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자료사진)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놀이'가 퍼져간단다. <중앙일보> 인터넷판이 전하는 소식이다. '잃어버린 10년'에 보상을 원하는 블로거가 줄을 잇고 있단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세력의 '잃어버린 10년' 주장에 대해 "잃어버린 것 있으면 신고하라"며 "찾아드리겠다"고 말한 게 발단이다.
기사는 주요 포털사이트와 커뮤니티 게시판에 현재 올려 진 '노무현 놀이'의 목록 가운데 다음과 같은 보기를 들었다.
"대학 졸업했는데 취직이 안되네? 일자리 찾아줘요"
"정부 믿고 집 팔았는데 되레 올랐네. 내 집 찾아달라"
"서민 어깨 펴주겠다더니 더 쪼그라들었다. 내 어깨 찾아내라"
"경제 띄우라고 던져 준 내 표 찾아내라. 안 찾아주면 책임을 묻겠다"기실 '잃어버린 10년'을 둘러싼 논쟁은 비단 <중앙일보>만 불 지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는 23일자 신문에 '보수세력의 싱크탱크'인 한반도선진화재단 박세일 이사장의 글을 실었다. 박세일은 기고문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당신들은 지난 10년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을 "국민 모두가 반드시 물어야"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그의 답은 이미 나와있다. "많은 국민은 지난 10년을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표류하며 역주행한 10년으로 보고 있다"면서 그 이유로 가장 먼저 '좌파적 역사관과 헌법경시'를 꼽았다.
'보수세력'의 가장 세련된 정책을 생산한다는 연구재단의 이사장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두고 '좌파' 운운하는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가관을 넘어 차라리 서글프다. 그는 이어 '민생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됐다'고 주장한다.
본질을 벗어난 잃어버린 10년을 둘러싼 논쟁 비슷한 논리는 앞서 <동아일보> 사설에서도 볼 수 있다. "'잃어버린 10년, 신고하면 찾아 주겠다'는 대통령" 제하의 사설은 중산층 비율이 줄어들었고 빈곤층 비율이 늘어났다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DJ 정권 5년간 외환위기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국민이 노 정권 들어서는 아예 희망을 잃다시피 한 것이다."
바로 그 지점이다. 국민은 <동아일보>와 달리 당연히 물을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는 누가 불러왔는가. 이 신문은 "노 대통령은 말장난으로 실책을 덮으려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그 말은 고스란히 <동아일보>가 돌려받을 몫이기도 하다.
김대중-노무현 10년을 옳게 비판하려면 노태우-김영삼 정권의 10년까지 냉철하게 톺아볼 수밖에 없다. 노태우-김영삼 10년 정권의 '결론'이 바로 국가부도의 외환위기였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는 한나라당과 더불어 그 사실을 교묘히 숨기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치집단이니 그렇다고 치자. 언론인이나 교수가 그런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일이다.
10년 집권을 통해 외환위기로 민생경제를 파탄 낸 당사자가, 더욱이 '야당' 시절 10년 동안 언제나 민생경제에 어긋난 언행만 일삼아오던 그들이, 지금 민생을 들먹이는 것은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물론, 부익부빈익빈의 심화는 명백한 사실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기대와 달리 신자유주의에 굴복했기에 빚어진 현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해법을 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자나 경제를 이미 파탄시킨 세력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다. 잃어버린 10년을 둘러싼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논쟁이 대선국면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붕어빵 노점상'의 자살이 상징하듯이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 도시빈민의 삶은 더없이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잃어버린 20년이다진정 민주세력이라면 잃어버린 10년을 방어하는데 급급할 게 아니라 잃어버린 20년을 올곧게 제기해야 옳다.
돌이켜보라. 1987년 6월, 항쟁에 나선 민중이 최루탄과 곤봉에 맞서 싸울 때 꿈꾸던 나라가 저 노동자와 농민이 대낮에 맞아죽는 세상이었던가. 도시빈민 일가족이 생계위협에 내몰려 자살하는 나라, 남의 나라 침략전쟁에 이 나라 젊은이를 보내는 나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나라였던가.
1987년 6월대항쟁으로 쟁취한 직선제 헌법은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과연 지금이 그러한가. 그렇다면 찾아야 할 때다. 지난 20년,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가운데 고갱이가 무엇인가를.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 바로 그것이 아닐까. 벅벅이 주권을 어떻게 찾을까를 진지하게 고심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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