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을 쏘는 헤라클레스.그리스의 영웅이 근대 작가에 의해 사실적으로 부활하였다.
노시경
우리 가족의 눈에도 낯설지 않은 에밀 앙트완 부르델(Emile Antoine Bourdelle, 1861~1929년)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잘 가꿔진 근육질의 남자가 활을 당기고 있었다. 백 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현대판 근육질의 남성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황동으로 만들어진 근육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어서 강한 남성의 힘이 느껴지는 듯하다. 인체의 순간적인 근육의 긴장감 속에서 인간의 생명력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 긴장감은 바위에 앞발을 내딛는 자세를 통해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고, 무언가를 노려보는 헤라클레스의 표정이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이다.
헤라클레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화 속의 인물이다. 뛰어난 명사수였던 그는 무엇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가? 그는 그리스 미케네의 왕이며 자기의 사촌인 에우리스테우스(Eurysteus)에게 열두 가지 과업의 수행을 명령받았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이 전사는 이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전설 속의 스팀팔로스(Stymphalos) 호수 주변 숲 속의 새를 겨냥해서 활을 당기고 있다. 단단한 발톱과 부리를 가진 이곳의 무서운 새들은 사람과 가축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이 새들을 몰살시키라는 임무를 받은 헤라클레스가 아침 일찍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을 향해 화살을 쏘는 순간이 바로 이 작품이 포착하고 있는 순간이다.
헤라클레스의 활을 당기는 순간이 아주 긴장되고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근육의 긴장감은 더할 나위 없이 강조되어 있고, 활을 쏘는 자세를 최대한 안정시키기 위해서 양다리는 최대한 넓게 벌려져 있다. 활을 당기는 강력한 팔은 뒤로 쭉 뻗어서 당장에라도 움직일 듯하다. 얼굴은 활과 함께 활이 향하는 공간으로 향하고 있다. 스팀팔로스 새들을 노려보는 헤라클레스의 눈은 이 작품의 공간이 저 멀리 허공에까지 연장되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들은 절대적인 미와 엄격한 형식미, 건강한 순수함을 추구하고 있었다. 근대 조각의 유명 작가인 에밀 앙트완 부르델은 분명히 고대 그리스 조각의 단순함과 힘에서 영감을 얻었음이 틀림없다. 로댕의 제자였던 부르델이 걸출한 스승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기 세계를 보여주었던 작품이 바로 이 헤라클레스이다.
헤라클레스의 뒤틀린 근육과 같은 인체의 해부학적 묘사는 고대 그리스 조각들을 보는 듯하다. 그의 헤라클레스는 사실적이고 이상을 추구하는 고대 그리스의 고전적 양식에 활기가 더해져 있다. 나는 이 활력 있는 조각을 손으로 한번 만져보고 그 촉감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리스 신화에 심취해 왔고, 그 신화 중심의 율리시즈(Ulysses)와 아킬레스(Achilles), 헤라클레스는 현실과 신화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내 기억 속의 헤라클레스는 펠레폰네소스 반도에서 지중해의 작은 섬까지 모험의 여정을 펼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나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내 눈앞에서 활시위를 당기며 그의 모험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흑해와 지중해를 누비던 진취적인 신화 속 인물이자 그리스 아카이아(Achaea) 역사 속의 영웅이었다. 그의 험난한 모험과 사랑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근대 작가에 의해 사실적으로 부활한 것이 이 작품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의 진취적 기상이 영웅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그 이야기는 2천 년 넘는 세월이 지난 후에도 대작가에 의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헤라클레스의 화살 시위는 그리스인들의 진취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앞에서 딸의 사진을 찍고, 아내의 사진을 찍고, 우리 가족의 사진을 찍었다. 나는 유명 작품 앞에서 사진 찍기에 열중인 한국 관광객이 되어 있었다. 우리 가족사진은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프랑스 청년이 찍어주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인화한 이 가족사진의 가족들 머리 위로 옷을 다 벗고 활을 당기는 헤라클레스의 실한 성기가 걸려 있었다. 이 사진은 약간 민망한 나체 때문에 서재를 장식하는 우리 가족 대표 사진에서 제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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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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