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올바르게 살겠습니다"

[인터뷰] 임현정 경희대 민중가요노래패연합 백두울림 의장

등록 2007.09.10 17:28수정 2007.09.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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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한다. 그러나 노래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노래를 부르는 한 대학생이 있다. 송대관도 모르고, 태진아도 모르는 노래를 부른다. 무슨 노래이기에?

그녀는 대학노래패 성원이다. 3학년이다. 경희대학교 수원배움터에 입학한 뒤 주로 노래를 불렀다. 공부보다 노래를 좋아해서일까. 그녀는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는 게 아니라 시위현장에서 몸으로, 가슴으로 부른다. 민중가요 노래패다.

'아직도 민중가요 노래패가 있단 말인가' 하는 시민도 있을 것이고, '민중가요가 뭐야' 하는 시민도 있을 것이다. 그녀를 지난주부터 경희대와 수원역 등을 다니며 동행취재했다. '세상을 노래하는' 임현정씨를 만나 여러 의문점을 풀어 보자.

a  임현정 백두울림 의장

임현정 백두울림 의장 ⓒ 김삼석


- 왜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고, 단도직입적으로 그럼 '노래'는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때 꿈이 가수일 정도로 노래를 정말 정말 좋아했어요. 그런데 1학년 때 농활을 갔을 때 민중가요를 처음으로 배웠어요. 가요도 팝송도 아닌 것이, 가사가 묘하게 아름다운 것이 기타 반주에 맞춰 다 같이 노래를 부르니깐 너무 좋은 거예요. 그냥 그게 너무 좋았어요.

제게 있어서 노래는 삶이에요. 저의 동아리 아지가 '삶의 노래 진실의 노래'거든요. 그런데 한 선배가 이렇게 말씀해주셨어요. 노래에는 삶의 노래와 진실의 노래가 있는데 삶의 노래를 부르기는 쉽지만 진실의 노래를 부르기는 어렵다고, 많은 사람들이 삶의 노래는 부르지만 진실의 노래는 부르지 못한다고. 저도 삶의 노래는 되는데 아직 진실의 노래는 부르지 못하고 있어요. 언젠가 진실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 좋아하는 노래는? 무슨 이유로? 좋아하는 노래, 노래 가사를 말씀해 주세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단결의 밤에 부쳐'라는 곡이에요. 선배들이 이 노래를 술자리에서 즐겨 불러 주셨는데 뭔가 확 오는 느낌이었어요.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어요.
'나는 진정 형처럼 믿고 싶은 선배인지 나는 진정 밤새워 술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인지'. 이 노래를 부르면서 항상 제가 이런 선배인지, 이런 친구인지 되돌아보곤 합니다.

바람도 알맞게 불어주고 달빛도 따스한 단결의 밤
이런 날 밤이면 이런 날 밤이면
아무리 못생긴 얼굴도 이뻐보이는 단결의 밤
이런 날 밤이 기회다 단결의 밤에 말하자
수없이 단결투쟁 이야기 해도 일상으로 돌아서면 그 모습 그대로
묻혀 버리는 건 아닌지 묻혀 버리는건 아닌지
나는 진정 형처럼 믿고 싶은 선배인지
나는 진정 밤세워 술잔 기울일 수 있는 친구인지
이런 날 밤 생각 해 보자 동지의 거친 손 꼭 잡고
이런 날 밤 반성도 해 보자 이런 날 밤 불러보자 그 좋은 소리
동지 사랑하오…."


- 중·고등학교 생활과 대학생활이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초등학교 때 잠깐 외국에 갔다 온 사정 때문에 저는 중·고등학교에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를 봤어요. 평범한 학생들과는 다르게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와는 전혀 다른 내성적인 성격으로 바뀌었어요. 대학에 들어와서 학우들을 만나고 동아리 생활을 하다 보니깐 어렸을 때의 제 성격을 많이 찾게 되었어요. 그리고 대학에 와서 무엇보다 좋은 점은 힘들 때 고민을 함께 나누는 좋은 선배와 후배들이 있다는 사실이에요. 항상 혼자 생각하고 혼자 고민해왔는데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고 고마워요."

- 1학년 때 대학과 사회의 모습을 차차 알아나가면서 어떤 두려움은 없었나요.
"사회가 정말 바꿔야 할 게 많다는 걸 알고 정말 놀랐어요. 저도 사실 대학 오기 전에는 왜 저렇게 '데모'만 하지?라고 생각했었는데, 항상 '데모'만 해야 할 정도로 바꿔야 할 것이 정말 많더군요. 그리고 그때는 저 자신과 싸워야 했어요. 정말 모순덩어리인 사회를 외면하려고도 해봤고 시위에 나가는 게 무서워서 선배들의 연락을 피하기도 했었어요."


- 대학에서 제일 먼저 사회를 알게 된 뒤 생각(의식)이 무섭게 바뀐 계기는요.
"사람의 의식이 바뀌려면 엄청난 계기를 통해 스스로 경험한 뒤 바뀌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어떠한 큰 계기로 바뀌었다기보다는 천천히 이것저것 많이 경험하면서 바뀌게 된 것 같아요."

- 경희대 민중가요노래패연합 백두울림을 시민들과 대학생들에게 소개한다면?
"경희대학교 민중가요노래패연합 백두울림은 경희대에 있는 5개의 민중가요 노래패들이 한데로 뭉친 연합입니다. 저희는 대학 내에서도 시위현장에서도 민중의 애환을 풀어내고 알리기 위해 노래합니다. 노래와 춤은 정말 어디에도 빠질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저희들은 사실 집회현장에서 노래를 부를 때를 더 좋아해요. 집회현장에서 오랜 투쟁에 지치신 분들을 위해 노래할 때 정말 행복을 느낍니다. 어쩔 때는 엠프마저 없기도 하지만 정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좋은 것은 많이 부족한 저희지만 정말 좋아해 주시는 모습이 너무 잘 보이거든요.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 처음 참가한 시위는 어떤 시위였고 그때 기분은 어떠했나요.
"1학년 때 처음으로 3·30 독도문화제를 갔었어요. 저는 청소년 시절, 효순이 미선이 촛불집회를 보면서 막연하게 대학에 가면 꼭 집회현장에 나가보고 싶었어요. 또, 저희 엄마께서 어렸을 때부터 항상 부당한 것에는 대항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배운 제 성격이 한 몫을 차지했죠. 그래서 첫 집회는 스스로 가게 되었고 집회를 하면서 신기했던 것은 여기 있는 사람들은 무엇 하나를 해도 정말 즐겁게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학생들도 엄청 열띠게 율동을 하고 민중가요 가수들도 와서 신나게 노래를 하면 다 같이 춤을 췄으니까요."

a  지난 달 26일 수원역에서 열린 한미FTA비준저지 경기도민결의대회에서 펼침막을 들고 있는 임현정 의장

지난 달 26일 수원역에서 열린 한미FTA비준저지 경기도민결의대회에서 펼침막을 들고 있는 임현정 의장 ⓒ 김삼석


- 그럼 민중의 노래는 어떻게 불러야 하나요.
"저도 사실 엄청난 가창력의 소유자이거나 하지는 않아요. 제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들을 때는 그 노래를 엄청 감정을 담아서 불러냈을 때예요. 하지만 그 감정을 담아내서 부르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해 보는 게 중요해요. 2학년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노래를 잘 부르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2학년 때 집회를 나가지 않을 때는 민중의 아픔을 상상하면서 불렀는데 지금은 직접 현장에 가서 느끼니깐 노래가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 노래패 이외에 다른 학교생활은 어떻게 하나요, 비싼 대학등록금도 큰 문제인데.
"사실 저의 대학생활 중 수업을 빼면 거의가 동아리 생활이에요. 동아리 모람들이 적기 때문에 거의 모든 생활을 함께 하는 편이예요. 하지만 저희도 딱딱하게 항상 사회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거나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토익공부도 하고 커피숍에서 커피도 마시면서 게임도 하거나 수다를 떨어요.

대학등록금, 정말 비싸죠. 저 같은 경우는 외국어를 전공하고 있는데 사실 수업이 학원에서 배우는 것과 다른 것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학교를 다니다 보면 사실상의 한학기가 정말 짧고 일주일동안의 수업도 정말 여유로운데 돈이 아까워 죽겠어요. 우리 부모님들이 피땀 흘리면서 한푼 한푼 모은 돈인데 대학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나봐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매년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올려가며 갉아 먹으니깐요."

- 지난 8월 경 경기지역 통일선봉대로 참석했는데 일정과 잊혀지지 않는 상황을 말해 줄 수 있나요.
"이번 통일선봉대 일정 중에 파주축협불법연행 사건이 있었어요. 저는 사정이 있어서 통선대에 5일 정도 늦게 참여했는데 저희 동아리 모람들이 3명이나 연행이 되는 바람에 바로 학교에서 파주로 달려갔습니다. 버스를 다섯 번이나 갈아타면서 힘들게 갔었어요. 그런데 가자마자 항의방문집회는 끝나버리고 아침에 몇 시간을 기다려도 면회를 시켜주지 않아서 결국 제대로 만나보고 오지 못한 일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제가 직접 받은 정말 자식 같은 후배가 연행이 되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그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고 나와서도 열심히 하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하루 연행된다는 게 평범한 대학생들한테는 무섭기도 하고 큰일이잖아요? 그 일을 통해서 저희들 모두 더 성장한 것 같아요. 연행되어 있는 친구들을 위해 밖에서는 더 가열차게 싸우고 안에서는 믿음으로 잘 지내는 모습을 통해 엄청난 동지애를 느꼈습니다."

- 많은 대학생들은 학생운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지면을 빌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요.
"아직도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하면 학생회냐고 해요. 저는 학생회가 아닐뿐더러 학생회라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저는 성공하기 위해, 좋은 회사를 가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래서 대학도 왔구요. 하지만 그 공부를 정말 하고 싶어서 했나요? 토익, 토플 등 여러 가지 자격증을 정말 따고 싶어서 따는 건가요? 저는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오로지 취업하는 것에만 치우쳐져서 진정한 대학문화도 만들 수 없고 대학생으로서 해야 하는 고민을 할 수도 없어요.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생각해야 할 것들을요. 그런 부분이 많이 아쉽고 운동에 대한 편견도 그만 버렸으면 좋겠어요. 저는 운동을 어떤 대단한 지식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앞으로의 급변하는 통일정세를 노래로 표현한다면 어떤 노래가 적당할까요.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멋진 통일로 2'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제목처럼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이지만 가장 멋지고 아름답게 통일하자는 의미가 담겨있는 노래입니다. 노래처럼 지난 아픈 과거는 털어내고 서로를 인정하며 많이 나누어서 빨리 통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 마지막으로 다시 묻자면 '노래가 무기'가요.
"저희 동아리에는 '동아리가'가 있어요. 그 노래 가사 중에 '우리의 삶은 노래 우리의 노랜 투쟁 우리의 삶은 투쟁 투쟁의 무긴 노래'라는 부분이 있어요. 투쟁의 여러 가지 무기 중 노래라는 무기를 골라서 싸우는 거죠. 노래로 민중의 애환을 풀어내고 사회의 부조리와 온갖 모순 등을 담아내는 것이 무기로써 노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해주세요.
"저는 학교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고 있어요. 요새는 집에 거의 방학 때 일주일정도 밖에 못 내려가지만 집에 내려가면 엄마와는 얘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예요. 제가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 있어 하고 직접 참여한다는 것도 알고 계시구요.
그리고 제가 학교에서 대표자를 맡고 있다고 하시면 정말 좋아하세요. 이런 얘기는 웃기지만 여성으로써 권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요. 이 시대의 여느 엄마들처럼 엄마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저를 통해 이루시려고 하시는 것이요. 또 제가 장녀라서 엄마가 거시는 기대가 커요. 누구보다 저를 이해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엄마를 위해,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당당하게 올바른 것을 추구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수원시민신문(www.urisuwo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수원시민신문(www.urisuwon.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임현정 경희대 민중노래패 연합 백두울림 의장 #임현정 #경기통일선봉대 #민중가요 #노래는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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