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스너 우르켈 양조장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윤한샘
맥주 세계에서 필스너 우르켈은 왕이다. 필스너(Pilsner)는 고향인 체코 플젠(Pilsen)의 맥주를, 우르켈(Urquell)은 오리지널 즉 원조를 의미한다. 황금색을 띠는 모든 라거의 원조, 필스너라는 맥주 스타일의 효시, 그리고 현대 라거 왕국의 모태를 누가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오랫동안 필스너 우르켈 팬을 자처하고 여러 강연과 글에서 소개했지만 정작 플젠을 가볼 기회가 없었다. 프라하와 밤베르크를 몇 차례 방문할 때조차 지근에 있는 이 작은 도시는 이상하리만치 연이 닿질 않았다. 나에게는 손에 닿을락 말락 한 신기루 같은 존재였다.
2024년, 유럽 맥주 여행을 기획하며 플젠을 무조건 1순위로 넣었다. 이번에야말로 오래된 버킷 리스트, '현지에서 언필터드 필스너 우르켈 마시기'를 꼭 하고 싶었다. 프라하에서 플젠으로 떠나며 미리 예약한 양조장 투어를 다시 체크했다. 오전 10시 독일어 투어였다. 독일어를 몰랐지만 다행히도 동행한 30년 지기 지인이 독일어 전문 통역사였다. 오늘은 누님께 신세 지는 걸로.
버스로 한 시간 반,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보던 주빌리 게이트(Jubilee Gate)에 도달하자 두근거림은 흥분으로 바뀌었다. 드디어 오는구나.
게이트 안쪽은 넓은 광장이었다. 정면 건물 너머로 거대한 하얀색 타워와 거대한 황토색 굴뚝이 나란히 보였다. 비지터 센터 입구 앞 작은 비어 가든에서는 동네 주민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이미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지. 맥주 구매 출처를 파악한 뒤, 우리는 길 건너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필스너 우르켈은 왼쪽 작은 탭에서 주문할 수 있었다. 아침이지만 4.4% 알코올을 가진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은가.
필스너 우르켈의 탭은 아이코닉(상징적인)하다. 황금색 타워에 수도꼭지 모양의 포셋이 달려 있다. 이 수도꼭지를 오른쪽으로 열면 맥주가 나오는데, 열리는 정도에 따라 거품양이 조절된다. 필스너 우르켈을 마시는 방법은 거품과 맥주 비율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하디닌카(Hladinka), 맥주잔 전체의 4분의 1을 거품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오리지널 필스너 우르켈을 맛볼 수 있다. 잔의 반을 거품으로 채우는 슈니트(Šnyt)부터는 우리에게 생소하다. 반이 거품이라니, 한국에서는 당장 컴플레인 걸릴 일이겠지만 오해하지 말 것. 슈니트는 식전에 짧게 맥주를 즐기는 방법이다. 거품으로 홉 향을 즐긴 후, 남아있는 맥주가 입맛을 돋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