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구인 어미와 백구인 아비 사이에 태어난 새끼들. 다섯 마리 중 네 마리가 백구다. 주인은 어미, 아비가 모두 순종이라고 우기는 데 별로 신빙성은 없어 보인다.
조명자
하여튼 마누라 허락 떨어지려면 부지하세월이라 생각됐던지 남편이 일을 저질렀다. 뭐 자기 친구 집 진돗개가 전문가도 탐내는 순종인데 그놈이 새끼 다섯 마리를 났다나. 순종이고 잡종이고, 사람도 혈통 따지지 말자는 캠페인이 일어나는 판인데 뭔 "구신 씨나락 까먹는" 종자 타령이냐.
침 튀겨가며 '순종' 타령을 하는 남편에게 콧방귀도 안 뀌었는데 마누라 무시하고 기어이 암강아지 한 마리를 들여 온 것이었다. 자기가 키울 것도 아니면서 마음대로 강아지를 데려온 것이 짜증나 눈이 똑바로 떠지지 않았는데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놈이 어찌나 귀여운지 차마 미워할 수가 없었다.
낯선 집이 두려운지 비척비척 툇마루 밑으로 숨어드는 놈을 덥석 안았는데 에구머니나. 하얀 털에 까만 참깨처럼 무수하게 붙은 점 점 점…. 바로 진드기 내지는 개벼룩이었다. 세상에 내 집 것, 남의 집 것 개종자들은 무수히 봐 왔지만 그렇게 많은 벌레는 처음 봤다.
어리벙벙한 놈이 안쓰러웠지만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툇마루 아래 숨은 놈을 잡아내 모기약을 분사하고 빗질을 해댔는데 손에도 잡히지 않는 점 같은 벌레들이 무수히 기어나왔다. 대충 잡히는 대로 뭉개 죽였는데도 털 속에 켜켜이 박힌 것들을 완전퇴치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