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7.10.07 14:43수정 2007.10.07 16:52
타일랜드로 가려던 예정을 바꾸어 캄보디아 해안을 따라 베트남으로 떠나는 날이다. 일단 캄폿(Kampot)이라는 도시에서 하루 쉬었다 가기로 했다. 캄폿을 향하는 버스는 정오에 떠난다. 시간이 남는다.
바닷가로 나갔다. 몇 안 되는 외국인이 수영을 하거나 늦은 아침을 먹는다.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는 관광객도 보인다. 온종일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팔자 좋은 배낭족들이다. 아침 일찍부터 과일이나 관광 상품을 파는 소년 소녀들이 관광객을 찾아다닌다. 깨끗한 바다의 색깔과 시샘하듯 불어오는 바람과 마음껏 부딪혀본다.
참 좋은 아침이다. Good Morning!의 뜻을 실감한다.
아침마다 호텔 앞에서 아는 체를 하던 사람이 운전하는 톡톡을 타고 버스 정류장을 향해 조금 일찍 나섰다. 정류장에는 한 대의 버스가 프놈펜 가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시아누크빌 (Sihanouk Ville)에서 프놈펜으로 가는 버스는 자주 있다. 주차장에 있는 서너 대의 버스에는 미성년자 성매매에 대한 경고가 쓰여 있다. 공공연히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캄보디아다. 그러나 미성년자를 성매매로부터 보호하기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버스는 낮12시를 조금 지나 캄폿을 향해 떠난다. 이 버스도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 버스다. 길은 잘 닦여있다. 버스는 쾌적한 속도로 달린다. 농부들이 들판에서 손으로 모를 심는다. 예전 한국의 농촌을 보는 것 같은 정겨운 풍경이다. 왼쪽으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높은 산이 펼쳐진다. 지도책에 보코산 (Bokor Mt.)이라고 소개된 산이다. 얼마 전에 비행기가 추락해 많은 한국 관광객이 희생된 곳이기도 하다.
세 시간을 조금 지나 캄폿에 도착했다. 도시 한복판으로 큰 강물이 흐르고 있으며 보코산을 뒤로 한 자그마한 동네다. 저녁을 먹고 호텔 앞에 있는 강으로 나왔다. 시원한 강바람에 추위를 느낀다. 비가 오려고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산 위로 구름이 모여든다. 구름의 모양이 북한지도 같다. 사진기에 담았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산 경치를 찍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 사람이기에 사진기를 들이댈 수밖에 없는 신기한 구름이다. 조금 있더니 번개가 치기 시작하면서 우기에 흔히 쏟아지는 장대 같은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곳 캄폿을 찾은 사람들이 주로 가는 곳은 보코산이다. 오토바이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오토바이를 빌렸다. 산 입구까지 포장이 되어 있다. 입장권을 받는 곳에서는 서너 사람이 잡담을 나누고 있다. 오토바이로 산에 올라갈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말을 건넸으나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다. 일단 오토바이로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 미화 5불의 입장료를 내고, 뒤에는 아내를 태우고 산을 오른다.
어느 정도 포장된 도로라고 들었는데 포장이 전혀 안되어 있다. 단지 예전에 포장된 흔적만이 보일 뿐이다. 혼자라면 모를까 두 사람이 타고 올라가기에는 무리다. 몇 번이나 시동을 꺼뜨리며 고생을 하고 있는데 자동차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젊은이들을 뒤에 태운 낡은 지프가 올라오고 있다. 자리가 있으니 차를 타고 산에 올라가란다. 오토바이를 길옆에 놓고 지프에 올랐다.
흔히 표현하는 똥차 중의 똥차다. 우리는 다른 젊은이들과 함께 짐 싣는 곳에 만들어 놓은 간이 의자에 앉았다. 자동차는 돌투성이의 산등성을 힘겹게 오른다. 궁둥이가 아파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난간을 잡고 일어섰다. 다리는 조금 아프겠지만 시야는 좋고 편하다. 가끔씩 자동차에 물을 부어가면서 간다. 산을 올라가면서 열을 받는 모양이다. 1시간 이상을 달린 후 자동차에서 내렸다.
폭포가 있는 곳이다. 15분 정도 안내원을 따라 걸으며 간다. 중간에는 사람들이 쉬면서 놀 수 있도록 짚으로 지붕을 만든 쉴 곳이 있다. 그러나 오래 사용하지 않아 지금은 잡초에 뒤덮여 접근을 할 수 없다.
폭포에 도착했다. 그러나 1시간 반 정도를 걸려 보러오기에는 평범한 흔히 볼 수 있는 폭포다. 안내원이 웃통을 벗더니 폭포가 떨어지는 물 안으로 들어가 더운 몸을 식힌다. 일행 중 수영복을 속에 껴입고 온 아가씨 두 명도 폭포 속으로 들어간다. 나도 신발을 벗고 발을 적시며 더위를 식혔다.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발을 물에 담그니 더위가 싹 가신다. 곧이어 다른 그룹이 도착해 폭포 주변이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쉰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카지노가 있는 곳을 향해 지프에 다시 올랐다.
십여 분 정도 더 가니 꽤 큰 건물이 나타난다. 1970년대까지 카지노 겸 호텔로 사용되었던 곳이라 한다. 육중한 돌로 잘 지은 건물이다. 지금은 오래된 유적지를 찾아온 느낌이 들 만큼 이끼와 잡초로 덮여있다. 대리석으로 된 층계 손잡이와 육중한 돌멩이들이 예전의 웅장함을 상상할 수 있게 해 준다. 건물 입구 벽에는 낙서가 많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 사람들의 낙서도 있다. “2007 01 07 이강명”, “07 01 20 손우현 손하현” 2007년 1월에 다녀간 한국 사람이 남긴 흔적이다.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는 교회 건물도 있다. 카지노를 즐기며 예배도 보았던 모양이다. 높은 산이라 오고 가는 구름이 교회 건물을 구름 속에 감추었다 내보이곤 한다. 이곳 카지노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산에 길을 내고 포장까지 하였으니 그들의 권세를 짐작할 만하다. 높은 산, 경치 좋은 곳에 카지노를 지어 놓고 즐기던 사람들,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교회 바로 옆에는 불교 냄새가 물씬 나는 석탑을 짓고 있다.
산 정상에 있는 요즈음 새로 지은 숙소에 들렸다. 두 명의 젊은 외국인이 날카롭게 생긴 마운틴 오토바이를 타려고 장화처럼 생긴 큰 부츠를 신고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얼마 전 러시아 비행기가 추락해서 많은 한국인이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도 인터넷을 통해 아는 것이 있기에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숙소에는 보코산에 대한 기록사진이 간단하게 전시되어 있다.
다시 움직일 것 같지도 않은 오래된 지프를 다시 타고 하산을 한다. 중간에 절벽 아래로 도시와 바다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경치 좋은, 지금은 폐허가 된 별장에 잠시 선다. 바로 앞에는 후콕 (Phu Quoc)이라 불리는 섬이 손에 잡힐 듯하다. 캄보디아 바로 앞에 있는 섬인데도 불구하고 베트남에 속해있는 섬이다. 베트남보다 국력이 약한 캄보디아의 서글픔을 보는 것 같다. 현재 베트남에 속한 국토의 많은 부분은 캄보디아 영토였다고 한다.
올라갈 때보다는 조금 쉽게 내려왔다. 예전에 포장이 되어 있었던 이 산길을 잘 보수만 했더라도 이렇게 어려운 여행은 안 해도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30여 년 동안 전쟁과 내전 그리고 아직도 부패를 청산하지 못하는 정부 때문에 지금도 캄보디아 서민은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숙소로 돌아왔다. 울창한 밀림을 생각했던 기대에 벗어난 산행이다. 산 속에 있는 유적지를 다녀온 기분이다.
어제 저녁처럼 식사 후 어둠이 깔린 강가로 나왔다. 젊은이 두 명이 우리를 향해 온다. 경계를 하며 그들을 맞았다. 첫 질문이 무엇을 하는 중이냐고 묻는다. (What are you doing?). 어이없는 질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무슨 상관이냐'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침 먹었느냐, 어디 가느냐'하고 우리도 인사를 하긴 하지만….
조금 이야기하다 보니 자신들은 고등학생인데 영어 회화를 하고 싶어 말을 걸었다고 한다. 어둠 속이라 얼굴 모습은 잘 보이지 않으나 착한 학생 같다. 30여 분 동안 그들과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영어를 가르쳐 주었다. 영어가 무엇이기에!
우리나라를 비롯해 비영어권에 사는 국민이 영어를 배우려고 쏟아 넣는 금전과 노력은 막대하다. 영어권에서 태어났으면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될 텐데….
덧붙이는 글 | 2007년 8월 초에 다닌 여행 기록입니다. 다음 회에 계속 이어집니다.
2007.10.07 14:43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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