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우리 4남매.
배지영
그 해 여름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되었다. 계절이 바뀌고, 그 애가 일반 병실로 옮겨진 뒤에야 우리는 제대로 슬프고 화가 났다. 술 마신 그 애가 친구를 데려다주고 오겠다는데도, 오토바이 열쇠를 건네 준,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살아 있는 자체만으로, 남동생한테 평생 받을 효도를 다 받은 엄마는 의연했지만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애는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얼굴뼈도 주저앉아서 몇 번이나 수술을 했다. 그 애 방 인형은 모두 다리에 붕대를 감고, 한 쪽 눈은 빨간 약을 바른 채 안대를 하고 있었다. 창석이는 사람들과 부딪히기 싫어했고, 학교에도 복학하지 않았다.
남동생은 겉모습에서 사고의 흔적을 지워냈을 때에 서울로 가서 독립했다. 어쩌다 하는 전화 통화로는 그 애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 확인할 뿐이었다. 올 여름, 5년만에, 누나들이 보고 싶다고 찾아온 남동생을 만났다. 그 애 일터가 끝나는 시간은 새벽, 아침 해가 뜨면 생기를 잃는다. 더구나 운전해서 왔으니 더 피로했을 터였다. 자고 싶다고 커피를 달라고 했다.
남동생은 커피를 마시고 나서 잠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3년 동안 모은 적금으로 원하던 자동차를 샀다. 고3 때는 입시 공부를 잘 하고 싶다고 침대를 사 달라고 했다. 물론, 그 애는 새로 바꾼 침대 위에서 잠을 잤고, 대학에도 들어갔다. 바라던 대로 이루며 살던 애였다.
사고 뒤, 장애물 달리기를 하듯 살아왔을 창석이에게 유머가 돌아와 있었다. 우리는 오래간만에 모여 한 공간에서 웃고 떠들다가 잠이 들었다. 어릴 때, 우리 방으로 스며들던 달빛의 감촉도 떠올랐다. 그 애의 아픔을 속속들이 알 수 없어서 괴롭고 미안하고, 죄책감까지 들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며칠 전에 창석이는 여자 친구를 보여주고 싶다는 '통보'를 해 왔다. 남동생이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대견했다. 나와 동생 지현이는 전화 통화를 하다가도, 좋아하는 가수 공연에 갔을 때처럼 꺅! 꺅!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처남이 여자 친구를 데려온다고 하니까 뭐하는 사람이냐부터 물었다. 나는 단호했다.
(째려보며) "킬러만 아니면 돼."
창석이가 오기로 한 날, 지현이네 부부는 대청소를 두 번 했다. 친정 부모님들은 신경이 곤두서서 그 애들이 왔느냐고 자꾸 전화를 걸어오셨다. 손에 땀이 나는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 같았지만 뭔가 자신감이 없는 게 느껴졌다. 나는 지현이가 "창석이 여친"이라고 말하는 게 거슬렸다.
"배지현, 네가 아무리 내 동생이라고 해도, 너는 좀 싸가지가 없는 편이야."
"뭐?"
"여친이 뭐냐? 여친 님, 여친 사마. 그렇게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