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쪽 하늘과 아래쪽 하늘이 만나요

[이미지 산책 7] <'빛의 화가 모네'전> 2

등록 2007.09.04 11:25수정 2007.09.0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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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수련 1914-1917' 150 x 200 cm,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수련 1914-1917' 150 x 200 cm,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 The Bridgeman Art Library

▲ '수련 1914-1917' 150 x 200 cm,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 The Bridgeman Art Library

 

오후의 정적

 

"뚝 위의 나무들은 두 개의 차원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나무들의 줄기의 그림자가 연못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한다. 물가에서 몽상할 때 사람들은 반영과 깊이의 변증법을 만들어내지 않고는 꿈꾸지 못한다. 물 밑으로부터 어떤 물질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올라와 그림자를 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흙은 그림자를 비춰 주고 있는 거울의 이박(裏箔 : 거울 뒷면에 입힌 수은과 주석의 합금)이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제공된 모든 그림자에 물질의 어둠을 결부시킨다. 냇물의 밑바닥 또한 이 화가에게 있어서는 미묘한 놀라움인 것이다." - <꿈꿀 권리> 중에서

 

맑게 멈춘 연못이 자신의 키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깊이 들어간 푸르른 나뭇가지들의 거꾸로 박힌 인상은 연잎의 잎자루와 겹쳐 진해지고 두툼해집니다. 그건 연못 바닥의 진흙이라는, 비록 보이지는 않는 존재를 알려줍니다. 수련이 물 위의 꽃이라 하더라도 흙이라는 기초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 속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림자의 자락이 길면 길수록 그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더 깊은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한때 빛나는 수련꽃이 그 사실을 모르더라도 말입니다. 마치 우리가 누군가의 고마운 존재를 잠시 망각하듯이 말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 모네 자신은 무척 자유로웠을 것 같습니다. 우주를 바라보며 잠시 자신을, 시름을 잊었을 것입니다. 모네의 많은 그림 연대기가 말하듯, 모네는 몇 년의 여름을 그림 하나에 누적시키곤 했습니다. 자유롭지 못하다면 이런 긴 시간을 견뎌내지 못할 것입니다.

 

한 번에 하나의 수련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동시 진행형의 수많은 그림들이 그의 큼지막한 아틀리에에 있었습니다. 모네는 수시로 이 그림에서 저 그림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건 그 자신의 머릿속에 연못과 수련의 우주가 체계적으로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나는 미지의 실체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는 현상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그러한 일체화된 현상과 같은 경지에 있는 한 우리는 실체에서, 아니 적어도 우리가 알 수 없는 그것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다만 우주가 나에게 보여주는 것을 보고 그것을 붓으로 증명해 보이고자 했을 뿐입니다." - <모네-순간에서 영원으로> 중에서


그렇게 모네는 우주를 유영했습니다.

 

a '수련 1907' 100 x 73 cm,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수련 1907' 100 x 73 cm,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 The Bridgeman Art Library

▲ '수련 1907' 100 x 73 cm,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 The Bridgeman Art Library

 

노을 진 하늘

 

이제는 노을이 지는 저녁때의 연못입니다. 연못이 사라진 듯 연잎 무리들은 붕 떠 있습니다. 반사된 노을이 연잎을 떠오르는 구름처럼 만듭니다. 꽃은 온데간데 없고 나선형 잎들만이 엉켜 있습니다. 엉키고 엉켜서 검은빛이 돼버린 수양버들 닮아 먹구름이 될 기세입니다.

 

'수련' 연작 그림을 보면 "샘을 보고 하늘을 본다" 하는 말이 제격입니다. "샘 속에 비친 하늘을 보고서야 비로소 하늘이란 것을 새롭게 인식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그의 그림에는 하늘이 담겨 있습니다. 예쁜 수련을 보다가 그 사이 가라앉아 있는 하늘을 확인하고 위를 쳐다보게 되는, 그러니까 하늘 없는 연못은 있을 수 없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붉은 노을의 기운이 하늘을 휘감고 있을 동안 연못 주위는 흥분되기 시작합니다. 그 기운에 놀란 님프가 자맥질해서 물 속을 빠져나와 숲속으로 잠적해 버렸습니다.

 

모네는 나이가 들자 더욱 자연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림 속에서 사라집니다. 더 나이 들어서는 수련과 연못만 주되게 그렸습니다. 그 안에 담긴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하늘빛도, 노을도, 수양버들도 다 연못 안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완성된 그림의 모습은 내가 언제나 종속되어 있는 자연에서 나온다… 나는 자연과 보다 친근하게 융화되는 것 이외에 다른 소망을 품지 않으며, 자연 법칙과의 조화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생활하는 것 이외에 다른 운명을 갈망하지 않는다. 자연은 위대함이요 힘이요 불멸이다. 그 안의 인간은 보잘것없는 아주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 - <모네>(창해) 중에서

 

여러 개의 연잎 무리는 수면에 부유하는 듯합니다. 떠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물'이라는 하늘 위를 구름처럼 떠다닐 기세입니다. 연잎 무리는 이 '아래쪽 하늘'의 색채를 즐깁니다. '위쪽 하늘'과 '아래쪽 하늘'은 수련 연잎을 경계선 삼아 서로 포개집니다. 포개져도 결코 손상을 입지 않는 경계선입니다. 포개져서 하나가 돼버렸습니다. 이 시간의 빛만이 가능케 하는 요술입니다.

 

노을이 진다는 것은 다음날 맑아진다는 징표입니다. 그러나 궂은 날씨가 되어도 모네는 상관이 없습니다.

 

"모네는 일기가 나쁜 날에도 그렸는데 자신이 원하는 날씨 속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데서 더욱 자연을 사랑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일기가 나쁜 날 더욱 자연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 <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 중에서

 

모네가 수련과 연못에 관심을 기울이고 화폭에 담기 시작한 것은 1903년부터입니다. 물론 그전에도 수련과 연못과 연못 위의 일본식 다리를 그렸지만(정확히 1899년부터), 이 때부터는 수련과 물 표면에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그림에 수평선이 없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평선과 기존 풍경화들의 논리적인 층첩(여러 층으로 포개거나 포개짐)에서 벗어난 그림은 평면으로 표현되어 있다. 물과 하늘이 마주한 두 개의 거울처럼 섞여 있는 정교한 유색의 베일 위에 모네는 붓에 힘을 실어 꽃과 꽃잎들을 그린다." - <모네>(창해) 중에서

 

'수련'은 20세기 들어와 20여 년 지속되는 모네 그림의 주제입니다. 화폭도 점점 더 커집니다. 그래도 님프의 세계는 다 담아낼 수 없습니다. 님프의 세계는 우주 그 자체니까요.

 

a '일본식 다리' 1918년, 100 x 200 cm,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일본식 다리' 1918년, 100 x 200 cm,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 The Bridgeman Art Library

▲ '일본식 다리' 1918년, 100 x 200 cm, 마르모땅 미술관, 파리 ⓒ The Bridgeman Art Library

어둑어둑해질 무렵

 

해가 진 무렵은 주변 숲과 나무들이 연못을 통째로 점령할 때입니다. 하늘에서 태양빛이 직사광선을 쬘 때는 연못 주위 나무들은 빛의 조종을 받아 연못 위를 넘나듭니다. 그러나 해가 지면 연못은 그대로 '숲빛'이 됩니다. 산발을 한 수양버들이 그 주범이지요.

 

분홍 수련이 군데군데 피어 있는 연못 위로, 등나무가 지붕처럼 씌어진 다리가 보이시나요? 어렴풋이 녹색 빛을 띤 아치형의 다리가 한여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모네의 눈에는 이렇게 보였습니다. 모네의 시력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을 때 그려진 그림입니다.

 

전시회에 가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림은 위 그림을 그린 때쯤부터 점점 더 추상화에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붉은 색 기운이 가득해집니다. 그러나 그의 수련 연못은 여전히 빛의 광장입니다. 몇 년 동안 정신적인 고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지나갔고 이젠 물리적 고통과 대면하며 이겨나갈 때입니다.

 

위 그림을 그린 1918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때입니다. 그는 침침한 눈으로 고생하고 있었지만 이 승리를 기념하는 장식 패널 두 점을 막 끝내가고 있던 때입니다. 그걸 친구이자 프랑스 총리였던 조르쥬 클레망소에게 알리는데, 그 그림을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도 같이 전합니다. 그런데 그 계획은 점점 더 커집니다.

 

아무리 명화들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더라도 이 작품만은 미술관을 통째로 옮기지 않는 이상 직접 가서 봐야 합니다. 미술관의 1층 2개의 타원형 전시장에 붙박이로 전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수련' 연작이 그것입니다.

 

그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미술관 내에 벽이 둥근 특별 전시실을 만든 것입니다. 이 작품들은 길이가 긴, 일종의 대형 패널화(화판 그림, 판자에 그린 그림)입니다. 이건 모네가 오래전부터 마음 속에 뿜고 있던 계획의 일환이었습니다.

 

"틀에 넣지 않은 대형 장식화들을 그려서 관람자가 벽면을 따라가며 볼 수 있도록 설치하겠다는 계획은 잠재적인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 계획은 1914년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실행되는데, 모네는 죽을 때까지 이 일에 전념하게 된다." - <모네>(열화당) 중에서

 

그런 그림을 위해 처음에는 자신의 거처에다 커다란 아틀리에를 새로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이 미술관의 둥근 방에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영구히 전시됩니다. 저는 책을 통해서 그 그림들을 보았습니다. 한 작품의 가로 길이가 4m가 넘습니다.

 

모네로서는 자신의 말대로 '기적적인 부활'이었습니다. <'빛의 화가 모네'전>에 전시된 그림 중에는 추상화에 가까운 작품도 여러 점 전시되고 있는데 그건 실험적인 방식이기도 했지만, 모네의 백내장이 악화되었을 때에 그렸던 그림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대형 패널화(장식화)에서는 다시 사물들이 구체적인 모습과 제 색깔을 띠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로서는 의료기술상 백내장 수술이 망설여지는 모험이었을 것입니다. 생명과도 같은 시력을 잃을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모네는 몇 년을 미뤘습니다. 친구이자 열렬한 팬이었던 클레망소의 설득으로 1923년 3번의 수술을 하게 되고 시력을 되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전부터 추진하던 오랑주리 미술관을 위한 '수련' 연작을 계속 그려나갑니다. 이미 이 작품들을 제1차 세계대전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국가에 기증하기로 서명한 뒤였고, 건강 상태를 고려해서 그 약속 시기를 미루며 작업은 계속 이루어집니다. 기증 시기는 1926년까지로 정했지만, 모네가 죽을 때까지로 연장했습니다.

 

모두 19점의 그림은(미진함이 있지만) 완성되고, 그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의 개막식은 모네가 죽은 이듬해인 1927년에 이루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빛의 화가 모네'전> : 서울시립미술관, 9월 26일까지. 02-724-2900, 월요일 휴관. 평일은 밤 10시까지. 

2007.09.04 11:25ⓒ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빛의 화가 모네'전> : 서울시립미술관, 9월 26일까지. 02-724-2900, 월요일 휴관. 평일은 밤 10시까지. 
#브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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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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