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어머니는 처음부터 지쳐 있었다.
전희식
바퀴의자를 돌리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고개를 의자 뒤로 거의 90도로 젖히고 눈을 감고 계신 것이었다. 나는 소름이 확 끼쳤다. 옆에는 아까 만났던 뻥튀기 장사 트럭이 계속 시동을 켜 놓고 있어 배기가스가 숨을 막히게 하고 있었는데 그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어머니를 흔들었다.
어머니 고개가 그냥 덜렁덜렁했다. 모든 게 한 순간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와락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었다. 어머니 머리를 껴안았다. 온 세상이 샛노랗게 변했다. 어머니는 그사이 땡볕에 얼굴이 그을려 있었고 고개도 못 들고 눈이 꿈질꿈질했다. 고개를 들어 주었더니 겨우 눈을 뜨는데 초점이 없었다.
순간 나는 형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리산 수련장으로 떠나오는 날 형님은 그랬었다.
"거기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보상 해주는 곳이야? 허가가 난데냔 말이야?"
추궁하듯이 몰아붙이는 형님한테 나는 순간적으로 화가 솟구쳤다. 한 달 가까이 어머니가 심적 저항감 없이 지리산 수련장에 갈 수 있도록 시나리오를 짜고 옛날 사진을 현상하여 예행연습까지 하면서 준비하고서 모든 비용을 나 혼자 마련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만약의 사고에 대한 책임까지 나더러 지라는 것이어서 그동안에 쌓인 불만까지 실어 쏘아 붙였다.
"이 깊은 산골에서 내가 어머니 모시다 사고 나면 그것도 내가 보상해야 되는 것이오?"라고.
그 순간이 떠오르면서 당시의 격앙되었던 감정이 되살아나 어머니를 껴안고 나는 울부짖듯이 흔들어 댔다.
"어머니. 어머니."
겨우 눈을 뜬 어머니는 지금까지 기세는 다 어디가고 모기만한 소리고 "와 이카노. 나 여기서 다 듣고 있다. 와 이카노" 하셨다. (25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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