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추방운동 전도사, 모란공원에 잠들다

[현장] 고 김현준 전교조 전 사무처장 떠나보내던 날

등록 2007.09.19 17:21수정 2007.09.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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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마지막 떠나기 전... 고 김현준 교사 영정이 전교조 사무실을 돌고 있다.

마지막 떠나기 전... 고 김현준 교사 영정이 전교조 사무실을 돌고 있다. ⓒ 윤근혁

▲ 마지막 떠나기 전... 고 김현준 교사 영정이 전교조 사무실을 돌고 있다. ⓒ 윤근혁

"지금 전교조의 상황이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 원인을 외부로 돌렸는데 많은 부분 내부에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인정해줄 때 상대방도 우리를 인정합니다. 이 인정 자체가 세상을 만들어주는 씨앗입니다."

 

암 투병 중이던 고 김현준 교사가 지난 7월 7일 동료 교사들이 준비한 행사장에서 한 인사말이다.

 

합법 전교조로 첫발을 뗀 99년 사무처장을 지내고 다음 해엔 부위원장을 역임한 그는 "동지들과 저도 굳건하게 삶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나가겠다"면서 발언을 마쳤다.

 

쏟아진 빗물 눈물, 흩어진 동료들을 모았네
 

a  전교조 부위원장 시절 김현준 교사.

전교조 부위원장 시절 김현준 교사. ⓒ 전교조

전교조 부위원장 시절 김현준 교사. ⓒ 전교조

그로부터 두 달을 넘긴 9월 19일 정오쯤, 김 교사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잠들었다. 83년 서울 신월중 영어교사로 교단에 선 지 24년 만이다. 향년 55세.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길을 떠나기 직전인 이날 오전 10시. 김 교사가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전교조 건물을 찾아왔다. 동료들이 차려놓은 노제에 함께하기 위해서다.

 

"일어나 창밖을 보세요. 김 선생님. / 구월인데 나뭇잎이 아직도 저렇게 푸릅니다. …일어나 우리와 함께 아이들이 있는 / 숲으로, 교정으로 가세요. / 당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 당신을 보내는 우리의 슬픔이 얼마나 큰지 / 쏟아지는 빗줄기가 알고 / 몰아치는 바람이 알고 있습니다."(도종환 시인 조시 ‘빗줄기가 알고 바람이 아는 당신’)

 

김 교사는 촌지거부운동을 제안하고 전국 학교로 전파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86년 5․10 교육민주화선언에 참여한 뒤, 89년 전교조를 결성하기까지 그는 참교육운동 전도사였다.

 

89년에는 서울지부 부지부장으로 전교조 창립에 앞장섰고, 해직 뒤인 90년에는 재야민주단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사무처장을 맡기도 했다.

 

이늘 고 김현준 교사가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함께 있는 대영빌딩 길섶에 들어서자, 한 줄기 두 줄기 빗방울이 쏟아졌다. 건물 마당 영전 앞에 세운 천막 또한 몰아치는 바람에 흔들렸다.

 

고인의 부인 김석란 여사와 유족들이 영정 맨 앞에 앉았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등 전교조와 민주노총 직원들 150여 명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앞서 서울 이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영결식에서 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은 "선생님은 일찍이 교원노조 건설을 주장하면서도 참교육 실천과 사회민주화운동으로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면서 "이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꿈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편히 잠드시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a 노제 전교조와 민주노총 직원들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대영빌딩 사무실 마당에서 노제를 지냈다.

노제 전교조와 민주노총 직원들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대영빌딩 사무실 마당에서 노제를 지냈다. ⓒ 윤근혁

▲ 노제 전교조와 민주노총 직원들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대영빌딩 사무실 마당에서 노제를 지냈다. ⓒ 윤근혁

영전 뒤에 걸어놓은 가로 4미터 세로 4미터 크기의 현수막엔 고인의 얼굴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참교육 실현에 바친 선생님의 뜻을 이어가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정희곤 전교조 부위원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반평생 자신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희생하셨던 전교조 앞에서 노제를 시작하겠습니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반주가 흘러나왔다.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전교조에 들어서는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네

 

고인의 친구이기도 한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운영위원장이 영정 앞에서 두 번 절한 뒤 마이크를 잡았다.

 

"현준아! 우째 이리 먼저 가버렸나. 우리 젊은 나이에 좋은 세상 만들자고 맹세를 해놓고…."

 

박 운영위원장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의 얼굴은 빗물과 눈물로 붉게 물들었다. 이어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것은 그의 울음소리였다. 장례부위원장을 맡은 정진후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의 흐느낌소리도 들려왔다.

 

더 거센 빗방울이 쏟아졌다. 흩어져 있던 참석자들이 천막 안으로 빽빽이 모여들었다. 빗물과 눈물이 이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한 것이다.

 

'참교육의 함성'이란 노래를 부르는 참석자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너와 나의 눈물, 뜻 모아 진실을 외친다. 보이는가 강물, 참교육 피땀 흐르는. 들리는가 함성, 사람 사는 통일세상…"

 

a 모란공원으로... 노제를 마친 장례차 행렬은 경기도 모란공원으로 떠났다.

모란공원으로... 노제를 마친 장례차 행렬은 경기도 모란공원으로 떠났다. ⓒ 윤근혁

▲ 모란공원으로... 노제를 마친 장례차 행렬은 경기도 모란공원으로 떠났다. ⓒ 윤근혁

10시 37분, 고인의 영정을 든 유가족이 건물 4층을 향했다. 방금 전까지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쳤다. 대신 햇빛이 고인의 영정을 환하게 비췄다.

 

먼 길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전교조 사무실. 김현준 교사의 얼굴은 밝게 웃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7.09.19 17:21ⓒ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현준교사 #전교조 #촌지추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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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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