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고위층의 무덤에서 나온 병사 모양의 토용. 당당한 명나라 병사들의 위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그 시대에는 세계의 중심이 동양이었다. 적어도 19세기까지는 그러했다. 출처 : 1987년 삼성출판사 발행 <대세계의 역사 7권>
삼성출판사
오늘날 세계의 중심은 서양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에 그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적어도 19세기 초반까지는 동양이 세계체제의 중심이었고, 그래서 동양 최강이 곧 세계 최강이었다.
"19세기 초반 이전에 무슨 세계체제가 있었겠느냐?"고 질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서양적 세계관의 소유자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서양 중심의 세계관 하에서는, 서양이 주도권을 잡지 못한 시대는 그저 '암흑' 정도로나 취급될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고 또 고도의 문명이 꽃피고 있던 대륙을 두고, 서양인들이 "우리가 그곳을 처음으로 발견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만한 승자의 입장에서는, 19세기 이전에는 세계체제가 없어서 서양이 주도권을 잡지 ‘않은’ 것뿐이라고 변명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리오리엔트>의 저자인 세계적 석학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서세동점 이전에도 이미 이 지구에는 세계체제가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 체제의 중심이 동양이었다고 말한다.
동양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절에 사람들은 동양으로 몰려들었다. 현대 세계인들이 뉴욕이나 워싱턴으로 몰려들듯이, 그 시절의 사람들은 동양 최강의 수도로 몰려들곤 했다. 한때 유럽인들이 동양으로 가는 신항로의 개척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그 시절에는 아쉬운 쪽이 서양이고 아쉽지 않은 쪽이 동양이었기 때문이다.
동양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절에는 경제도 동양을 중심으로 작동되었다. 실물은 동양에서 서양으로 유출되었고, 화폐는 서양에서 동양으로 유입되었다. 서양인들은 동양산(産) 차·비단·도자기 등의 수입에 눈알을 붉혔고, 그들은 그 대가로 막대한 은을 지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장악한 미국이 현대 세계의 중심이듯이, 과거에는 차·비단·도자기 등의 고급품을 장악한 동양이 그 세계의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아직 추위를 걱정해야 하던 그 시절, 동양산 비단 같은 고급 섬유는 유라시아를 건너서라도, 아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꼭 한번 사고 싶은 물건’이었다. 그래서 그 상품의 제조자들은 자연히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같은 동양 우위의 상황은 19세기 초반부터 역전되고 말았다. 서양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후로 오늘날까지 서양은 세계의 중심이고 또 도덕적 권위의 중심이기도 하다. 세계경제는 아직까지는 달러를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고, 정의와 불의를 판단하는 기준도 아메리카대륙이나 유럽대륙에서 나오고 있다.
서양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이 엄연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우리는 적어도 한 가지 의문점만은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서양 특히 미국·영국·프랑스 등이 과연 정의와 불의를 판단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정당한 챔피언인지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양이 과연 정당한 챔피언인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그들의 권력장악 방식이다. 둘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그들의 태도다. 이 두 가지를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첫째, 서양은 창피한 방식으로 세계권력을 차지했다. 그들의 챔피언 등극은 군사적 방법을 통한 것이 아니었다. 칭기즈칸의 몽골이 세계를 제패한 방식과 19세기의 서양이 세계를 제패한 방식은 서로 달랐다.
인류가 경험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세계제패 방식은 전쟁을 통한 군사적 제압이다. 전쟁 자체는 인류 대중에게 비토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인류는 전쟁보다 더 확실한 우열확정 방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인류는 전승국의 무단 폭력을 합법 권력으로 인정해 주는 것에 대해 별다른 어색함을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어를 써서 좀 그렇지만, 만약 전쟁이라는 ‘앗쌀한’ 방식을 거쳐 동양이 서양에게 권력을 넘겨준 것이라면 그나마 덜 억울할 것이다. 4각의 링에서 싸우다가 다운당한 것이라면, 챔피언 벨트를 넘겨준다 해도 별다른 유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서양은 그런 ‘앗쌀한’ 방식으로 동양을 장악한 것이 아니다. 수백 년간 동양제 상품을 구입하느라 막대한 은을 써버린 서양이 그 은을 되찾기 위해 구사한 방식은 동양에 아편을 유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동양에 창출된 아편수요를 기반으로 그들은 동양으로 유입된 은을 도로 빼내는 데에 성공했다.
1859~1948년 기간의 중국 수출입 통계를 기록한 <중국구해관사료>에 의하면, 아편전쟁 시기인 1842년부터 중국의 대외수입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아편이었다. 그 해에 아편은 중국의 전체수입에서 55.2%를 차지했다.
이후 아편은 1884년까지의 무려 42년 동안 전체수입에서 부동의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면제품에 이어 2위로 밀려난 1885년에도 아편은 28.8%라는 큰 비중을 차지했다.
동양 최강 중국이 아편에 취해 혼미해 하는 사이에, 영국·러시아·독일·프랑스·이탈리아·포르투갈·네덜란드·미국 등의 서양국가들과 ‘짝퉁 서양’ 일본은 대대적인 동아시아 침탈에 나서 세계권력의 중심을 동양에서 서양으로 옮겨놓는 데에 성공했다.
이 시기에 서양(일본 포함)의 식민지로 전락한 동양 국가들이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1945년 이후), 세상은 이미 온통 ‘서양 천하’가 되어 있었다.
서양인들의 입장에서는 ‘유혈을 줄이고 동양을 지배한 것이니, 그것은 지혜로운 방법’이었다고 자위할지 모른다. 하지만, 생화학무기만큼이나 무서운 아편을 유포시켜 동양의 권력을 빼앗은 것은, 차라리 전쟁을 통해 동양을 무력화시키는 것보다도 더 ‘창피한 일’이었다.
그것은 인류가 이제까지 승인해온 권력교체 혹은 우열확정 방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혀 새로운 방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반인류적인 것이기도 했다. 또한 그런 방식은 서양인들이 믿는 성경 윤리에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서양인들의 세계지배 방식은 이처럼 그 자신들이 생각해도 부끄럽고 창피한 것이었다. 아편을 앞세워 동양을 침탈한 서양이 오늘날 여타 세계를 상대로 ‘악의 축’ ‘불량국가’ ‘테러지원국가’ 등을 운운하고 있으니, 서양 스스로 생각해도 맘속으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총칼로 세상을 차지한 것이라면, 그런 부끄러움을 느낄 이유는 조금은 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