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아들' 꿈 채간 며느리 미우셨죠?

아들이 저 고운 제의 입은 모습이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등록 2007.09.17 14:15수정 2007.09.1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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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신부님의 제의들이 햇볕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신부님의 제의들이 햇볕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 김관숙

신부님의 제의들이 햇볕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 김관숙

주보 접기를 끝내고 나서 어르신들과 함께 햇볕이 쨍한 뜰로 나왔습니다.

 

"곱기도 해라."

 

옆 어르신 말씀에 돌아보니 신부님의 제의가 햇볕 나들이를 나왔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녹색(연두색) 제의도 있습니다.

 

아들이 복사 서던 날, 자장면 파티의 추억

 

녹색 제의를 보자 불현듯이 아들이 어렸을 때 처음으로 복사 옷을 입고 복사(천주교 미사 때 신부를 돕는 이...편집자 주)를 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신부님은 일반 주일이나 평일 미사시에 녹색 제의를 입습니다. 그날은 일반 주일이었습니다. 녹색 제의를 입고 주일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 곁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어린 아들이 얼마나 예쁘고 기특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무조건 녹색 제의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입니다.

 

복사가 되는 것은 영광된 일입니다. 하느님과 만나는 자리에서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날 우리 가족은 잔치를 벌였습니다. 남편이 점심에 자장면을 시켜 준 것입니다.

 

그때만 해도 자장면은 최고의 별식이었습니다. 말단 사원으로 늘 용돈이 모자란다고 투덜대는 남편이 비상금을 털어 생각지도 않은 자장면을 산 것을 보면 남편 역시 복사복을 입은 아들이 예쁘고 자랑스럽고 기특했던 모양입니다.

 

그날따라 자장면이 왜 그리 맛있었는지 모릅니다. 단무지를 아작거리며 한참 먹다가 보니까 내가 제일 빨리 먹고 있었습니다. 내 것만이 그릇 바닥이 하얗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긴 그때 난 싱그러운 눈빛에 먹성이 좋은 젊은 엄마였습니다.

 

누나인 두 살 더 먹은 딸애가 동생을 꼬드깁니다.

 

"다음 일요일에 또 니가 복사하니?"
"몰라."
"니가 해라, 또 짜장 먹게."

 

나는 지금도 자장면을 좋아합니다. 삼십 대인 딸과 아들은 자장면을 잘 먹던 그 시절을 까맣게 잊은 모양입니다. 자장면? 살 찐다구!

 

남편 역시 그 시절을 잊었는지 자장면은 별로라고 합니다. 남편은 살이 찌기 때문이 아니라 간이 짜서 별로라는 것입니다. 하긴 자장면이 좀 짠 편입니다. 그래서 나는 장을 절반만 넣어서 먹습니다. 그래도 짭니다. 그 옛날에도 자장면이 짰을 텐데 그때는 왜 그걸 못 느꼈나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르신들과 헤어져 뜰 한 쪽에 놓인 긴 의자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때 그 복사단의 아이들은 무엇이 되었을까. 물론 결혼들을 해서 어엿한 가장이 되었겠지. 아무리 바빠도 일요일이면 성당에 가고. 어쩌면 신부가 된 아이가 있는지도 몰라….

 

작은아들이 신부되길 바란 시어머니

 

"야 참 곱다."

 

아까 교무금을 낸다고 사무실에 들어갔던 어르신이 나오더니 내 옆에 와 앉으며 말합니다. 어르신들은 제의가 곱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신비스러워 보입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그 신비감이 그대로 살아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시어머니 생각이 나네. 삼십 초반에 혼자 돼서 두 아들을 공부 시키셨어. 작은 아들인 우리 영감이 신부가 되기를 바라셨더랬지. 아랫 마을에 사는 나랑 연애하는 걸 아시면서두 말야."
"실망이 크셨겠네요."

 

"엄청 컸지. 우리가 결혼 하던 날 밤 잠을 못 이루셨대. 아침에 보니까 두 눈이 퉁퉁 부셨더래. 아들이 저 고운 제의를 입은 모습이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어르신은 오래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니 생각에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작은 며느리인 어르신은 고향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었습니다. 당시 큰아들네가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시집살이는 안 하셨어요?"
"안 했지, 속 깊은 어른이셨거든. 나두 효도를 하느라구 했구. 그래두 속으론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자식은 부모의 뜻대로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만고의 진리입니다. 나도 겪고 있습니다. 아들이 성당에 다니지를 않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복사도 하고 주일학교도 빠지지를 않고 성당에 잘 다녔습니다. 그 기특하고 착한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과외다 뭐다 하며 공부를 핑계로 성당을 등지기 시작하더니 삼십이 넘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아들에게 뭐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종교는 자유라는 말도 떠오르고, 스스로 성당에 다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날이 오기나 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번은 내가 철딱서니 없게 물었지. '내가 이쁘지만은 않죠?' 그랬더니 그러시더라구. '니가 어릴 적에 마을 아이들이랑 우리 집에 세배 왔을 때 그 때 넌 참 귀엽구 이뻤다. 그때 그 이뻤던 모습이 아직두 생각나는데 어떻게 널 이쁘지 않게 보냐' 하시는 거야."
"보통 어르신이 아니시군요."

 

"그럼 그럼! 마음 그리 돌려 먹는 거 쉽지 않은 일이지."
"그러네요."

 

"얼마전 시어머니 제삿날에 영감이 문득 그러데. 어머니 소원 하나 못들어 드린 것이 가슴에 걸린다구. 그 순간 왜 그리 눈물이 났나 몰라. 자식에게 못해 준 건 아픔으로 남고 부모에게 못 해 드린 건 불효로 남지. 내 가슴엔 그 두 가지가 다 있어."

 

어르신의 눈에 눈물이 비칩니다. 나는 어르신의 그 눈물이 남의 눈물 같지가 않습니다. 마음이 아파옵니다. 내 가슴 속에도 어르신이 말한 그 두 가지가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시고 성인이 된 자식들은 묵묵히 제 갈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늙었습니다. 아무 능력이 없는 늙은이입니다. 아무 힘도 되어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자식에게 못 해 준 것들 중에 하나라도 해 주고 싶은데 마음뿐인 것입니다.

 

이제 내가 자식을 위해 해 줄 수있는 거라고는 밥상뿐입니다. 지난 날 자식들이 웃고 떠들며 즐겨 먹던 음식들을 생각해내는 일은 별로 어렵지가 않습니다.

 

흰콩을 불려 믹서에 갈아 콩비지를 만들어 배추 우거지를 넣고 새우젓 간을 해서 끓여 상에 올려 주기도 하고 삼계탕도 육개장도 내 방식대로 끓여 줍니다. 깻잎 장아찌도 담고 오이지도 담고 그리고 군내 나는 오이지를 납작 썰기해서 살짝 우려 돌로 눌렀다가 맛깔스럽게 무쳐 주기도 합니다. 물론 조미료는 전혀 넣지를 않습니다. 기껏 그 정도 등등을 선심 쓰듯이 가끔씩 놓아 주지만 나는 그게 내 힘인 양 정성을 다합니다.

 

기도를 하는 듯한 눈빛으로 아름다운 제의들을 바라보는 어르신의 모습이 내 어머니 같기도 하고 내 모습 같기도 합니다.

 

팔목 시계를 보니 낮 12시가 조금 지났습니다. 문득 아득한 그 시절에 먹던 자장면, 그 짠 냄새가 훅 하고 코 끝을 스쳐 갑니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히 웃고 말했습니다.
 
"형님, 우리 점심 같이 먹어요. 제가 짜장 사드릴게요."
"내가 요즘 아래 어금니들이 사달이 났어. 무른 음식도 조심하는 중야. 다 나으면 사 줘."

 

어르신은 '아유 더워' 하더니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눈으로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나도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친정 어머니를 따라 일어나듯이 그렇게 얼른 따라서 일어났습니다.

#제의 #신부 #복사 #자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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