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쌓고 삶을 얹으니 책이 남습니다!

존 백스터의 책 수집 이야기 ③ <책 사냥꾼: 어느 책 중독자의 수다>

등록 2007.10.23 19:05수정 2007.10.2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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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냥꾼> 표지
<책사냥꾼>표지동녘
▲ <책사냥꾼> 표지 ⓒ 동녘

책을 ‘사냥’하며 더불어 사람을 ‘낚는’ 사람, 존 백스터(John Baxter, 1939∼).


잊지 않으셨다면 아니 한 번 더 그 이름 세 자를(“오우~ 그만해~”하지 마시고 일단 들어보세요.) 말해도 기꺼이 읽어주시겠다면, 기쁜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오로지 책 중심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다 보니 생긴 일인지 몰라도 호주, 미국, 프랑스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사랑을 나눈 존 백스터는 (일부러 얘기 안 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아니 뭐 수다 듣기도 바쁜데 남 연애사까지 챙길 틈이…. 그게요, 제가 부끄러워하고 그럴 일은 아니지만…. 거 참….) 책 얘기라면 인생 반 아니 평생을 허비한다 해도 만족할 사람입니다. 그건 인정할만해요.


그래서 말인데요, 굳이 존이 걸어온 길을 시시콜콜 다 알 필요는 없지만 그의 책 사랑이 대단하다는 것만큼은 꼭 말해야겠어요.

 

“책은 영원하다. 그러나 책을 만드는 사람은 바뀌고, 친구가 되어주었던 런던의 책 사냥꾼들과 서적상들 역시 바뀌었다.” (<책 사냥꾼>, 270)

 

인생을 자유 그 자체로 여기는지 그의 수다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솔직한 면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 솔직함이 좀 거북하기도 했죠. ‘빨간 책’을 유통하는 방법을 뜻하는 “평범한 포장지로 포장되었다”는 말을 굳이 구체적인 사례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마저 그저 수다로 받아넘겨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친절함은 책 이야기에도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세 번씩이나 그의 수다를 전하는 겁니다(저라고 그 얘기를 다 재밌게 들었…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작가 하면 흔히 떠올리는, 파리의 어느 카페에 앉아 진한 커피를 연거푸 마셔대고 가끔은 코냑을 들이키는 이미지는 사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하이킹 부츠에 몰스킨 바지를 입고 한가하게 언덕을 오르다가, 떡갈나무에 기대어 쉬면서 깊이 사색에 잠겨 전원시 몇 편을 적어 내려가는 장면 역시 할리우드 작품이다.” (같은 책, 351)

 

현실적인 사람이죠? 존은 책에서 맛볼 수 있는 낭만을 아는 사람이었지만 그 낭만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들 틈에서 인생을 관찰하고 참여하다 보니 너무 깊숙이 참여했다는 식으로 발언수위를 조절하며 수다를 떠는 존, 그가 진지할 때는 책을 놓고 고민할 때입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정말 진지하죠.

 

여하튼, 존은 책을 떠나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인 것만은 사실입니다.(‘나한테는 뭐가 있지? 나를 설명하기에 딱 알맞은 가장 특징적인 그 무엇, 있긴 한가?’) 그렇게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존도 가끔 일종의 권태기를 느끼곤 했는데요, 그럴 때 존은 어떻게 했을까요?

 

“책 수집가로서 별다르게 구미가 당기는 주제도 없고 서재에 꽂힌 책들도 자꾸만 눈에 거슬리던 차에, 책 사냥꾼으로 딱인, 무작정 헤매고 보는 내 재능을 살릴 만한 출구를 찾아냈다. 내 단골 고객 중에 니컬리스 파운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사실상의 처남인 사이먼 타프와 함께 킹스 크로스의 한구석에서 작은 서점을 운영했다. 발굴한 책을 들고 니컬러스의 서점에 들르는 것이 내 일주일의 고정 일과가 되었다. 책을 팔기도 했지만 판 만큼 사기도 했으며, 책을 팔아 생긴 돈은 대부분 책 사는 데 쓰고, 남은 돈으로는 옆 카페에서 진한 에스프레소와 딱딱한 비스코티를 먹거나 더블 베이의 녹음이 우거진 야외 음식점에서 오랫동안 점심을 먹었다.” (같은 책, 280)

 

따분하거나 일이 막힐 때는 기껏 쉰다는 게 정처없이 길을 걷다가 모처럼 ‘생각하지 않고’ 책을 찾는 게 존의 휴식법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인생의 반쪽’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서 순간 매력을 느끼지 못할 때 어떻게 하시나요? 잠시나마 완전히 얼굴을 돌려버리시나요? 존처럼 깊은 고민을 접어두고 있는 그대로 ‘관찰’할 때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완전히 떠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두되 결코 손을 놓지 않는, 끈끈하고 오래되어 지워지지 않는 우정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얼른 종이를 꺼내서 적고 싶지 않으신가요?!).

 

솔직히 존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다 알 수 없고, 혹 그 삶을 다 알아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존과 저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솔직함이 묻어나는 그의 수다를 그저 수다로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진지한 속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수필을 쓰듯, 어찌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그림 그리듯 색을 입히는 능력을 지닌 존을 어찌 수다쟁이라고만 할 수 있겠습니까. 말하자면, 책을 ’사냥‘하는 존은 인간미 있는 (적어도 인간미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적어도 책에서만큼은. 천년만년 살겠다는 욕심이란 아예 없고 그저 책을 읽으며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서 얻은 조각들을 맞추어 자기 삶을 넓혀간 사람, 존.(너무 띄웠나?) 그래서인지, 희귀서적을 바라보는 존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더군요.

 

“희귀 서적은 세간의 평가로 탄생되는 것이지, 미리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 아니다. 희귀 요소가 하나씩 쌓일 때 비로소 희귀 서적이 되는 것이다. 오래된 청동 표면에 아름답고 푸른 녹청색 광택이 만들어지듯이, 책도 몇 십 년씩 부지런히 아끼고 돌보다 보면 그 나름의 희귀성이 차곡차곡 쌓인다.” (같은 책, 304-5)

 

호주,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일정기간 거주한 곳만 해도 네 나라를 거친 존은 일단 프랑스 연인과 함께 프랑스에 정착하는 시점에서 책을 마무리합니다. 존이 이 책 원고 말미를 장식할 멋진 말을 떠올렸겠죠. 신선하게 출발했으니, 깔끔하게 마무리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지금도 존은 책을 찾아 파리 시내를 수없이 배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끔은 파리를 벗어나 프랑스 전역을 들쑤시고 다닐는지도 모르죠. 왜냐하면 존은 이 책 원고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도 “때로는 여럿이, 때로는 혼자서 책을 향한 우리의 모험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같은 책, 360)고 말할 정도니까요.(누가 존 백스터 아니랄까봐, 끝까지 책 얘기라니.)

 

삶을 사랑하시고,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존 만큼은 아니어도 책을 손에 꼭 한 번 쥐어 보십시오. 책을 읽지 않을 때는 종이냄새라도 손에 배어있어 책을 잊지 않도록 말이죠. 그렇게 종이냄새만으로 책을 그리워할 때에 존이 자기 경험을 빗대어 “우리는 언제나 배울 것 천지인 복잡한 책 세상에 대해 차츰 많은 것을 알아갔다. 요제프 폰 슈테른 베르크 감독의 말처럼, 그야말로 이 분야는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었다”(같은 책, 360)고 귓가에 속삭일 것입니다.


(존은 프랑스에 정착한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타고난 책 사냥꾼 존이 정말 프랑스를 계속 거주지로 삼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60세가 넘은 존(1939년생)이 이제는 프랑스에 사실상 뿌리를 내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원고를 마무리하기 직전에 존은 그가 인생을 정리하는 날 한 번 더 활용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진지한 수다 한마디를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물론 그것도 어떤 책에 있는 문구를 사용했죠, 책 수집가답게!(독자 여러분은 어디에 무엇으로 마지막 흔적을 남기시겠습니까?)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이제 막 일을 마쳤다. 정말이지 힘겨운 여행이었다. 그는 무척 지쳐 있었다. 이제 모두 완성되었다. 그는 이곳에 천막을 쳤고 자리를 잡았다. 그 무엇도 그를 건드릴 수 없었다. 야영을 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그는 바로 이곳, 이 좋은 장소에 있었다. 그가 지은 그의 집에 그가 있었다.” (같은 책, 361에서 재인용;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의 소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강(Big Two-Hearted River)>에서 닉 애덤스가 한 말이라고 함.)
 
이제는 제가 직접 책을 '사냥'하러 주위를 둘러볼 때가 되었네요.(혹시… 같이… 가실래요?)

덧붙이는 글 | 공지사항 
1. <책 사냥꾼>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와 2부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1부는 고향 호주에서 유년기과 청년기(20대까지)를 보내며 책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된 이야기를, 2부는 유럽(영국, 프랑스 등)에 살며 본격적으로 시작한 수집가 생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2. 책 끝에는 세 가지 부록이 있습니다.
-부록1: 존이 여러 지인들(작가, 수집가, 문학애호가)에게 비공식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이 조사에서 존은 집에 불이 나서 단 한 권만 책을 가져야하는 순간에 어떤 책을 살려내겠느냐고 (몇 가지 조건을 달아) 질문하였습니다.
-부록2: 영국 최고 문학작품을 뽑아 시상하는 부커상에 선정된 책 목록을 포함하여 유명인들이 엄선한 (수집할 가치가 있는)여러 도서목록을 소개합니다.
-부록3: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과 작품(책, 작품(공연작), 영화)을 소개합니다.

도서정보 
<책 사냥꾼: 어느 책 중독자의 수다> John Baxter. 서민아 옮김. 서울: 동녘, 2006. 
(원서명) A Pound of paper: Confessions of a book addict

2007.10.23 19:05ⓒ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공지사항 
1. <책 사냥꾼>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와 2부는 시간적, 공간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1부는 고향 호주에서 유년기과 청년기(20대까지)를 보내며 책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된 이야기를, 2부는 유럽(영국, 프랑스 등)에 살며 본격적으로 시작한 수집가 생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2. 책 끝에는 세 가지 부록이 있습니다.
-부록1: 존이 여러 지인들(작가, 수집가, 문학애호가)에게 비공식적으로 조사한 것으로, 이 조사에서 존은 집에 불이 나서 단 한 권만 책을 가져야하는 순간에 어떤 책을 살려내겠느냐고 (몇 가지 조건을 달아) 질문하였습니다.
-부록2: 영국 최고 문학작품을 뽑아 시상하는 부커상에 선정된 책 목록을 포함하여 유명인들이 엄선한 (수집할 가치가 있는)여러 도서목록을 소개합니다.
-부록3: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과 작품(책, 작품(공연작), 영화)을 소개합니다.

도서정보 
<책 사냥꾼: 어느 책 중독자의 수다> John Baxter. 서민아 옮김. 서울: 동녘, 2006. 
(원서명) A Pound of paper: Confessions of a book addict

책 사냥꾼 - 어느 책 중독자의 수다

존 백스터 지음, 서민아 옮김,
동녘, 2006


#책사냥꾼 #존 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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