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들고나는 집이라면 초가라도 즐겁다!

<한옥>이 말하는 한국적 삶, 한국적 집①

등록 2007.10.26 19:46수정 2007.10.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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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표지
<한옥>표지살림

한옥을 생각할 때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둥근 고리가 달린 대문, 넓은 마당, 대청마루 등등 많은 것이 떠오르실 겁니다. 저는 기왓장이 먼저 떠오르는군요.

그러면, 민가라는 말을 생각할 때는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싸리문, 짚신, 절구 등등 땀 흘리며 소박하게 사는 삶이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저는 짚신 또는 짚이 떠오르네요.


사실 책에 다 나오는 내용인데요, 오늘은 집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를 도와주실 분은 아니 저에게 한 수 가르쳐주신 분은 <한옥>(살림 펴냄)을 지으신(!) 박명덕님입니다.(저는 옆에서 잘 들었지요.)

고향, 집, 아랫목. 이 세 가지 정도만 말씀드려도 한국인이 생각하는 집이 어떤 것인지 금세 머리에, 아니 마음에 떠오를 것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그토록 오랜 기간 지켜온 한국적 삶을 '한옥'을 통해 풀어내고 있습니다. 집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저자의 질문에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할 때, 저자는 고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집에 다다르기 직전, 저자는 고향마을에 아늑히 자리 잡은 반가운 집들을 보며 참 아름다운 시 한 수 남기며, 첫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노루꼬리처럼 짧은 겨울햇살이 산속으로 숨어버리고 얼마안가 수묵처럼 어둠이 번져 신작로에서 보이는 조그만 집에는 가느다란 등잔불이 켜진다. 그 집에는 오늘 하루 힘겨운 농사일을 마친 농부들이 군불 따끈하게 지핀 아랫목에서 편히 쉬고 있으리라."(<한옥>, 4쪽)

아마 '고향'이라는 제목 정도를 달아서 시로 내놓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고향을 바라보는 지은이 맘이 참 아늑하다는 사실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고향 마을에서 발견하는 집이 저자가 본 것과 같은 느낌이라면 누구라도 멋진 시 한 수 읊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집을 처음 지은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집이란 무엇보다 은신처로서 그 일차적 기능은 "자연이나 맹수 등의 외부공격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한옥>, 7쪽)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떠올리는 집이란 모름지기 아늑한 그 무엇입니다. 일찍 잠드는 산골 햇님을 아쉬워하며 무거운 엉덩이 들쳐 업고 터벅터벅 집에 이를 때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벌써 배가 두둑해진다면, 이는 우리가 여전히 집을 아끼고 있다는 뜻임이 분명합니다.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똑같은 사각상자만 바라보다가 <한옥>을 통해 우리가 그토록 고이 간직하고 있는 집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보물들을 꺼내봅니다. 그리고 그 추억과 보물을 우리 삶에서도 잘 키워내기를 기도합니다. 자, <한옥>이 말하는 '집'을 좀 더 둘러볼까요?(덧붙이건대, 이 책은 무척 얇은데도 읽고 나면 되레 맘이 꽉 찹니다, 아니 넓어집니다.)

"우리 선조들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주거조건으로서의 한옥은 인간이 살기 위한 1차적인 주거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자연속의 선경에 어울려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이는 농본문화적인 특성을 가진 선조들이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식을 가지고 지었던 한옥은 조상들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같은 책, 21쪽)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는 집이란 모름지기 사는 곳과 어울렸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꼭 필요한 모양과 크기로 지은 집이 바로 한국 집이 지닌 큰 특징이었습니다. 자연을 닮아 말 그대로 자연스레 커가는 집, 그것이 바로 한국 집이 지닌 매력입니다.

그래서 한국적 정서에 깊이 물든 사람이라면 굳이 한국인이 아니어도 한옥이라면 금방 맘에 떠올리는 분명한 영상 한 편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개울물이 흐르며 건너 안산의 기운이 마을 앞 고목사이로 은은히 비치는 곳에 집을 지었다. 그러한 곳이라면 공기 맑고 계절 따라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나뭇잎소리들이 인간의 정서를 돋을 뿐 아니라 자연경관을 음미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같은 책, 21쪽)

그러고 보면, 우리는 분명히 예로부터 집을 지을 때 자연을 '품어야' 진짜 집이라고 느꼈습니다. 각박한 도시에 사는 지금도 사람은 집이란 모름지기 아늑해야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아늑한 게 무엇입니까? 자연과 따로 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자연을 귀찮게 하지도 않고 자연과 어울리는 집, 그런 집을 우리는 아늑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편리한 집을 다들 원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집은 아늑한 느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의외죠?

기와집과 함께 또 다른 한옥 대표주자, 초가

또 다른 의외성은 집 형태에 대한 인식에서도 나타납니다. 사실 책 제목은 <한옥>입니다만, 기와지붕 잘 얹은 전통 한옥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둔 저녁하늘을 가르는 푸근한 부엌 연기를 퍼뜨리는 초가를 같이 떠올립니다. 우리가 집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아늑한 모습은 흔히 제멋대로 생긴 부뚜막, 방 전체를 두루 감싸고 지나가는 구들이죠. 그리고 그런 부뚜막, 구들은 신기할 정도로 초가와 어울립니다. 또 다른 한국 집, 바로 민가의 대표주자가 초가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막상 살펴보면 그다지 볼 것은 많지 않은 그러나 평범한 일상을 가장 많이 담은 초가를 잠깐 살펴볼까요?

"민가의 가장 기본적인 평면은 'ㅡ'자 형식으로 '부엌+방+방'의 3칸이 기본적인 구조이다. 즉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초가삼칸'은 최소한의 조건만 갖춘 집을 일컫는 것이다."(같은 책, 17쪽)

아시다시피, 민가는 사실상 초가와 같은 말입니다. 다들 사는 게 비슷비슷한 서민들이 그 옛날 구하기 쉬운 재료인 흙을 이겨 집 만들고 짚으로 지붕 얹고 싸리문으로 들고나는 길 하나 내면 그게 집이죠. 그러니 방, 부엌 하나씩 있으면 되는 것이고, 거기에다 여유 공간에 벽 치고 방 모양 하나 내어 비상시에 쓸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금상첨화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막상 초가를 눈앞에서 보면 그보다 초라할 게 없을 터,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렇게 초가를 예쁜 얼굴로 기억할까요? 한국인에게 초가란 생김새만큼이나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결코 초라하지만은 않은, 세월이 낳은 정이 있어 포근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마도 초가는 저자가 찾아간 고향 마을처럼 할머니 젖무덤같은 수줍고도 아늑한 품이 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우리를 기다리며.

꼭 필요한 것만 갖춘 단촐하기 그지없는 초가와 달리 튼튼한 기와지붕 얹은 한옥에 사는 양반 주거지는 위엄 있고 미려(美麗)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또 다른 한국적 집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 안에서는 양반인 집주인 가족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하루 종일 바삐 움직이죠.

"상류주거인 양반집의 기본구성은 남자를 위한 사랑채를 밖에 두고 그 뒤쪽으로는 여자들의 공간인 안채를, 사랑채 앞으로는 대문채와 연이어 그 집의 가사노동을 전담한 하인들을 위한 행랑채를 두었다."(같은 책, 15쪽)

대략, 위와 같은 모습을 지닌 집이 바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한옥 풍경이죠. 그렇다면, 한국적 집이란 한마디로 어떤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조금은 수줍은 초가를 포함하여 한국적 집이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우리 한옥의 선은 유연성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초가의 선은 뒷산의 모양을 닮았고 기와의 선은 양끝을 잡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늘어진 새끼줄의 선을 표현한다. 그리고 처마는 후림과 조로를 두고 용마루의 가운데를 처지게 하여 자연스러운 형태를 나타낸다. 이렇듯 한옥의 선은 유연성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같은 책, 23쪽)

그렇습니다, 한국적 집이란 모름지기 여유, 쉼, 여백과 같이 숨 한 번 고르고 가도록 돕는 시간적, 공간적 배려를 지니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 대해서 늘 아늑한 맛을 느끼기를 바라는 것이죠.

단순히 편리한 집이 아니라 나뿐 아니라 자연도 더불어 쉬도록 배려하는 맘이 우리 한국 집이 지닌 고운 마음씨였습니다. 이렇게 여유와 여백이 지닌 고요한 멋은 마당에서도 나타나는데, 저자는 마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금이야 마당에 나무를 심고 정원을 꾸미지만 원래 마당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전통적인 생각은 '비어있는 공간'으로 마당 가운데 나무를 심는 것을 피했다."(같은 책, 28쪽)

듣고 보니,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비어있는 공간'이라, 예전에도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지 않습니까? 한옥하면 떠오르는 너른 마당은 참 여러 용도로 쓰이는 다목적 공간입니다. 무언가를 채워놓을 수도 있고 놀이를 할 수도 있으며 비워놓을 수도 있는, 그러나 비어있을 때는 항시 자연(해, 바람 등등)이 그 자리를 채워 자연스런 멋을 살려주는 공간, 그런 공간이 바로 마당이었다는 것이죠. 듣고 보니, 이 역시 많이 듣던 말이지 싶지 않습니까?

콧대 높은 기와지붕 자랑하는 전통 한옥을 말할 때도 우리는 여전히 볼품없는 초가를 함께 떠올립니다. 너른 마당도 아이들 두서너 명 모여 놀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한, 아니 주위에 널린 공간 자체를 마당 삼아 자리 잡은 초가에서 우리는 오히려 한옥이 지닌 깊은 맛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초가처럼 자연을 잘 품는 집이 있던가요? 그래서인지 전통 한옥도, 제 아무리 넓고 크게 지어도, 결코 자연을 소외시키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초라하고 때론 불편하기도 할 텐데 양반들도 시시때때로 초가를 찾아 방 한 칸에 만족한 채 삶을 차곡차곡 쌓지 않았던가요. 그러고 보면, 초가에서 자란 고운 마음씨가 쌓이고 쌓여 위엄과 역사가 서린 전통 한옥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그마하지만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 더욱 아름다운 초가 한 채를 <한옥>에 담아 여러분께 드립니다. 저는, 초가가 지닌 아늑함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과 역사를 차곡차곡 다듬고 빛을 내고 있는 전통가옥 곧 기와지붕 곱게 얹은 멋진 한옥 내부를 살펴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초가삼간이란 말에는 작고 초라한, 그리고 볼품없는 집이긴 하지만 그것에 만족하고 즐거움을 찾는 안빈낙도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배어있다. 그러니 그 속에는 살아가는 사람의 청렴한 마음과 생활이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초가삼간에는 과분한 욕심의 흔적이 전혀 없고 반드시 있어야 할 것만 적재적소에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다."(같은 책, 52쪽)

덧붙이는 글 | 1. <한옥> 박명덕. 서울 : 살림, 2005.
2. 두 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한국 전통 주거양식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하고, 그 다음으로 마루, 온돌과 같은 집 내부 공간을 살펴봅니다.
3. 이 책은 아주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읽을수록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왜냐하면 초가, 한옥이란 말 자체가 세월과 전통 그리고 삶이 배인 산 역사이기 때문이죠.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전부 소화하기 힘든 그 넓은 ‘한옥’ 이야기를 이 얇은 책 한권에서 시작해보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책 한 권을 읽는 것을 넘어 한국적 가치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는 좋은 계기로 삼기를 바랍니다. 집은 땅에 짓기 전에 마음에 짓습니다.
4. 책 한 권을 빨리 소화해내는 것도 좋지만 천천히 음미하며 마음에 담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리고 얇지만 깊은 내용을 담은 좋은 책이 많습니다. 좋은 책 있으면 알려주세요.


덧붙이는 글 1. <한옥> 박명덕. 서울 : 살림, 2005.
2. 두 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한국 전통 주거양식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하고, 그 다음으로 마루, 온돌과 같은 집 내부 공간을 살펴봅니다.
3. 이 책은 아주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읽을수록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왜냐하면 초가, 한옥이란 말 자체가 세월과 전통 그리고 삶이 배인 산 역사이기 때문이죠.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전부 소화하기 힘든 그 넓은 ‘한옥’ 이야기를 이 얇은 책 한권에서 시작해보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책 한 권을 읽는 것을 넘어 한국적 가치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는 좋은 계기로 삼기를 바랍니다. 집은 땅에 짓기 전에 마음에 짓습니다.
4. 책 한 권을 빨리 소화해내는 것도 좋지만 천천히 음미하며 마음에 담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리고 얇지만 깊은 내용을 담은 좋은 책이 많습니다. 좋은 책 있으면 알려주세요.

한옥

박명덕 지음,
살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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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박명덕 #살림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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