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군요. "지식인들의 태만" 때문에 사람들이 "공산주의가 나쁘지만 왜 나쁜 줄 모르는 세상"을 고쳐 주고 싶어서 이런 책을 쓰셨군요.
그렇지만 마음이 아립니다. 우리 사회에서 왜 '반공주의자 아닌 사람'은 받아들여질 수 없지요? 우리가 비판할 대목이라면, '공산주의라는 사상'이나 '마르크스 사상'이 아니라, '공산주의 사상을 잘못 펼치는 사람'과 '마르크스 사상을 획일로 휘두르는 사람'이 아닐는지요.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와 민주'를 부르짖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이 '자유와 민주를 제 뱃속만 챙기려는 검은 속셈'으로 뒤틀어 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는 어떤 제도나 틀거리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제도나 틀거리를 움직이는 사람들한테 문제가 있다고 느낍니다. 제아무리 도덕과 철학을 똑똑하고도 알뜰하게 잘 배운 사람이라 하지만, 자기가 배운 도덕과 철학을 옳지 못한 쪽을 편들고자 함부로 쓰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 잇속을 채우려고 이웃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때에는 지식이란 무엇일까요.
<노동조합의 조사연구입문>(백산서당,1984)이라는 책이 보입니다. 조합운동을 할 때에 '이상과 실천을 헷갈려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엮은 작은 책이라 하는데, 이제는 옛날 자료가 되어서 쓸모가 많이 떨어지리라 봅니다. 그러나 지난날 전두환 독재라는 서슬퍼렇던 그때에도 이런 책을 꿋꿋하게 펴내면서 힘껏 싸우던 사람이 있었음을 돌아보는 자료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이 책 하나 펴내며 가슴 졸였을 책마을 사람, 이 책 하나를 숨겨 가면서 애틋하게 읽었을 노동조합 사람을 가만히 떠올려 봅니다.
나운영의 <스타일과 아이디어>(보이스사,1975)는 노래 문화에 크게 이바지한 나운영 님이 쓴 수필을 모은 책. 책이름만으로는 나운영 이이가 어떤 글을 썼는지 알기 어렵겠지요. 더구나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 사람 글인데.
.. 민속음악은 지금까지 비교적 많이 수집되어 왔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주로 국문학자들에 의해서 가사만이 수집 대상이 되어 왔던 것이다. 무릇 성악곡은 먼저 가사가 있고 이 가사에 의해서 곡이 만들어지는 것이니 어디까지나 가사와 곡을 한데 붙여서 생각해야 될 것이 아닌가? … 어느 나라나 민속악기가 있다. 민속음악은 악기와 더불어 자라 왔고 민속악기 또한 음악과 더불어 자라 왔다는 점을 생각할 때 민속음악과 민속악기를 분리시켜서는 안 될 말이다. 이제 제주도 민요를 놓고 예를 들어 본다면, 제주도 민요는 거의 모두가 노동요이기 때문에 악기가 필요없다. 그러나 유일무이한 악기(?)로 허벅이 있다. 즉 물을 담아 나르는 항아리를 두드리며 소위 허벅장단을 치는 모습을 볼 때, 적어도 제주도 민요만은 허벅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이 성립된다 .. <13, 16쪽>
우리 문학을 이루고자, 우리 예술을 이루고자, 우리 그림이나 사진이나 노래를 이루고자, 우리들이 흘린 땀방울은 얼마나 될까요. 톨스토이를 읽으며 눈물과 웃음을 얻었다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 스스로 우리 이야기를 엮어내려고 힘쓰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바이얼린이나 플롯 타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해금이나 단소는 처음부터 불어 보려고 마음 쓰지 않는 일이 문제입니다. 해금이나 단소로는 국악만 키거나 불러야 하는 줄 생각하는 일이 문제입니다.
.. 국악의 현대화 작업은 마땅히 국악을 이해하는 양악인이 솔선해서 착수해야 된다고 나는 단언하고 싶다. 왜냐하면 양악에 있어서의 악전 또는 통론 정도의 지식만을 가지고 마치 양악에 통달이나 한듯이 생각하고 있는 국악인이 어찌 국악의 현대화 과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냐 말이다 … 구미의 현대음악이 자기 나라의 고대음악과 특히 민요의 발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 끝으로 대개 종합대학에는 음악대학이 있다. 그중에서도 연세대학교나 이화여자대학교에는 음악대학 안에 종교음악과가 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 음악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성균관대학교에도 文廟樂을 포함한 아악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유교음악과가 설치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 <19, 26쪽>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책을 읽는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삼국지>나 <서유기>를 아이들한테 읽히는 일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와 문화와 문학을 읽고 느끼고 마음으로 삭이는 가운데 함께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삼국지>가 아니라면, 어딘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어진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미국말을 잘 익혀서 나라밖 사람하고 말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말과 글은 업수이 여기거나 제대로 안 익혀도 되지 않습니다.
커피를 좋아하고 서양종교를 믿는다고 해도,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땅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고 이 땅에서 부는 바람으로 숨을 쉽니다. 이 땅에서 거두어들이는 푸성귀와 곡식과 열매를 먹습니다. 이런 우리들이 우리 땅과 겨레와 나라를 모르면서 나라밖 문화나 문물에만 온마음을 쓴다면, 우리 삶은 어찌 될까요. 그저 성조기 휘날리며 미국 섬기기를 하는 식민지 노예살이에서 벗어날 길이 있겠습니까.
김제동의 <라일락 향기>(한국교육공사,1978)라는 책은 교사일을 맡고 있는 분이 쓴 수필을 모은 책. 이이는 여주와 양평과 수원과 공주 들을 거쳐서 인천으로 와서 제물포고등학교 교장을 맡았다가 인천여고 교장도 맡았다고 합니다. 이때가 1978년이니, 이제는 한참 앞서 정년퇴임을 하고 조용히 지내겠지요. 아직까지 살아 계시다면.
.. 물론, 우리들 세대와 오늘날의 젊은 세대와의 가치관의 차이는 있지마는 진리에는 그렇게 엉뚱한 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도둑인 아비라도 자식이 도둑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아비의 그릇된 말, 옳지 못한 행동에서 자식은 자기도 모르게 도둑의 방향으로 다름질쳐 가는 것이다 .. <44쪽>
1970년대에 20~30대 젊은이였을 사람을 바라보며 쓴 글입니다. 어느덧 그 뒤로 서른 해가 흘렀으니, 오늘날에는 50~60대가 되었을까요. 오늘날 50~60대가 된 분들은 지금 20~30대를 살아가는 젊은이 앞에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예전과 똑같은 말?
대통령이 되겠다며 나서는 분들 말을 들어 보면서, '당신들 딸아들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며 살아도 좋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 나라에 새로 태어나서 자라나는 아이들도 그이들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며 살아도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교과서에 '돈 많이 벌면 그만'이라는 이야기를 넣으면 좋을까요. 아이들이 앞으로 꿈꿀 자기 모습이 '돈 많이 버는 사람'이면 좋을까요.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들이 버는 돈은 어디에서 샘솟아 나올까요.
<4> "맨날 와도 돼"
이럭저럭 책 구경을 마치고 책값을 셈합니다. 책값을 셈할 때, '마을로 가는 책집' 지킴이가 된 할아버지가 한 말씀 합니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손님이 많았지." 저도 그 예전을 어렴풋이 떠올려봅니다.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헌책방 둘레는 그냥 놀이터처럼 오갈 뿐이었습니다. 이곳을 헌책방거리라고 느끼며 책을 산 때는 얼추 중학교 적부터이지 싶고, 중학교 적에는 학기 첫머리에 교과서와 문제모음 따위를 싸게 사려고 왔던 일만 떠오릅니다.
그때는 헌책방마다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책을 사려는 학생과 학부모는 한데 뒤엉켜서 서로서로 '○○학교 ○학년 ○○과목'을 외쳤고, 헌책방 일꾼들은 이 소리에 맞춰 책을 집어서 흔들면서 얼마라고 외칩니다. 자기가 바라는 책을 외쳤던 손은, 돈을 흔들며 흥정을 합니다. 서로 흥정이 이루어지면, 돈 쥔 사람은 앞쪽으로 돈을 휙 던지고, 헌책방 일꾼도 책을 휙 던집니다. 책이 없었을 때에는, 거의 국정교과서로만 수업이 이루어졌던 때에는, 책, 아니 참고서와 교과서는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었고, 이 물건은 곧바로 맞돈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런 사람물결은 제가 고등학교를 들어서던 즈음 조금 누그러졌지만, 학기 첫머리마다 바글대던 물결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물결은 학기 첫머리가 거의 지나갈 무렵인 4월쯤이면 가라앉습니다. 이맘때 자습서나 문제모음을 사러 오면 느긋하게 책을 골라 가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책값도 한결 눅고.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칠 무렵, 독일말 참고서를 찾다가 헌책방 깊이를 느끼고 나서는, 헌책방에 와서 참고서를 찾거나 뒤지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는 새 학기 첫머리를 더더욱 꺼렸습니다. 온통 참고서만 찾아대는 사람들 물결에 휩쓸리기 싫었고, 참고서와 교과서만이 책인 줄 아는, 아니, 책도 아닌 시험문제쪼가리를 책으로 여기는 무리에 휘말리기 싫었습니다. 우리가 볼 책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마음을 갈아 주고 보듬어 주고 북돋워 주고 돌보아 주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참고서만 찾아대는 학생들보다, 학생들이 참고서만 찾도록 이끄는 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이 더 싫었고, 학생들이 참고서만 보도록 짓누르고 있는 이 나라 교육 얼거리가 몹시 싫었습니다. 우리는 왜 교과서 지식만 외워야 하고,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시쟁이 소설쟁이 작품을 읽어서는 안 되었을까요(이즈음―1991~1993년―,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 문학을 읽으면, 또는 교과서 아닌 책을 학교로 가지고 와서 읽으면, '불온도서 읽는다'는 죄목으로 책을 빼앗기곤 했습니다)? 우리 마음을 살찌워 줄 좋은 책 하나를 우리 눈길로, 우리 마음길로, 우리 손길로 고르거나 찾아서는 아니 될 일이었을까요?
지난날 '창영서점' 간판을 걸고 헌책방 살림을 꾸리던 할아버지는, '마을로 가는 책집' 간판을 걸고 헌책방 한켠을 지키는 요즈음도 셈대 한쪽에 조그마한 라디오를 올려놓고 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조곤조곤 새소식이 흘러나오고 노래와 상품광고가 줄을 잇습니다. 벌써 열 몇 해 앞서부터도 눈이 좋지 않아 책을 읽을 수 없던 할아버지였다고 느낍니다. 할아버지는 책을 읽지 못해, 책에 담긴 줄거리는 잘 모르시겠지요. 하지만 책마다 누가 알맞은 임자인지는 몸으로 느끼리라 봅니다. 몸뚱이에 달린 눈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튼튼하게 기둥이 되어 주고 있는 속눈으로 책손을 만나고 헌책 하나 보듬는구나 싶습니다. "어, 자주 와. 아니, 요 앞에 사니까 맨날 와도 돼. 책은 안 사도 돼. 언제든 구경하러 와."
덧붙이는 글 | - 인천 배다리 〈마을로 가는 책집〉 / 전화 따로 없음
- 달마다 둘째와 넷째 목요일만 쉼
2007.10.12 15:56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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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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