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매일매일 일곱 명씩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일터에서 죽는다. 일터에서 위험한 일을 하다 죽은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단순히 '일하다 위험하면 멈출 수 있는' 권리였을 것이다. 물론 법은 위험하면 멈출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선 '아무리 위험해도 멈출 수 없다'고 한다. 일하는 현장에선 작동하지 않는 작업중지권, 그리고 그렇게 위험해도 일하다 다치고 죽어간 노동자의 이야기. [기자말]
2021년 4월 28일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대전운동본부와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 등 대전지역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대전 대덕구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앞에서 '노동자 건강권 쟁취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대전지역 최악의 산재살인기업 한국타이어 규탄' 기자회견을 연 모습.
 2021년 4월 28일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대전운동본부와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 등 대전지역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대전 대덕구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앞에서 '노동자 건강권 쟁취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대전지역 최악의 산재살인기업 한국타이어 규탄' 기자회견을 연 모습.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2020년 11월,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노동자가 벨트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빠르게 회전하는 설비에 부착된 센서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이를 인식해 자동으로 설비를 멈추게 돼 있지만, 센서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타이어엔 이런 종류의 사고가 빈발한다. 지난 2023년에도 비슷한 공정에서 사람이 죽었다. 마찬가지로 설비 오작동과 고장에 의한 사고였다. 당시 한국타이어 사측은 "(노동자) 부주의도 사고의 원인일 것"이라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2022년 6월, 2년 전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은 설비가 같은 증상으로 오작동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센서가 인식하지 못했고 오히려 더 빠르게 회전하기도 했다.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지회장은 이를 발견하자마자 사측 관리자에게 설비 오류에 따른 안전문제를 지적하며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사측 현장 관리자는 "권한이 없다"며 작업 중지를 거부했다.

위험한 상태에서 작업을 진행할 수 없던 지회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작업 중지권'을 발동했다. 그는 설비를 멈추고 안전을 확보한 후에 작업을 재개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회사로부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했다.

당시 노동청과 산업안전보건청은 현장을 확인하고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다. 노동청은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대한 규칙 제87조'를 적용하여 "작업자가 회전체에 접근하면 설비가 정지되도록 해야 한다"는 시정지시서를 한국타이어에 전달했다. 설비 고장에 따른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작업중지권이 적절히 사용됐음을 노동청이 확인한 셈이다.

회사도 시정명령을 받아들여 설비 개선을 완료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작업중지권을 발동한 지회장을 비롯해 3명의 노동자에겐 '아무 이유 없이 무단으로 가동을 중단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회사에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은 작업을 중단할만한 이유가 아니란 의미일까. 

유명무실한 작업중지권... "위험하면 멈출 수 있어야"
 
충청권 민주노총 지역본부는 지난 3일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 선포 및 안전한 일터, 안전한 사회 쟁취' 기자회견을 열고,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촉구했다.
 충청권 민주노총 지역본부는 지난 3일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 선포 및 안전한 일터, 안전한 사회 쟁취' 기자회견을 열고,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위험해지면 작업을 멈출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법이 보장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선 작업중지권이 유명무실하다. 위험을 감지한 노동자들이 작업중지를 요청해도 회사가 이를 거부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현대제철 인천공장에서 발생한 설비 고장 사고도 회사가 작업중지를 받아들이지 않은 탓에 벌어진 사고다.

철근을 옮기는 기중기의 레일이 고장 난 것을 본 노동자가 작업중지를 요청했지만 현대제철이 철근 생산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고장 난 레일 때문에 기중기 운전석이 레일 밖으로 밀려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전에 위험을 발견한 노동자가 레일에 스토퍼를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인명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회사는 오히려 노동자에게 '중대한 과실'을 이유로 감봉 징계를 내렸다.

한국타이어도 현대제철도 손해배상 청구로 법이 보장하는 작업중지권의 발동을 가로막았다.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보다 당장의 생산과 이윤이 더 중요하다는 태도다. 나아가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로 으름장을 놓으며 작업중지권을 무력화하고 있다. 작업중지권을 사용할 때마다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린다면 어떤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사용할 수 있을까. 

작업중지권은 대단한 권리가 아니다. 그저 위험하면 일을 일단 멈출 수 있게 하자는 아주 기초적인 권리다. 작업중지권을 무력화한다는 것은 '목숨이 위험해도 일하라'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타이어 공장에서 고속으로 돌아가는 벨트, 제철소의 뜨거운 쇳물과 수만 톤의 철근 앞에서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노동자의 목숨은 고장 나면 갈아 끼울 수 있는 부품이 아니다. 위험하면 멈출 수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 부지회장입니다.


태그:#작업중지권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타이어지회 노안부지회장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