)를 통해 "나토 안보에 관한 무모한 발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도와줄 뿐 세계에 더 많은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EU가 시급히 전략적 자율성을 더 발전시키고 국방에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라고 평가했다.
NYT, 한국전쟁 예로 들며 트럼프 발언 비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유세에서 방위비 분담 협정을 지키지 않는 나토 회원국들을 향해 "나는 그들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가 원하는 것을 내키는 대로 다 하라고 격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 회원국들이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국방비 지출' 목표에 합의했으나 2023년 기준으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19개국이 이를 지키지 않을 것을 꼬집은 것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동맹보다 적국을 편들면서 국제 질서를 뒤엎겠다고 위협했다"라며 "그가 다시 백악관에 오면 세계 질서에 광범위한 변화를 예고했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첫 집권 때도 나토의 집단방위 개념을 믿지 않았고, 동맹국들에 더 많은 부담을 압박해 왔다"라며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그렇게 했지만, 동맹국을 공격하라고 적국을 선동하겠다는 발언은 전현직 대통령을 통틀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역사는 그런 발언이 전쟁을 막는 것이 오히려 더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라며 "1950년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제외한 '방위 경계선'(애치슨 라인)을 발표한 지 5개월 뒤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다"라고 한국전쟁을 예로 들기도 했다.
나토 회원국들, 약속 안 지켰지만... "트럼프, 선 넘었다"
영국 BBC방송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그 발언이 진심은 아닐 것"이라며 "자극적인 발언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비평가들을 화나게 하며 지지자들을 흥분시키는 전형적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방식"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푸틴이나 시진핑이 동맹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의심하면 엄청난 오판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국방 전문가 패트릭 버리 박사는 BBC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일부 유럽 국가들이 나토의 GDP 2% 국방비 지출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미국의 분노를 반영한다"라며 "그는 나토 회원국들 방어하기 위해 미국이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나토 회원국들을 압박하는 것은 맞다"라면도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선을 너무 넘었다"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러시아 격려 발언에 대해서는 미국 내부에서도 비판의 쏟아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과 동맹국에 대한 지원은 미국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라며 "끔찍하고 위험한 발언"이라고 밝혔다.
앤드루 베이츠 백악관 대변인도 "살인적인 (러시아) 정권이 우리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을 침략하도록 격려하는 것은 끔찍하고 불안정하며 미국의 국가 안보, 세계 안정, 국내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