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아스가 통로에 있는 그림을 설명해 주고 있다.
윤한샘
슈렝케를라 양조장은 아담했다. 주택가에 있어 양조장이라고 알려주지 않으면 독일 전통 가옥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실제로 건물 위에는 6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마티아스 대표의 가족이 살고 있다. 세계대전의 폭격을 피해서였을까. 작은 아치형 입구 위에는 '1790'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무려 230살 먹은 집이었다.
입구 옆에는 'Aecht Schlenkerla Rauchbier'와 'Hellerbrau'라는 글자가 담긴 방패 모양의 문패가 보였다. '오래된 슈렝케를라 훈연맥주', '헬러브로이'라는 뜻이었다. 사실 슈렝케를라 양조장은 틀린 이름이다. 슈렝케를라라는 브랜드가 워낙 유명해 이름처럼 불리고 있지만 실제 양조장 이름은 헬러브로이다.
통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벽에 흑연필로 그린 밤베르크와 슈렝케를라 연대기가 보였다. 놀란 토끼 눈으로 그림을 하나하나 살피던 와중, 저 멀리서 누군가 '구텐 모르겐(좋은 아침)'을 외치며 다가왔다. 슈렝케를라를 이끌고 있는 마티아스 대표였다.
40대 초반, 훤칠한 키에 선한 미소, 금테 안경을 쓴 그는 지적이고 기품이 가득했다. 부드럽고 활기찬 목소리로 환영 인사를 건넨 후, 곧바로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영어도 가능했지만 우리에게 독일어 통역이 가능한 지인이 있어 투어는 독일어로 하기로 했다.
통로에 있는 그림이 정말 연필로 그린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지우개로 지우면 안 된다는 독일식 농담을 던졌다. 서로 인사를 마친 후, 벽에 있는 그림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으로 투어가 시작됐다.
밤베르크는 생각보다 오랜 양조 역사를 갖고 있었다. 무려 1015년 성 미하엘 수도원 양조장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우리가 있는 이 양조장 부지에 대한 언급은 1387년 문서에, 슈렝케를라 양조장 기록은 1405년 문서에 존재한다. 슈렝케를라는 이 1405년을 양조장 원년으로 삼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끈 숫자는 '12.10.1489'였다. 밤베르크는 1489년 12월 10일 맥주순수령을 제정했다. 바이에른 공국의 맥주순수령 선포 날짜가 1516년 4월 23일이니 밤베르크는 무려 27년 전에 맥주에 보리, 물, 홉만 넣어야 한다는 법이 있었던 것이다. 오버프랑켄 지역이 맥주에 대해 그토록 강한 자부심을 가진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슈렝케를라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해는 1877년 안드레아스 그레이져가 주인이 되었을 때였다. 그는 과거 성 미하엘 양조장에서 일하다 다리를 다쳤는데, 이후 휘청휘청이며 걷는 사람이라는 뜻의 '슈렝케틀라'가 별명처럼 붙었다. 처음 슈렝케를라라는 애칭을 이용한 곳은 맥주를 파는 레스토랑이었다. 그리고 점차 이 이름이 인기를 얻자 양조장의 상징이 되었다.
너도밤나무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