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22 13:42최종 업데이트 24.07.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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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모습. ⓒ 연합뉴스

고민 끝에 한 고발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것이 명백한 집단에 '셀프 수사·기소'를 해 달라고 하는 고발이었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조직적 불법폐기 사태

지난해 6월 13일, 검찰로부터 사상 최초로 특수활동비 자료를 공개받았다. 그런데 대검찰청의 경우 2017년 4월 이전의 특수활동비 자료가 폐기된 상황이었다. 담당 실무자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후에 자료공개를 위해 밀봉된 자료를 열어보니 2017년 4월 이전 자료가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의 경우에는 2017년 5월 이전의 자료가 없어졌는데, 대검찰청과 마찬가지로 담당실무자는 '밀봉된 자료를 열어보고 나서야 자료가 없는 것을 알았다'고 밝혔다. 


검찰 담당자들의 얘기를 듣자마자 너무나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 더구나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윤석열 지검장이 취임한 시점이 2017년 5월 19일이므로, 특수활동비 자료 폐기시점은 윤 지검장 취임 이후로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영렬 전 지검장은 돈봉투 만찬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감찰을 받게 되었으므로, 이영렬 전 지검장이 폐기했을 가능성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한 범죄였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1999년 1월부터 '공공기관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현행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2007년 명칭 개정)'이 시행되고 있는데, 이 법률에 따르면 공공기관의 자료를 무단폐기하는 행위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후 <뉴스타파>의 취재 결과,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외에도 전국 57개 검찰청에서 자료 불법폐기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상 초유의 조직적인 자료 불법폐기 상황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자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나서서 문제를 덮으려고 했다. 한 달 또는 두 달에 한 번씩 특수활동비 자료를 폐기해 왔다면서, 그것이 마치 관행인 것처럼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검찰 내부 교육자료에 '폐기하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그러나 자료 무단폐기는 명백한 범죄다. 2023년 3월 서울의 어느 사립대 교수가 '이물질이 묻은 답안지를 폐기'했다는 이유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대학교 답안지를 폐기해도 범죄로 보는데, 검찰조직이 거액의 국민세금을 사용해 놓고 그 자료를 조직적으로 폐기했다면 그건 심각한 범죄이다.

그런데도 법무부 장관이 범죄를 비호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횡령이나 절도가 관행이어도 처벌 안 할 텐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023년 7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찰 특활비 관련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범죄가 관행이었다고 해서 면책될 수 없다. 횡령이나 절도가 관행이었다고 변명한다고 해서 무죄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검찰은 공무원들이 초과근무수당, 출장비 등을 허위로 청구해서 받아낸 사례들을 기소해 왔다. 공무원들이 '관행'이라고 주장해도, 검찰은 기소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일이다. '불법이 관행'이라는 주장은 면죄부가 될 수 없고, 오히려 범죄가 조직적이고 만성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한동훈 장관은 검찰에 대해서 '관행'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려고 한 것이었다.

문제는 '법무부 장관이 이런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자료 불법폐기 문제를 어디에 고발해야 하는가?'였다. 다른 시민단체가 이 건을 공수처에 고발했다는 소식도 들었지만, 공수처가 수사에 나섰다는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공수처의 현재 역량과 상황을 봤을 때, 검찰조직의 핵심부에서 벌어진 범죄에 대해 수사를 제대로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검찰 특수활동비를 감시·검증해 온 3개 시민단체(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는 특별검사 도입을 국회에 촉구했다. 작년 8월에는 5만 명의 국민서명을 받아 국회에 청원도 했다. 그러나 21대 국회는 특별검사 도입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공소시효 만료 시점이 다가왔다. 자료 불법폐기에 대한 공소시효가 7년이기 때문에, 곧 공소시효가 만료될 상황이었다.

그래서 올해 1월 16일 시민단체들은 고민 끝에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범죄를 저지른 조직에 '셀프 수사·기소'를 하라고 고발장을 접수하는 심정은 매우 참담했다. 이런 명백하고 조직적인 범죄에 대해 믿고 수사를 의뢰할만한 기관이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셀프 불기소'를 한 검찰

검찰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은 검찰 특수활동비 자료 불법폐기 건에 대해 지난 4월 18일 '실무 관행'을 이유로 불기소(각하) 결정을 내렸다.
 

서울중앙지검의 불기소이유 중에서 ⓒ 하승수

 
불기소 이유를 보면, 자료 불법폐기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관행'이라는 이유로 범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이런 논리라면, 다른 공공기관들이 '관행'이라면서 자료를 불법폐기해도 처벌하지 못한다는 것밖에 안 된다. 국가의 법질서를 뒤흔드는 '궤변'이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지난 5월 16일 서울고검에 항고를 했다. 그러나 서울고검도 6월 28일 항고를 기각한다는 통지서를 보내왔다. 여기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곧 대검찰청에 재항고를 할 예정이다.

검찰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서도 고발절차를 끝까지 가는 이유는, 검찰이 자기 조직의 불법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비호하는 집단이라는 것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한 것이다. 또한 검찰은 '자기 시정'이 불가능한 집단이므로, 국정조사나 특별검사를 통해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근거를 남기기 위함이다.

그래서 22대 국회에 다시 한 번 촉구한다. 검찰 특수활동비 자료 불법폐기 사태를 포함한 각종 의혹들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 국정조사를 통해서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정조사를 실시하면,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고위검사들과 검찰 특수활동비 관리 실무자들을 증인으로 소환할 수 있다. 그 중에는 현재 용산 대통령실로 옮겨 간 검찰 특수활동비 관리 실무자들도 포함된다.

조직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반성도 없는 집단을 그냥 방치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 법치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이 나서서 진상을 규명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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