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정전.태조, 태종, 세종을 모시고 있다.
이정근
태종은 아들을 버리고 세자를 폐한다는 것은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세자 주변에 꼬이는 아첨배를 철저히 차단하여 성군의 재목으로 키워야겠다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나이 어린 세자가 저지른 실수를 일벌백계 차원에서 다스려 개과천선의 기회로 삼고 싶었다. 이때 세자 나이 23세였다.
세자의 연금생활이 시작되었다. 연지동 처가이다. 세자궁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신분은 궁에서 쫓겨난 세자다. 철부지 행동으로 부왕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세자 양녕은 연금 생활동안 많은 것을 뉘우쳤다. 세자가 근신하고 있는 연지동으로 임금의 서(書)가 도착했다. 자경잠(自警箴)이다.
"어버이에게 불효하고서 부귀를 누리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이후로 불효를 한다면 부모는 비록 사랑하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싫어할 것이다."준엄한 경고다. 부모가 자식의 허물을 감싼다 해도 하늘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종의 목소리다. 중요한 의미가 내포된 발언이다. 등극은 하늘의 길이다. 하늘이 열어주어야 오를 수 있는 자리다. 하늘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세자라도 오를 수 없다는 경고다.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양녕의 마음은 어리에게 있었다. 부왕의 뼈있는 경고를 알아듣지 못했을까? 알고도 묵살했을까?
쫓겨난 왕세자,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야심한 밤. 잠을 이루지 못한 세자가 뜰 밖에 나왔다. 정월은 넘겼지만 밤바람이 싸늘하다. 하늘엔 별들이 속삭이고 달빛이 환하다. 엊그제가 보름이었던가. 열이레 날이다. 약간 이즈러진 달이 그래도 둥그렇다. 양녕은 달을 쳐다봤다. 이 순간 어리도 달을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보고 싶다. 어리가 보고 싶다.'
넋을 잃고 달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세자 저하, 밤바람이 차갑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세자 스승 변계량이었다.
"빈객이 어인 일이시오?"
"주상 전하께서 마음 아파하십니다. 용서를 빌고 환궁하셔야지요?"
"그리하고 싶소만 방법을 모르오. 빈객께서 도와주시오."
사랑방으로 돌아온 세자와 변계량은 머리를 맞대고 반성문을 쓰기 시작했다. '증손(曾孫) 왕세자 신(臣) 이제(李禔)는 조상의 영전에 고합니다'로 시작하는 종묘에 바치는 글이었다. 태조를 비롯한 목조·익조·도조·환조 등 5대조 할아버지에게 바치는 장문의 반성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