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총과 각저총고구려 고분벽화의 백미인 수렵도와 씨름도가 그려져 있는 '쌍둥이' 무덤이다. 앞의 것이 무용총이고 뒤가 각저총인데, 현재 쇠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어 무덤 안을 들어가기는커녕 접근조차 어렵다.
서부원
지안에 들어서자마자 오회분(五墳)으로 잘 알려진 통구고묘군(通古墓群)을 찾았습니다. 오회분이란 투구를 뒤집어 놓은 듯한 다섯 개의 무덤이 연이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으로, 북한에서는 그냥 '다섯 무덤'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 중 일반인들에게는 5호분만 개방한 채 안내원의 인솔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비스듬한 지하 통로를 내려가자 각진 돔 형태의 현실(玄室)이 나타납니다. 사방 벽면에 사신도가 뚜렷하고, 우물천장의 층층마다 신화의 내용을 담은 벽화가 남아 있어 흥미롭습니다.
비록 벽화의 해석을 두고 중국과 우리나라가 서로 어긋나 있어 역사적 접점을 찾기가 쉽진 않지만, 그보다 우선 관심을 두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워낙 훼손이 심각해 벽면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습기로 인해 곳곳에 희끗희끗한 곰팡이가 덕지덕지 끼어 있습니다. 현실 안이 온통 퀴퀴한 냄새가 가득 찰 정도입니다.
산책로와 벤치를 갖추고 공원처럼 꾸며진 오회분을 나와 단출한 무덤 두 기가 어깨동무하듯 나란히 붙어있는 무용총(舞踊塚)과 각저총(角抵塚)을 향합니다. 기실 고구려 고분이 유명한 것은 그 안에 그려진 벽화가 뚜렷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며, 그 고구려 고분 벽화들 중에도 첫 손가락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말을 탄 채 활로 사냥하는 그림인 수렵도(狩獵圖)와 새가 앉아있는 나무 아래 맞붙어 씨름을 하는 그림인 씨름도입니다. 이 벽화들의 주인이 각각 바로 이 두 고분입니다.
이 두 벽화는 미술 교과서나 박물관 등에서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을 뿐 실물은 직접 볼 수 없습니다. 고분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굳게 잠겨 있을뿐더러 주변에 2m도 넘는 철로 된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고 곳곳에 감시 카메라가 눈을 부릅뜨고 있어 아예 접근조차 꺼려집니다. 두 고분의 입장에서 보면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모양새입니다.
울타리에 기대자 달려들 기세로 컹컹거리며 짖는 개 한 마리와 함께 허리 구부정한 노인 한 분이 길을 막아섭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듯 손사래를 치는 그는 수묘인(守墓人)마냥 허름한 집을 짓고 고분 두 기를 베개 삼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무덤 안 벽화를 들여다 볼 수 없어 아쉽지만 이 '쌍둥이 고분'의 백미는 또 하나 있었습니다. 고분의 높은 역사적, 예술적 가치에 비해 무덤 규모도 작고 관리도 허술해 '대우'가 초라하지만, 대략 50m의, 산책하듯 두 무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시골 마을의 고샅길 마냥 소담한 듯 정겹습니다. 보도블록이나 콘크리트를 덮지 않은 채 옛 모습 그대로의 질박한 멋이 남아있는 산책로입니다.
무용총과 각저총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고구려 유적의 중심이랄 수 있는 태왕릉(太王陵)과 광개토대왕릉비(廣開土大王陵碑), 장군총(將軍塚)이 있습니다. 관광객들에게 애써 지안에 온 이유를 단 한 가지만 꼽으라면 예외 없이 이 세 유적을 보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정도로, 이 지역의 중요한 랜드마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