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국현이라는 인물이 잔잔하긴 하지만 관심의 초점이 된 것 같다.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던 유학생 후배가 먼 곳에서 글을 기고하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정치에 관심이 없는 또 다른 후배가 밥 먹는 자리에서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기도 하니 말이다. 아마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는 너무나 심하지만 그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보이지 않으니 성공한 기업가로서, 시민운동가로서 그가 내놓은 대안과 전망이 관심을 끄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나도 ‘창조한국 10가지 구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문국현 솔루션>이라는 책을 제대로 훑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형식으로 문국현의 생각을 담은 이 책의 제1부는 매우 명료한 주장을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펼치고 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현재 한국 사회가 봉착한 위기가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육체노동과 국토 개발에 의존하는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고, 평생 학습으로 국민들의 지식과 창조 능력을 고양시키는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을 다양한 토픽에 근거해서 변주하고 있다. 지식 창조 경제, 중소기업의 활성화, 근로 시간의 단축, 여성 일자리의 창출의 중요성 등이 그것이다.
지난 10년 간 빠르게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구조 조정과 이에 따른 어마어마한 비정규직의 확대를 생각하면, 문국현의 생각은 이 땅의 기업가치고 독특하면서도 진보적인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는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의 생각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런데 책의 어디를 찾아봐도 이에 대해 거창하게 표현하고 있지는 않았다. 대신 이런 답변을 찾을 수 있었다. "남의 꿈을 생각할 수 있고 남의 행복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이런 점에서 그는 개별 기업가라기보다는 경제 전체에 대한 구상 그리고 사회 전체에 대한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국현의 경제 비전과 가치를 내 식으로 풀면 국민적 통합과 사회적 연대, 그리고 고숙련 노동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의 책에서 이른바 경제와 구분되는 정치에 대한 그의 사고를 분명하게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금민이라는 한 진보 정당의 정치가가 내건 ‘사회적 공화주의’를 통한 일종의 겹쳐읽기를 시도하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금민씨도 문국현과 비슷한 시기에 ‘한국 사회 위기 해소를 위한 정치 기획’이라는 부제를 단 <사회적 공화주의>를 출판했다. 지난 3년 간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터져 나온 여러 문제에 대한 논평과 해법을 컬럼의 형식으로 담은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은 ‘한국 사회의 미래, 사회적 공화주의’라는 제목이 붙은 제1부의 세 편의 글에 있다.
저자는 오늘의 한국 사회가 봉착한 문제를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본다. 그러한 위기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강화한 1987년 헌법의 탄생에도 불구하고 결선투표제의 부재와 비례대표제의 미약, 여전한 자유권의 제약 때문에 완성되지 못한 87년 체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게는 지난 십년 간 신자유주의적 재편으로 인한 사회 양극화와 이 속에서 일어난 다수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배제 때문이라고 한다. 똑같지는 않지만 문국현과 교차하는 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해법은 약간 각도를 달리한다. 오랫동안 근대 정치 철학을 연구한 사람인지라 금민은 공화주의에 대한 좌파적 전유라고 할만한 '목숨을 건 도약'을 시도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적 공화주의이다. 낯선 개념이긴 하지만 그가 내놓는 대답은 사실 명쾌하다. 국민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일정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국민이 정치적 주체가 되는 공화국이며, 따라서 우리가 우리 국가의 원리이자 목표로 삼고 있는 민주공화국의 완성일 것이다.
사회적 공화주의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주저 없이 이 낯선 개념을 받아들인 것은 20세기 역사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 결론은 특히 1960년대 운동과 1968 혁명에 대한 반추에서 나온 것인데, 인간의 해방이라는 근대의 프로젝트는 미리 전제된 것일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 개인들의 정치적 활성화와 연대에 의해서만 그 길은 개척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윤리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공화주의가 말하는 사회적 국가는, 국가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감안한다면 적절한 보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회적 국가의 경제적 토대는 무엇일까? 금민은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지는 않다. 대신 일단 말할 수 있는 것은 "시장이라는 매개가 제거된 직접적인 사회 통합의 전면화는 불가능한 망상"이라고 하면서 기본적인 통합 방식으로 시장을 승인하고 있다. 다만 시장 이외의 다른 모든 통합 방식을 파괴하려는 시장지상주의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는 나도 동의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시장적 통합에 대한 새로운 전망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이에 대해서는 빈곤을 다룬 글에서 일단을 내비치고 있다. 포괄적인 새로운 사회경제 강령이 필요하며, 이는 환경친화적이고 미래 전망이 있고 지속가능한 산업 육성과 고용 창출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여러 글에서 직업 교육 강화와 고숙련화, 지식 기반 노동으로의 전환을 통해 모든 이의 경제적 참여를 보장하는 탈배제 경제와 사람 중심, 환경 중심의 가치 경제를 주장한다.
여기서 금민의 사회적 공화주의는 문국현의 솔류션과 만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포괄적인 새로운 사회경제 강령의 한 부분으로 당연히 대안적인 경제 모델이 필요하며, 이를 구성할 때 필요한 중요한 방향을 문국현이 기업가의 경험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노동의 혁신이다. 즉 단순 육체노동에서 지식에 기반한 고도 노동이 산업의 기초가 되는 경제 모델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혁신된 노동을 수행하는 국민은 공동의 일인 국가의 진정한 구성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서로 어울리기 힘든 두 사람의 생각을 제3자적 비판이나 상호비판하지 않으면서 함께 검토할 수 있는 이유는 심각한 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패러다임의 구성은 혁신적인 것들의 대위법적 만남과 교차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누가 '트로이의 목마'가 되느냐는 중요치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