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이 겐지, 그의 치열한 기자정신을 기리며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기자라면 누구라도 가려 하지 않을까

등록 2007.09.29 11:58수정 2008.03.1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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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버마 양곤에서 부상한 채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일본APF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
27일 버마 양곤에서 부상한 채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일본APF 사진기자 나가이 겐지.로이터=연합뉴스

나가이 겐지(長井健司), 9월 27일 버마 양곤에서 무장 군인들과 경찰들의 무력 시위진압을 취재하다가 무장군인들의 총격에 사망한 그는 50살이다. 우리 나이로 51살, 57년 닭띠다. 그의 나이가 50이라는 사실을 일본 언론을 통해 처음 확인한 순간, 전율했다. 50의 나이에 분쟁 현장에 뛰어든 그의 용기가 무모해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왜 그는 그 나이에 그곳에 갔을까? 그가 프리랜서 기자라서? 기자로서 존재 확인을 위해 위험지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사실 먼저 떠오른 단상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50의 나이에 분쟁지역 취재에 나선 그를 한국의 언론 현실에서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 나이에 그 위험한 곳을 도대체 왜 간단 말인가.

일본 언론이 속보로 전한 그의 행적과 소신은, 그러나 이런 쓸데없는 호기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분쟁지역이면 어디든 누볐던 나가이 기자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일수록 누군가는 꼭 가야 되지 않겠는가."

그가 계약을 맺고 있었던 사진·동영상 제공 뉴스통신사인 APF(Asia Press Front)통신사의 야마지 대표는 나가이 기자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노모 미치꼬 여사(75)는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를 오갈 때부터 원래 위험한 일이이서 각오는 했었지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전했다.


일본 언론들은 그의 죽음과 관련해 분쟁지역을 누볐던 한 저널리스트의 '양심'과 '열정'에 새삼 주목하고 있다. 한국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진 것처럼 그는 프리랜서 기자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분쟁지역을 누볐다. 이번에도 당초에는 다른 취재 건으로 태국에 갔다가 버마 시위 소식을 듣고 25일 급거 버마로 들어갔다.

"무엇이 가능할까. 어떻게 하면 분쟁지역의 문제를 풀 수 있을까. 항상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나가이 기자는 분쟁지역의 현실을 전하는 것 못지않게 그 해법에 대해 고민했다는 것이 그와 같이 일을 했던 다른 기자들의 전언이다. 그가 팔레스타인 못지않게 이스라엘에 대해 취재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해법을 찾자면 분쟁의 당사자들을 모두 이해해야 했을 터이니까.

그의 이런 실천적인 저널리즘은 2002년 <미루도스>라는 시사월간지와 한 인터뷰에서도 잘 나타난다.

"현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면 팔레스타인들을 실질적으로 도와주고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떻게 해야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취재를 계속해왔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그는 취재 도중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라도 하려고 노력했다. 이라크에서는 수술받은 한 소년을 구하기 위해 암만까지 가 수술 후에 필요한 의료용품을 구해다 주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그린 영화 <파라다이스 나우>를 찍은 감독이 일본에 왔을 때는 그를 밀착 취재해 직접 편집까지 해 홍보용으로 제공하는 등 무료 서비스를 해주기도 했다.

 버마의 반정부시위대가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4일, 미얀마 양곤에서 군사정부에 반대하는 승려들의 거리행진 모습.
버마의 반정부시위대가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4일, 미얀마 양곤에서 군사정부에 반대하는 승려들의 거리행진 모습.AP 연합뉴스

"기회 된다면 누구든 가려 하지 않을까?"

팔레스타인을 주로 취재해온 일본의 저널리스트 시게노부 메이 기자는 그런 나가이 기자를 이렇게 회상했다.

"3년 반 전 그와 함께 하마스 간부를 취재할 때였다. 그는 '위험하더라도 내 힘껏 취재해 본 대로 보도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용기있는 저널리스트다."

그가 몸 담았던 APF통신사의 야마지 대표는 그의 죽음을 접한 27일 밤 11시 기자들과 만나 회견을 하면서 "지금 방콕에 또 다른 계약기자가 미얀마로 들어가기 위해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이 상태에서 취재가 후퇴하는 것을 나가이 기자는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기자가 미얀마 취재를 희망한다면 우리는 이를 적극 지원할 것이다."

그래도 궁금증은 남는다. 나가이 기자는, 또 다른 기자들은 왜 목숨을 저당 잡히면서까지 이런 위험한 곳의 취재를 자원할까. 나가이 기자는 그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기회가 된다면 우리 업계의 사람들은 누구라도 가려 하지 않을까?"

기자란 누가인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나가이 기자는 그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특히 한국 언론과 기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한국 대형 언론사 기자들 가운데 버마에 들어간 기자는 <문화일보>의 유희연 기자가 유일하다. 유희연 기자는 버마 사태가 발생하자 바로 현지 취재를 자원해 27일 버마에 들어갔다. 한 방송사 팀이 29일 현지에 도착할 예정이지만, 방송 송출이 어렵다는 이유로 바로 다시 나올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 아프간 한국인 인질 피랍 사건 때 정부의 아프간 입국 금지조치에 대해 왜 언론의 취재를 막느냐고 강력하게 항의했던 언론사와 기자들은 다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기자실 사수'를 외치고 있는 기자들은 정녕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쉰의 나이에도 분쟁 현장으로 달려갔던 한 일본 저널리스트의 삶과 죽음을 보면서 한편으론 전율하고, 또 한편으론 무참하게 부끄러워지는 또 다른 이유다.

나가이 겐지 기자. 저세상에서는 부디 평화롭고 평안하시라.
#미얀마 시위 #미얀마 #미디어워치 #일본인기자 피격 #나가이 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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