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어예 지내니껴?" 

"내사 맹 그렇지뭐, 허허."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구수한 사투리가 가득한 시골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렸다.

목적지는 경북 의성군 신평면. 하루 들어가는 버스가 몇 대뿐인데다, 오후 5시면 차가 끊기는 시골 중 시골이다. 이곳에 가면 '뉴스속 건강'이란 주제로 의학상식을 재밌게 전해주고 있는 엄두영 시민기자를 만날 수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두 세 시간마다 한 대꼴로 있는 버스를 가까스로 잡아타고 보니,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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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를 미처 잡지 못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다른 사람과 자리 하나에 사이좋게 앉으셨다. 시골버스의 낯설면서도 재미난 풍경이었다. ⓒ 김귀자

꼬불한 시골길을 달려 도착하니, 엄두영 기자가 보인다.

"지난  5월에 (공중보건의) 발령받았어요. 무지 심심했는데 이렇게 취재 오셔서 무척 반갑습니다. 하하."

초면인 나를 마중 나와 반기는 그의 모습에서 시골버스의 구수함을 느꼈다. 그를 따라 신평면 보건소로 들어갔다. 보건소는 주변이 온통 논밭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건물이었다.

"기사 쓰는 자체가 훌륭한 공부가 돼요"

오후 4시였지만 보건소는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다.

"시골이라 하루에 환자가 많으면 15명, 적으면 5명 정도 오세요."

오후에는 거의 진료가 없다고 엄두영 기자가 설명했다. 오전 중에 진료가 거의 끝나 남은 시간에는 의학관련 자료도 찾고, 공부한다고. 그가 이렇게 열심히 의학기사를 쓰는 것도 진료하는데 좋은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마침 그는 벌에 관해 취재 중이었다.

"벌독에 의한 알레르기를 취재하고 있는데, 알레르기 내과 교수님 중에서 통화 가능한 교수님을 연결시켜주십시오."

기사에 필요하면 이렇게 전문 의사나 동료 의사에게 물어보거나 책을 찾아보면서 내용을 보강해 간다. 그의 책상 위에 기사에 참고할 책과 자료들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 바탕화면 한가득 깔린 문서들도 대다수 기사들이다. 하루에 많게는 3건씩 꾸준히 기사를 올리고 있는 그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열심히 기사를 쓸 수 있느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남는 시간에 놀기만 할 순 없으니까 공부하는 거죠.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게 재미도 있지만 훌륭한 공부가 됩니다." 
 
엄두영 기자는 공중보건의와 기자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아주 잘 잡고 있었다.

친절한 의사가 친절한 기사 쓴다?

오후 다섯시. 엄두영 기자가 인터뷰를 하다말고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향한다. 보건소 옆에 있는 경로당이다. 요즘 그는 이곳에 오시는 노인분들의 건강을 돌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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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로당에서 할머니들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 김귀자

"오늘 할머니 혼내러 왔어. 오늘 약 받아 가세요. 얼마 전에 중풍 걸리신 분이 계셨다니까요."

엄두영 의사는 기어코 귀찮아서 약먹기를 거부하신 할머니 한분을 보건소까지 모시고 가 약을 건네드렸다. 그가 진찰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친근하다 느꼈더니, 가만 보니 가운을 잘 입지 않고 있었다.

"가운 입은 의사선생님 앞에 가면 괜히 주눅이 드세요. 환자분들이 저보고 '의사 같지 않고 권위주의적이지 않게 보여 좋다'고 하시는데, 저 역시 편하게 다가가려고 가끔 가운을 입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 덕분인지 진료를 받고 돌아가시는 환자분들은 엄두영 기자의 진료에 대만족했다.

"친절하게 하고, 알아먹도록 잘 설명해준다 아이가."(김옥주, 74 )
"뭐라도 이 양반은 잘해, 건실하고, 인정시럽고."(김원심, 78 )

수수한 남방차림으로 진찰하는 엄두영 기자의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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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하는 모습 왼쪽이 평소 진료 모습, 그러나 가끔 가운을 입지 않기도 한다. ⓒ 김귀자

"무척 성실하세요. 환자분들에게 성실하게 대하고, 입장을 잘 이해해서 다들 좋아하세요. 모르는 게 있으면 저에게도 물어보면서 늘 배우려 합니다." 동료의사 탁남현씨(26, 한방의사)의 말이다. 역시 '건실하다는 평가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분야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열정을 낳는다

그는 왜 시민기자가 됐을까?

어린 시절부터 기자를 꿈꿔 왔던 엄 기자는 1997년에 한양대 사회과학부 소속으로 들어가 주저 없이 신문방송과를 택했다. 그러다 IMF가 터지면서 앞날에 대한 고민을 하다 제주의대 01학번으로 열차를 갈아탔다. 그러나 기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의대를 다니면서 학보사 활동을 하다, 2004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활동을 시작했다.

"그때 당시엔 기자가 되는 것에 겁을 많이 먹었어요. 지금도 전업기자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는 기자가 되는 게 두려워 에둘러 갔다. 의대를 진학해 의사가 되었고, 지금은 의학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그는 어쩌면 전업기자로 활동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대신 그는 자신의 두려움을 잘 활용하여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만들었다.

"내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건강에 대한 분야에 대해 다양하고, 색다르게 다루려 해요. 도움이 된다는 메일을 받을 때 뿌듯하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지요."

예전에 기면병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그 기사를 본 기면증 환자가 전화해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고맙다. 입법청원을 하는데 이 기사를 활용하겠다"고 해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의학을 다루는 기자로 그의 최대고민은 '전문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면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이다. 

"제가 가진 강점은 질병에 대해 좀 더 많이 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기 쉽고, 정확히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해요."

그는 자신의 강점이 무엇이고, 약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의학기사를 쓰면서 보완해야 할 부분이 무엇이고,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부분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자신의 과제로 남겨두었다. 

생나무의 가슴 아픈 추억

"내 이름을 걸고 뭔가를 남길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엄두영 기자가 시민기자로 활동하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다. 지금은 잘 나가는 시민기자인 그에게도 초창기 시절엔 생나무의 아픈 기억이 있었다.

"2004년도에 첫 기사를 썼어요. 2002년부터 (오마이뉴스를) 봐오다가 용기내서 썼는데 생나무로 처리됐죠. 그때 충격이 엄청났어요. 그러다 1년 6개월 만에 두 번째 기사를 썼는데 잉걸이 돼서 많이 기뻤습니다. 자신감도 얻고 많이 배웠죠."

이후 이틀 동안 MBC 스튜디오에 잠입해 밤샘 취재 했던 기사가 '박지성, 이영표 선수, 안방에 이렇게 온다'. 대박나면서 기자로서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 후 황우석 사태를 다뤘던 김철중 기자를 기사화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지금까지 110여건의 기사를 쓰면서 슬럼프가 올 때도 많았다. 그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쉬거나,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보며 확실하게 좌절한다"고 한다. 더 고민하고 한 번 더 시도해보면서 다시 일어서는 게 그의 슬럼프 대처법이다.

기자로서 그의 지론은 '기자는 그 분야의 박사여야 한다'는 것. 기자라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가는 기사에는 책임을 다해야 하며, 그러려면 기사 내용에 대해서는 준전문가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여러 분야에 너무 욕심을 내면 안된다. 스포츠는 다 좋아하면서도, 굳이 축구에 관한 기사만 쓰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그는  자신의 분야를 사랑하는 것,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많이 아는 것이라고 믿는다.

'배움'이 진정한 뉴스게릴라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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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하게 웃고 있는 엄두영 기자 ⓒ 김귀자

그의 말을 듣다 보니, 그의 5년 뒤가 궁금해졌다. 5년 뒤 그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잘나가는 의사 아니면 시민기자? 뚜렷이 상상되지 않아서 무얼 할 거냐고 넌지시 물었다. 

"저도 아직 잘 그려지진 않아요. 주변에선 그래요. '넌 어려운 길을 갈 거 같다'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엄두영 기자는 힘들게 의사의 길을 밟아왔지만 앞으로 의사가 될지, 기자가 될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끊임없이 한의학과 의학을 접목하거나 새로운 것이 있을까 궁리하고 있다.  모든 의학전문기자들이 자신의 역할모델이라는 그는 기사를 뽑아서 수시로 보고, 문체 등을 따라 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부족한 부분에 좌절하지 않고, 대신 배움으로 채워간다.

오늘도 영원한 사람들의 화두가 될 '건강'과 '축구' 기사를 열심히 쓰고 있을 엄두영 기자.  어떤 상황에서나 '배움'이란 단어를 즐겨 쓰는 그가 시민기자로서 더욱 눈부시게 활약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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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귀자 시민기자. ⓒ 최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