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아침,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게 분명한데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마애불이 있는 계곡은 한적하기만 하다. 마애불에 참배를 하고 털썩 엉덩이를 붙이고 마당바위에 앉아 있으니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부지런한 사람들이 올라온다. 올라온 사람들은 마애불 앞으로 가서 큰절을 올린다. 법당이 아닌 밖이라 그런지 그냥 신발을 신은 채 합장 삼배를 하거나 절을 올린다.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 법당이 아닌 노천에 모셔진 부처님이기에 사람들이 신발을 신거나 벗거나에 신경 쓰지 않으며 고요함을 즐긴다. 물소리는 졸졸거리고, 바람소리는 산들거린다. 산봉우리에 걸친 구름은 은회색이고, 산자락을 덮고 있는 청솔나무는 푸른빛이다. 청정 적적한 계곡에 들어와 있으니 앉아 있다는 자체가 이물질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도반처럼 보이는 세 분 스님이 올라온다.
만 마디의 법문보다 더 감동적인 실천
고무신을 벗고 마애불 앞으로 다가선 스님은 몸을 돌리더니 웃어른을 찾아뵙는 공손한 선비처럼 옷매무시를 가다듬는다. 두루마기를 여미고 있는 고름을 가지런하게 매만지고 나서야 부처님 앞으로 가 큰절을 올린다. 정말 지극한 모습이다. 평소 어떤 마음으로 부처님을 모셔왔고, 어떤 자세로 부처님을 대해 왔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평상심이 담긴 스님의 모습이다.
꾸벅꾸벅 졸다 물바가지라도 확 뒤집어 쓴 듯 번쩍 정신이 드는 기분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부처님을 예경하는 스님의 지극함이 느껴지니 저절로 ‘아! 부처님은 저렇게 지극한 평상심으로 모셔야 하는 거구나’하는 감동이 온다.
신발을 벗고 지극하게 절을 올리는 스님이 보여서 그런지 뒤이어 올라온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발을 벗고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나서야 절을 올린다. 이게 바로 만 마디의 법문보다 더 감동적인 실천적 법문일 게다.
부처님을 모실 때 이렇듯 극진한 마음으로 모시라고 제아무리 법문을 하였다한들 이토록 극진한 모습을 스님께서 솔선으로 보이지 않았다면 뒤따라 올라온 사람들도 의례적인 합장이나 절만을 올렸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스님의 평상심, 부처님을 극진하게 모시는 스님의 일상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자연스런 모습을 보게 되니 사람들 스스로가 저절로 극진해지게 만든 것이다.
백문불여일견, 백견불여일행(百聞不如一見 百見不如一行)이라는 말이 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고, 백 번 보는 것이 한 번 해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만 마디의 말보다 단 한 번의 경험이나 실천이 낫다는 말이다. 맞다. 딱 맞는 말이다. 그러기에 정치, 사회, 종교 어느 분야이건 간에 지도자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며 지도력으로 손 꼽을만한 게 솔선하는 실천일 수도 있다.
느낌이나 감동 없는 호소라도 백번을 말하고 천 번을 호소하면 그때그때 귓전을 울릴 수는 있겠지만 뒤돌아서는 순간 퇴색하거나 까마득해지니 남는 게 없다. 그러나 솔선하는 행동이라면 오랫동안 가슴을 움직이는 감동으로 남는다. 어떤 말보다 웅변적이고 어떤 내용보다 감동적인 법문이야 말로 의도하지 않고 행하는 평소의 행동이다.
말 한마디 없이 ‘부처님은 이렇게 모시고 대하는 것’임을 멋지게 행동법문으로 보여준 스님일행은 마애불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난 후 마애불 앞쪽, 바위 한 부분이 움푹 파여 있고 주먹만한 돌멩이가 놓여 있는 곳에서 쪼그려 앉았다. 개울가에 모여 앉은 개구쟁이들처럼 천진해 보이는 모습이다.
봉암사 계곡은 커다란 '바위목탁'
그렇게 앉은 세 분 스님 중 한 분이 돌멩이를 집어 들고 톡톡 바닥바위를 치니 목탁을 치는 듯 맑은 소리가 울린다. 두 분의 스님은 이미 이 바위목탁을 알고 있는 듯하지만 한 스님, 조금 전 신발을 벗고 지극한 모습으로 마애불부처님께 절을 올리던 그 스님은 바위 목탁을 처음 보는 듯 신기해하는 표정이다.
먼저 바위목탁을 치던 스님으로부터 돌멩이를 건네받은 스님이 바위목탁을 친다. 신기하다는 표정이 뚝뚝 흘러내릴 만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똑똑거리며 돌질을 한다.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에 미소가 실린다.
바위 밑이 울림통처럼 텅 비어 있어 이런 목탁소리가 날거라는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며 ‘또 독 똑 똑’ 바위목탁을 치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은 흐르는 개울물만큼이나 맑고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만큼이나 천진난만하다.
독경소리는 목탁소리와 함께 들릴 때 제격이다. 목탁소리가 빠진 염불소리는 리듬감이 없어 왠지 밋밋하다. 하지만 목탁이라는 게 필기도구나 장신구처럼 항시 몸에 지니고 다닐 만큼 작거나 필수품도 아니니 이렇듯 뜻하지 않은 곳에서 반야심경이라도 한 번 독하고 갈려면 은근히 아쉬운 게 목탁인데 그런 마음을 헤아린 듯 바위를 두들기기만 하면 목탁소리가 나니 마애불이 있는 봉암사 계곡은 천혜의 불구(佛具)며 준비된 법당이다.
목탁채 대신 돌멩이를 들었기에 멋지게 바위목탁을 치며 구성진 목소리로 독경하는 스님의 모습을 기대했건만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그런지 조용히 돌멩이를 내려놓고는 자리서 일어난다.
속인들이 찢는 입방아는 능파교 아래를 흐르는 개울물 소리
어느 곳에서 수행중인 어떤 스님들인지가 궁금해 사진을 보내드리겠다는 핑계로 연락처를 물으니 십리 벚꽃 길로 유명한 하동 쌍계사 주지스님, 땅 끝 해남에 있는 대흥사 선원장스님 그리고 옥천사에서 수행중인 스님이라고 하신다.
필자는 그날 은자처럼 감춰져 있는 봉암사의 마애부처님만 참배한 게 아니라 만 마디 법문보다 더 가슴에 남을 행동법문 ‘부처님은 이렇게 극진하게 모시고 진지하게 대하는 것임을 평상심으로 보여주는 감동법문’을 경험하였다.
법당에 마련된 법상에서 올라서는 불법(佛法)과 불륜(佛倫)을 설하지만 정작 속세 인들의 입방아에서는 당신의 일상이 불법(不法)과 불륜(不倫)으로 점철되고 있는 스님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작금에 일면일지언정 여법하게 부처님을 대하고 있는 스님을 뵙고 나니 바람처럼 지나간 시간일지언정 흙탕물 속에 오롯하게 피어오른 연꽃 한 송이를 본 기쁨이다.
진흙일지언정 연꽃은 피어오르고, 말법의 시대라고 걱정하는 분들도 많지만 이렇듯 평상의 솔선으로 감동법문을 하는 스님들도 적지 않을 테니 속인들이 찢는 입방아 속 불법, 불륜은 능파교 아래를 흐르는 졸졸거리는 개울물 소리다.
2007.10.24 11:05 | ⓒ 2007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