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통'의 민주당은 왜 이인제를 택했나

"어어, 하는데 굴러갔다"-"경선불복 거부감 없어졌다"

등록 2007.10.16 15:34수정 2007.10.1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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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6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 지명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인제 후보가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16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 지명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인제 후보가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이인제 의원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그것도 56%가 넘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됐다.

올해 5월 민주당에 복당한 뒤 5개월만에 대선 후보가 되기 전까지 그의 행적은 어지러웠다. 그는 40세였던 88년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13대 국회에 진출했고, 3당 합당으로 민자당에 결합하면서, 김영삼 정부 시절 초대 노동부장관, 초대 민선 경기지사를 지내는 등 잘 나가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97년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서 2등으로 탈락한 뒤 탈당해 국민신당으로 15대 대선에 나서 500만표(3위)를 얻는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경선에 불복해 신한국당을 탈당하면서 정치적 부침이 시작됐다. 대선 다음해인 98년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의 합당에 따라 새천년민주당으로 옮겼다.

두 차례 경선불복, 8번의 당적변경

2002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초반에는 '이인제 대세론'이 주도했으나 중반에 노무현 후보에게 뜻밖의 패배를 당하고 중도사퇴했다. 그는 '노풍' 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어 대선 직전인 12월 1일 노무현 후보의 국가관을 비난하며 민주당을 탈당해 자민련에 입당했다. 대선에 나서지는 않았으나 사실상 두 번째 경선불복이었다.

2003년 불법대선자금 사건과 관련해 구속됐으나, 최종적으로는 무죄판결을 받아냈고, 올해 1월에 국민중심당에 합류했다가 민주당에 복당했다. 4선의원, 정치역정 20년간 8차례 당적변경을 기록했다.


현행 선거법에서 경선 출마자의 경우 탈당 후 대선에 독자 출마하는 것을 막은 조항은 '이인제 선거법 조항'이라고 할 만큼 이 후보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민주당은 왜 이인제를 선택했을까. 더욱이 그의 상대는 민주당사에 사진이 걸려있는 조병옥 박사에 이은 2대 정통민주당원인 6선의 조순형 의원이었다. 조 의원은 명망뿐아니라 출마선언 전후로 범여권 지지도 3위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조순형 의원쪽은 이 후보쪽의 선거인 명의도용, 당의 묵인 아래 자파 선거인의 명부 누락 등 불법, 부정 선거 때문에 패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통 당원들은 '어어' 하는 가운데 굴러가고 있다"

조 의원의 전 대변인 장전형씨는 "정통당원들은 현저하게 투표에 나서지 않고 민주당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동원된 사람들이 나서면서, 이렇게 돼버렸다"고 말했다.

전통당원들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열에 대한 회의감과 자책감, 올해에도 이른바 대통합이 무산된 것에 대한 자포자기에 빠져 있는 가운데 전국선거를 치러 본 이 후보쪽에서 모집해온 당외부세력이 선거를 좌우했다는 것이다. 그는 "정통 당원들은 '어, 어' 하는 가운데 굴러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년 민주당원'이었으나 불공정 경선을 주장하며 탈당한 인천지역의 이아무개씨는 "조 의원이 너무 앞서가면 흥행이 안 되니, 당신이 모은 표를 김민석 후보 쪽으로 넘기라는 회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2등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이인제 후보에게 표를 넘기라고는 할 수 없으니, 표를 분산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박 대표가 2002년 대선경선 때도 같은 편이었던 이 후보를 돕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장전형씨도 "조 후보의 출마를 끌어냈던 박상천 대표가 왜 중간에 태도가 변했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제기한다.

당 주변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단일화 국면에서 다루기 어려운 조순형보다는 이인제를 지원한 것"이라는 그럴 듯한 얘기도 나온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경선 후보 중 한 명인 김민석 후보는 "당이 정체성 위기를 겪으면서 '호남 자민련'으로 전락할까 걱정"이라는 우려를 표시했다. 선거전략이라는 측면이 있겠지만, 실제 이런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a  16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 지명대회에서 이인제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되자 이 후보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16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 지명대회에서 이인제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되자 이 후보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 남소연


"이인제, 처음에는 평민당으로 출마하려 했었다... 거부감 거의 희석"

이같은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이인제 후보의 압승은 부인할 수 없다. 아무리 당이 쇠약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그는 과반수를 가뿐히 뛰어 넘었다.

처음에는 조 후보를 지지했던 황태연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장(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권론인 '지역분권론'의 주창자)은 "한나라당에서 이명박씨가 후보가 되고, 신당에서 정동영 후보가 대세를 잡아가면서 그 대항마로는 이인제 후보가 적격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조순형 의원이 후보가 되면 신당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까지 했던 인사다. 그는 민주당에는 이 후보에 대한 거부감은 매우 미약한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97년 경선불복은 민주당 입당과 선대위원장으로서 2000년 총선때, 경선출마 과정에서 이미 다 없어진 것이고, 2002년 탈당과 DJ 비판은 복당 뒤 이 후보가 두 달간 전국을 돌면서 적극 사과해, 거의 희석됐다는 것이다.

경선불복과 탈당은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정 후보의 국정실패 책임과는 달리 국민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친 것은 없다는 주장이다.

"민주당, 이인제도 노무현에게 함께 당했다는 동병상련 정서 있다"

정통성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 후보는 88년에 처음에는 평민당에서 안양지역 공천신청을 했으나 이미 후보가 정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통일민주당으로 갔던 것"면서 "그가 군사정권 출신자는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DJ를 비판했던 것도 당내의 반DJ 정서로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고 분석한다.

오히려 민주당원들은 이 후보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부에게 핍박받았다는 '동병상련' 정서가 있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앞서의 '20년 당원' 이아무개씨도 "경선이 불공정했다는 것이지 이 후보 자체에는 거부감이 없다"고 말한다.

이 후보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의 입'으로 이 후보를 맹공했던 유종필 대변인과도 앙금을 털어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4선의원, 장관, 도지사, 대선 후보의 화려한 경력을 지닌 이 후보가 전국 선거의 경험과 불퇴전의 권력의지를 바탕으로, '감 떨어지기를 기다렸던' 조순형 의원에게 압승했다는 것이다.

역시 처음에는 조 의원을 지지했던 한 핵심인사는 "민주당 정통성 문제는 있을 수 있지만, 조 의원으로는 선거를 치를 수가 없다고 봤다"고 말한다. 선거준비가 안 돼 있었다는 주장이다. 또 이 후보는 호남이 내놓은 충청출신 후보라는 점에서 '호-충' 연합의 적격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국민은 그를 받아들일까

이 후보는 조순형 의원과 신국환, 장 상 후보 등이 법원에 냈던 경선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도 기각됨에 따라 당내에서는 장애물도 없어진 상태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내정자를 낙마시켰던 조 의원도 별 힘을 쓰지 못한 것이다.

이제 문제는 민주당 바깥이다. 여전히 호남과 민주당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DJ가 후보단일화 국면에서 이인제 후보를 어떻게 대할지 주목거리다. 더 크게는 국민들이  '경선불복'의 대명사로 낙인찍힌 이인제 후보와 그를 대선 후보로 뽑은 민주당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다.

현재까지 국민들의 관심은 '무플'수준이다.
#민주당 #이인제 #조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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