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음란과 부패...조선의 뒷골목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읽고서

등록 2007.09.02 18:30수정 2007.09.0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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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 유교가 국가 통치이념이었던 '조선'은 우리에게 그리 먼 나라가 아니다. 조선은 낯선 나라가 아니다. 조선은 유교이념이 지배했기에 도덕군자와 성인군자들의 시대였을까? 어른들은 말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 예의도 없고, 버릇도 없다고. 하지만 조선시대에도 '뒷골목'이 있었다. 뒷골목이란 어둠과 도둑, 깡패, 음란, 싸움이 연상된다. 그리 좋은 느낌이 아니다.

강명관은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서 도둑, 깡패, 노름판, 술집 등 대한민국에만 존재할 것 같은 뒷골목 풍경을 재미있게 풀어가고 있다. 한국한문학을 전공한 그가 조선시대 사료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딱딱, 엄숙, 거창할 것 같지만 그런 느낌과 맛은 없다. 평범하고 사람냄새가 난다.


역사에 기록되는 사람은 왕이나 벼슬아치들이다. 아니면 시대의 반역을 꾀한 임꺽정, 장길산 같은 이들이다. 하지만 역사가 그들만으로 이루졌다고 보는 이들은 없다. 진짜 역사는 이름없는 이들이 이룬 역사이다. 그 중 이름없는 한 의원이 있었으니 바로 '조광일'이다. 조선시대 의원은 '중인'이었는데 그는 이 중인도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의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홍양호가 지은 <침은조생광일전>이라는 책에서 조광일이 한 말을 보자.

"불쌍하고 딱한 사람은 저 시정의 궁박한 백성입니다. 내가 침을 잡고 사람들 속에 돌아다닌지 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 동안 살려낸 사람은 아무리 못 잡아도 수천 명은 될 것입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니 다시 십년이 지난다면 아마도 만 명은 살려낼 수 있을 것이고, 만 명을 살려내면 내 일도 끝이 날 것입니다."(본문인용 27쪽).

그는 이름있는 의원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의원의 길을 갔다. 후세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의원의 길을 간 조선 뒷골목의 이름없는 의원이 조광일이다. 조광일도 결국은 이름을 남겼으니, 이름없이 사람을 살린 의원이 얼마나 많을까? 이 시대 의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휴진이라는 집단 행동을 보면서 조광일이 그립다는 생각이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에는 투전 노름에 날새는 줄 모르고 노름에 빠진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조선후기는 도박 성행의 한 예가 있으니, '시(詩)'이다. 골패하는 장면을 묘사한 시를 보자. 강이천이 지은 <한경사>라는 책에 나온 싯구이다.

"네 사람 마주앉아 도박판을 열고서
골패 여덟 짝 나누어 쥐었네
그 중 한 놈 좌중 향해 제 끗발 자랑하며
1전으로 10전을 한꺼번에 따오네."(본문 인용 92쪽).


이 시대 노름판과 별 차이 없다. 선비의 나라,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뒷골목은 이렇게 우리 시대와 흡사하다. 차이는 '골패'에서 '화투'와 '카드'로, '엽전'에서 '종이 돈' 정도이다.

'음주운전'은 경찰들의 몸과 머리를 아프게 한다. 단속을 해도 음주운전은 아직도 많다.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술 없이 사는 인생은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조선시대도 음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양반도 별 차이가 없었다. <선조실록> 18년 4월 29일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요즘 여항에서는 대소귀천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연회에 절도가 없어 주육(酒肉)이 낭자하고 음악이 시끄러운 것이 태평하여 근심이 없을 때와 같으니 매우 한심합니다. 술병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일체 금단하소서."(본문 125쪽 인용).

술은 곡식을 빚는다. 곡식에 목숨을 거는 백성은 궁핍한데 조선 양반들은 목숨과도 같은 곡식으로 빚은 술을 마셨다. 시간이 흐르면서 금주령을 내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하지만 영조는 강력한 금주령을 내린 왕이었다. 하지만 정조 이후 조선은 술집과 주막의 등장으로 마셨다하면 취하고 취했다하면 술주정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박지원의 모습에서 조선후기 술이 얼마나 큰 문제였는지 알 수 있다.

조선의 뒷골목은 깡패와 도적, 타락과 부정으로 얼룩진 양반들의 과거시험, 후기의 오렌지 족, 최음제, 춘화, 무뢰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간 여인들을 말한다. 여기서 타락과 부정으로 얼룩진 양반들의 과거 시험을 백범 김구 선생의 글을 빌어 만나보자.

"과거장에는 글을 짓고 쓸 때 남에게 보이지 말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글을 지을 줄 모르는 자가 남의 글을 보고 가서 자기 글로 제출한다. 돈만 많으면 과거도 벼슬도 다 할 수 있다. 글을 모르는 부자들이 큰 선비의 글을 몇백 냥 몇천 냥씩 주고 사서 진사도 하고 급제도 하였다고 한다. 그뿐인가? 이번 시관은 누구인즉, 서울아무 대신에 편지를 부쳤으니까 반드시 된다고 자신하는 사람, 아무개는 시관의 수청 기생에게  주단 몇 필을 선사하였으니 이번에 꼭 과거를 한다고 자신하는 자도 있었다."(본문 178쪽 인용)

이것이 조선의 마지막 모습이다. 나라의 녹을 먹겠다고 하는 이들이 권력과 결탁하여, 첫걸음부터 부패와 동무하였다. 이런 이들이 나라의 일꾼이 되는 순간 그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다. 조선이 망한 것은 결국 권력의 정점에 다가가는 과거가 부패와 짝하였기 때문이다. 학벌이 우리 시대 문제가 되고 있다. 그들만의 학벌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돈과 권력이 하나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이유이다. 조선이 망한 길은 결국 돈과 권력이 부정한 방법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자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이런 징조가 보인다.

조선의 뒷골목은 민중의 아픔과 민중들이 자신들이 주체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뒷골목답게 온갖 음란과 부패, 부정, 썩은 냄새나는 권력을 고발하고 있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대한민국의 뒷골목과 비슷하다. 사람 냄새나는 공간이지만 또한 썩은 냄새나는 공간이다.

덧붙이는 글 |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ㅣ 푸른 역사


덧붙이는 글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ㅣ 푸른 역사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2003


#조선 #뒷골목 #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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