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생인 기자로서는 10년 전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사건이다.
참사 당일 단원고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던 기자는, 당시 수업 3교시에 배가 침몰했지만 전원 구조됐다는 얘길 듣고는 안심했었다. 그리곤 점심시간 이후 들어오는 선생님들의 표정을 보고는 '뭔가 잘못됐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 선생님들이 짓던 표정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서울시청에서 기억문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대전에서 서울로 단숨에 올라갔다. 사람들과 함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며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다짐하고 싶었다. 지난 13일 서울시청 앞 열린 '4.16기억문화제 in 서울' 이야기다(관련 기사:
"10년간 우리 멋졌다" 서울시내 메운 '세월호 시민들' 눈물과 미소 https://omn.kr/28axw).
노란리본 만들려 인산인해... 30여 개 각양각색 부스 참여해
오후 3시부터 사전 행사인 시민참여 부스 주변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노란리본 제작소' 앞에는 노란리본을 만들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방불케 했고 '노란나비 입양소'에서 노란나비를 입양한 어깨에, 머리에, 가방에 붙이고 있었다. 필자 역시 모자에 나비를 하나 데리고 다녔다.
서른 개가 넘는 부스는 각양각색이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이 구조적인 안전 미비로 인해 참사가 발생한 오송 참사와 10.29 이태원 참사의 시민대책위 부스도 있었다. 특히 오송 참사의 경우 '기억과 다짐의 나무'를 설치해 추모 및 오송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나뭇잎에 적을 수 있도록 했다. 나뭇잎에는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적 재해다", "잊혀지지 않게 기억하고 행동하겠다" 등의 문구가 써있었다.
이외에도 기후위기와 동물권, 젠더 문제를 안전사회와 연결지어 얘기하는 부스들도 다수 있었다. 기후재난이 가시화되고 여성과 성소수자, 비인간동물을 향한 폭력이 계속되는 한 세월호 참사와 같은 참사가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문제의식에 공감이 갔다.
눈에 띄었던 부스 중 하나는 한베(한국·베트남)평화재단의 부스였다. 부스에는 세월호 희생자 중 한 명인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판응옥타인(한국이름 한윤지)씨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참사 당일 한씨는 남편과 아이 둘을 데리고 제주로 이사를 가던 중이었다. 일가족 중 자녀 한 명만 구조되었단다.
가장 많이 주목받는 희생자들은 단연 단원고 학생들이지만, 이외에도 비교적 주목받지 못하는 희생자들의 얘기가 더 알려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돼보니 그 슬픔 와닿더라"
행사 참여가 아닌 길을 지나가던 행인들도 자연스레 노란리본과 노란나비를 받으러 부스에 오기도 했다.
부스를 유심히 살펴보던 한 외국인은 기자에게 영어로 무엇을 위한 행사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참사 10주기를 맞아 열린 것이라고 답하니 '그렇다면 memorial(추모)와 protest(저항, 항의) 중 어떤 성격의 행사냐'고 재차 묻길래, 내가 둘 다라고 얘기해주자 이해했다는 듯 감사를 표하고 자리를 떠났다.
세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도 있었다. 정승운씨는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돼 찾아왔다. 아이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 태어났는데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자식 잃은 슬픔이 더욱 와닿는다"면서 "오송 참사, 이태원 참사 등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계속 참사가 일어났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안전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계속 기억하고 함께 기억해야 하지 않겠나. 아이들과 함께 기억하고 싶어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노란나비를 등에 붙인 정씨의 아이들은 마치 자그마한 날개를 단 것만 같았다. 노란 바람개비를 들고 천진무구하게 장난치며 웃는 아이들을 보니 비단 부모가 아니더라도 저 아이들의 웃음을 지켜줄 의무는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지켜주지는 못했지만
이후 5시 30분이 되고 문화제의 본무대가 시작됐다. 여러 인사들의 발언들을 지켜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난 10년의 세월이 묵묵히 묻어난 얘기들이었다. 특히 세월호 희생자들과 같은 세대라고 소개한 하제인씨가 또렷또렷한 큰 목소리로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고 비판한 것과 달리 휴대폰을 쥔 손은 덜덜 떨고 있었다. 떠는 그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동세대로서 그 떨림이 너무 이해가 갔다.
또 단원고 희생자들과 또래거나 더 어린 단원들로 이루어진 떼루아유스콰이어합창단이 노래 '네버엔딩스토리'를 합창할 때는 눈물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가사 중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라는 대목은 10년 전 구조자의 수가 늘어나지 않는 텔레비전 생방송을 몇 시간째 보며 극심한 무력감을 느꼈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 그러한 무력감을 느낀 사람은 기자뿐만이 아니었을 테다.
200여 명의 시민합창단 합창을 끝으로 문화제는 막을 내렸다. 본행사 내내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렸다. 하지만 굳이 눈물을 멈추기보다는 그 눈물과 함께, 슬픔과 함께하면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무력감을 뛰어넘어 그런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끔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10년의 세월은 분명 슬펐지만 또 동시에 서로의 연대를 확인한 희망의 세월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희망찬 웃음 대신 희망찬 눈물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