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경감 최대사건>
동서문화사
프렌치 경감의 본명은 '조세프 프렌치', 보통 키보다 약간 작은 키에 뚱뚱하다기 보다는 몸집이 좋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인물이다. 그의 눈은 날카로우면서도 밝게 빛나고 있다.
항상 사람들에게 상냥하게 인사를 하기 때문에 그의 별명은 '애교덩이 조'이다. 그의 신분은 경찰청 수사과의 경감이다.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와 애교, 왠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의 인물이다.
프렌치 경감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전쟁의 와중에 큰 아들을 잃었고 현재는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한가할 때에는 파이프담배를 피우고 책을 읽으면서 기분 좋은 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사건수사가 벽에 부딪힐 때에는 부인에게 의논한다. 저녁식사 후에 부인이 뜨개질을 하고 있을 때 그는 그 앞에서 사건의 개요와 그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부인은 프렌치 경감의 말을 모두 듣고 나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남편에게 '바보 아저씨'라는 말을 던지기도 한다. 그렇게 들은 부인의 의견이 사건해결의 귀중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부인에게 사건을 설명하고 나서 '바보 아저씨'라는 말을 듣는 남편, 형사이면서도 왠지 애교 있는 남편으로 보이지 않을까.
자신의 부인에게 바보라는 말을 들을 만큼, 프렌치 경감은 천재형 탐정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끈질긴 노력으로 많은 사건을 해결했기 때문에, 경찰청에서는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못한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 법. 프렌치 경감도 예외는 아니다. 단서를 찾아서 수많은 밤샘근무를 하고, 밤을 새운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아침 일찍 근무를 시작하는 습관이 있다.
셜록 홈즈의 곁에는 와트슨이 있었고, 네로 울프의 주위에는 항상 아치 굿윈이 있었다. 프렌치 경감에게 이런 절친한 동료는 없다. 그 대신에 프렌치 경감에게는 동원할 수 있는 방대한 경찰조직이 있다. 프렌치 경감은 이 조직을 효율적으로 이용해서 범인을 추적한다. <크로이든발 12시 30분>에서는 런던의 모든 약국을 수소문하고,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에서는 한명의 여성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직업소개소를 일일이 탐문한다.
끈질기게 추적하는 노력형 탐정, 프렌치 경감물론 프렌치 경감의 수사가 항상 이렇게 발로 뛰어다니는 것만은 아니다. 결정적인 단서는 언제나 프렌치 경감의 머리에서 나온다. 프렌치 경감은 복잡해 보이는 암호문에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해독하고, 알리바이가 분명해 보이는 듯한 인물에게 더욱 주목한다.
프렌치 경감도 경력이 쌓이면서 그의 수사도 점점 세련되어간다.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에서 여러 차례 벽에 부딪힌 것과는 달리 <크로이든발 12시 30분>에서는 사건의 전모를 명쾌하게 사람들 앞에서 재구성해낸다.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이 발표된 것은 1925년, <크로이든발 12시 30분>이 출간된 것은 1934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하물며 경찰청의 형사에게는 얼마나 많은 수사의 노하우가 쌓였을까.
<크로이든발 12시 30분>에서는 범죄수사 일반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범인은 온갖 재주를 부리면서 알리바이를 만들고 단서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도 프렌치 경감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프렌치 경감은 '범인에게 지혜가 없으면 오히려 잡기 힘들다'라고 말한다. 공들여서 쌓아놓은 범인의 트릭과 잔꾀가 교묘할수록, 그것이 거꾸로 범인의 발목을 붙드는 격이다. 자신이 만든 덫에 자신이 걸리는 것처럼.
그리고 <프렌치 경감 최대사건>에서는 범인에 대해서 '재기 번뜩이는 타입이라기보다는 용의주도한 인물'이라고 짤막하게 논평하기도 한다. 이 평가는 고스란히 프렌치 경감에게 돌려주고 싶은 표현이다. 프렌치 경감이야말로 재기 번뜩이는 명탐정이 아니라, 용의주도하게 범인을 추적하는 형사다.
탐정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명탐정의 특징이 없던 인물, '지혜가 없는 범인일수록 잡기 힘들다'라는 말을 하는 인물. 이 표현을 조금 변형시키면 어떨까. '지혜가 많은 형사일수록 범인을 잡기 힘들다'. 범인들이 제 덫에 제가 걸리는 것처럼, 재기발랄한 탐정들도 언젠가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본다면 프렌치 경감같은 스타일이 좀더 믿음직하지 않을까. 많은 베테랑형사들이 모여 있던 런던 경시청에서 프렌치 경감이 승승장구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크로이든 발 12시 30분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맹은빈 옮김,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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