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평화운동가 이시우씨의 글에 보면, 강화도에 민간인통제선(민통선)을 그은 것은 불법이라고 한다.
"강화도와 북한의 개풍군 사이 바다에는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헌법의 권리를 침해한 사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강화도에 민통선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못하지만 강화도 앞,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지점은 DMZ(비무장지대)의 물길이 그대로 관통하는, 사실상의 DMZ인 것은 분명하다.
지난 10일 강화시민연대 생태보존위원장인 김순래 강화고교 교사의 안내로 서해안 최북단을 잇는 48번 국도 맨 끄트머리 지점을 찾았다. 여전히 해병대 2사단의 검문이 있었고, 강화고교 교사가 동행하고 있었음에도 신분증을 보이고서야 비로소 통과할 수 있었다.
'여의도 발' 개발계획에 술렁이는 한강 하구
그곳에는 세계 5대 하천으로 손꼽히며 한반도 최후의 자연형 하천을 보존하고 있는 한강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이 펼쳐져 있다. 밀물 때를 맞아 듬성듬성한 모래 둔덕이 보인다. 지금 정치권 한쪽에서는 저 둔덕을 파서 모래 채취 사업을 벌이자고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둔덕을 다져 거대한 인공섬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히고 있다. 김 교사는 "이 곳은 밀물 때라도 물이 4m 가량 남아 있는 곳"이라면서, "어떤 공사든 쉽게 결정할 수 있겠느냐"고 고개를 흔든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풍부한 생물종을 품고, 기러기만 10만 마리가 지나다닌다는 이 곳에 '여의도발 개발 계획'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강화 주민들은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 보인다"고 김 교사는 말한다.
근 몇 년간 DMZ 일원, 민통선 지역에 대한 조사 작업은 계속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군사분계선 남북 각각 2㎞까지를 일컫는 DMZ 내의 실질적인 조사는 이뤄질 수 없었다. 보안과 안전상의 이유로, DMZ을 관할하고 있는 유엔사에서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8월 국무회의를 통해 '비무장지대 일원 생태계보전대책'을 수립, 이후 각 부처 간 실무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은 이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DMZ에 관한 기본적인 접근 방향이자 최종 목표인데, 정책 구성의 기초라 할 수 있는 DMZ 실태 조사는 아직 출입 승인을 받지 못해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북한 연구자들이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판문점 부근 사천천 유역에 대한 생태조사보고서를 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상황이다. 참고로 DMZ 북측 지역은 북한 당국 관할이다.
그렇다고 간헐적이나마 조사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 05~06년간 DMZ 판문벌 환경생태공동조사단이 경기 파주시 군내면과 진서면 일대를 조사했다.
"DMZ를 대상으로 한 평화는 결국 개발"
판문벌 조사 사업을 비롯, 각종 DMZ 조사 사업을 이끌면서 DMZ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는 서울대 김귀곤(환경생태계획학) 교수가 최근 상황을 두고 재미있고 의미심장한 표현을 했다. 지난 8월 경기개발연구원이 주최한 남북포럼에서 김 교수는 "DMZ 앞에 평화란 말을 붙이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평화란 말을 빌려 가지고 결국 개발을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평화란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DMZ를 대상으로 한 평화는 결국 개발"이라고 김 교수는 단적으로 표현한다.
성서에서 예수는 "천국이 도적같이 임할 것"이라고 했는데, 통일도 그렇게 오지 않을까 예측하는 주장을 심심치 않게 듣곤 한다. 그런데 최근, DMZ 이용계획에 대해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공약을 보면 전혀 허황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DMZ야말로 동북아 평화의 상징이며, DMZ의 변화야말로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도약을 알리는 시작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선에서 탈락한 민주노동당 노회찬 후보부터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이해찬 후보, 그리고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이르기까지 이념과 정당을 막론, 각 대선 주자들이 통일외교의 주요 공약으로 DMZ 이용 계획을 발표했다.
'개성동영'을 앞세우고 있는 정동영 후보는 통일부 장관의 이력을 내세워 'DMZ 평화지대'와 '개성-파주를 잇는 디지털 평화경제벨트' 구상을 내놓다. 상대적으로 늦게 경선에 뛰어든 이해찬 후보는 '한강 임진강 모래 채취 사업'과 역시 'DMZ 평화지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노회찬 의원도 'DMZ 평화지대'와 함께 '경원선 복원'을 주요하게 내세운 바 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DMZ 내 판문점 부근에 이산가족 상봉센터·유스호스텔·실내체육관 등의 시설을 포함하는 '평화 콤플렉스(단지)'를 조성해 남북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마무리 짓는 한강 '나들섬' 공약을 통일외교 정책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DMZ 평화지대화'에는 대선 주자 의견 통일
몇 후보가 공통적으로 제시한 'DMZ 평화지대화'를 살펴보자. 사실 대부분 공약이라기보다는 선언에 가까운 구상이라 할 수 있다. 정동영 후보의 경우 평화지대화 공약보다는 '개성-파주를 잇는 디지털 평화경제벨트' 공약에 훨씬 무게를 싣고 있다.
이에 대해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는 "평화지대화 실현은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정착을 실현하는 구상이 먼저 나와야 하는데 이에 관한 비전 제시가 없는 가운데 DMZ 평화를 언급하는 것은 의미가 적다"고 평가했다.
그런 면에서 이해찬 후보의 공약은 논리적인 틀과 이행과제를 비교적 잘 갖추었다. ▲1단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2단계 한반도 평화 공동체 형성 ▲3단계 한강-임진강-서해안 평화공동 수역 조성 ▲마지막 단계로 DMZ의 평화지대화 선언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의 결과로써 DMZ 평화지대화 선언을 한다는 것은 여타 후보들이 통일 과정으로써 DMZ 평화지대 선언을 설정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이해찬 후보가 총리로 있던 2005년 국무회의를 통해 수립한 '비무장지대 일원 생태계보전대책'과 그의 공약이 연결성이 별로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보전 대책의 주요 골자는 "비무장지대를 통일 후 2년간 자연유보지역으로 지정·관리하고, 이후 전 지역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 결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 지역'으로 확정하는 것이 지금까지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이해찬 후보는 아울러 '남북평화고속도로' '금강산 철길 관광로' 등을 제시하는데, 이는 남북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한 소통의 채널을 확보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김귀곤 교수는 "아직 구체적인 조사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고, 유네스코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건이 있는데 이에 대한 고려 없이 민감하기 이를 데 없는 DMZ 공간에 대한 이용계획을 내놓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강하구, 이해찬 "모래 파내자"-이명박 "섬 쌓자"
DMZ의 위기는 그 서쪽 출발 지점인 한강 어귀의 교동도 앞 한강 하구, 바로 그곳부터 시작된다. DMZ 관광 자원화에 적극 관심을 보이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이해찬 후보가 각각 남북정상회담 의제로 한강과 임진강 하구 모래 채취 사업을 공식 제안하였다.
반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대운하 준설로 파헤쳐진 흙을 이용하여 예성강과 교동도, 강화도가 만나는 한강 하구에 "여의도 10배 면적의 남북 경제협력 단지인 나들섬(인공섬)"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해찬 후보의 공약이 한강 하구의 모래를 파내는 사업이라면, 이명박 후보의 공약은 한강 하구 모래를 모아 섬을 쌓는 사업이다. 매우 대조적인 구상인데, 어느 후보가 되느냐에 따라 한강 하구의 미래, 더 나아가 파주·김포·강화 주민들의 미래가 크게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두 사업 모두 '더 이상의 하구 개발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시민사회의 기대를 저버린 구상이며, 두 사업의 결과로 엄청난 환경 변화라 초래할 것은 분명하다.
나들섬 공약에 대해 김순래 교사는 "굳이 있는 섬(교동도)을 놔두고 한강·임진강·예성강의 합류지점에 나들섬을 만들어 한강 하구 인근 도시에 엄청난 물난리를 자초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미 영종도 공항 공사로 강화 앞 바다 모래가 대부분 굳어 버려 수로를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물의 흐름은 예측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이명박 후보의 정책자문을 맡고 있는 장석효 전 서울 부시장은 "한반도 대운하 공사 관계로 수로를 내기 위해 퍼내야할 흙을 적절히 활용하면 섬 조성도 어렵지 않고, 파낸 흙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니깐 특별히 물이 더 막히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김 교사는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본 결과) 군사 분계선으로 인해 실제적인 측량을 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얻었다"면서 "가능한 구상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의문을 표했다.
한편 모래 채취로 인한 해양환경 피해와 주민들의 생활터전 붕괴, 생존권의 위협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지금 한창 강화도 앞바다 모래 채취 사업이 환경영향평가 없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지역 주민과 논란을 빚고 있는 상황이며, 지난 20년간 이루어진 바닷모래채취로 인한 피해복구 대책도 없이 같은 사업을 국가적으로 재개하겠다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는 클 수밖에 없다.
전혀 다른 구상이지만 각 캠프 관계자들은 두 사업 모두 남북이 공동으로 이익을 보며 한강·임진강 하구의 홍수를 막아낼 수 있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실제로 그러한지 알 수 있는 근거가 희박하다고 한다. 다만 물길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바다와 강의 합류 지점 생태 지도를 급속히 바꿔 깃들어 살고 있는 생명들의 내일을 보장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강화시민연대 보존위원장 김순래 교사는 강화도에 "굵직한 개발 사업만 3개 이상, 나들섬을 포함하여 강화조력발전소·인천발전소 개발 계획 등이 발표되었다"면서, "이중 어느 하나만 성사되더라도 한강 물의 흐름은 엄청나게 바뀔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미 한강하구 언저리가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복잡한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니 어쩌면 DMZ 접경 지역 대부분 이 복잡한 이해관계로 쉽게 풀기 어려운 숙제를 던져 주는 곳임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아이디어 수준... 공약 단계서 전략환경평가해야
이에 대해 서울대 김귀곤 교수는 "대선 주자들이 아이디어 수준에서 내놓은 것들이 물적 개발로 연결이 되는 것이 문제"라면서, "대선 공약으로 내놓으려면 '전략환경평가'에 걸맞은 통과 절차를 밟는 것이 옳다"고 지적한다.
대선 주자들이 '팔러시(정책)'를 이야기하는 것 같으면서, 결국 '프로젝트'를 말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장기적인 이용과 보존에 관한 계획, 정책의 타당성과 적정성을 판단하는 과정을 포함하여 발표하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라고 보고 있다.
전략환경평가(SEA: Strategic Environmental Assessment)는 국책 개발 사업에 앞서 사회·경제적 요소와 함께 환경성을 통합하여 고려하고, 행정계획의 시행에 따른 환경영향에 대해 주민 등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친환경적·민주적 의사결정 절차로서 이미 선진 외국에서는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는 제도이다.
김 교수는 "선언 수준에서 이야기되던 것이 당선이 되고 나면 결국 개발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면서, 공약 단계에서부터 정밀한 평가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DMZ 정책도 마찬가지다. 지난 국책 사업 추진과정에서 국가적으로 감내한 엄청난 손실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가장 기초적인 "선 보존 정책, 후 개발 계획"의 순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무튼 정치권에서 DMZ 논의가 나오는 것은 분명 평화의 세기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이미 정부 부처를 비롯, DMZ의 보존과 이용에 관해 그간 논의해왔던 성과가 한순간의 표심을 위해 좌우되는 사태가 발생되지 않도록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DMZ 평화생명동산 정성헌 추진위원장은 "DMZ는 사실상 중무장지대"라면서 "DMZ의 역설성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남북 대결의 지대이지만, 앞으로는 이 때문에 교류하고 화해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 민족 분단의 현장, 그러나 앞으로 인류평화의 상징으로 DMZ를 전 세계에 내놓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진정 무엇일까.
2007.09.12 18:10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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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쌓자"-이해찬 "파내자" 한강 하구에 충돌하는 공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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