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나무 친척들상수리, 떡갈, 졸참, 신갈, 굴참, 밤, 갈참나무의 잎
이성한
상수리 나무 친구들이 숲 속에 난 오솔길 옆에 늘씬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여럿이 살고 있다. 작은 언덕이지만 아이들과 신나게 말하고 수다떨며 오르느라 약간 숨이 차 오르지만, 진하개 빨간(혹은 자줏빛) 꽃과 진청색의 열매를 머금은 ‘누리장나무’의 무리도 보고, 성라산의 가을을 서둘러 붉게 채색하고 있는 ‘붉나무’의 마치 후기 인상파적인 느낌의 강렬한 천연의 붉은빛도 구경했다. 렘브란트와 고흐가 이런 빛을 보고 미친 듯이 붓을 휘둘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은 장난감 기차처럼 조르르 기다란 열을 이루어 오솔길을 걸어간다. 가면서 복분자 딸기와 산딸기나무의 모습도 비교해 보고, 이파리가 어쩌면 얇은 고뭇잎같은 느낌을 주는 ‘팥배나무’ 잎도 만져보며, 그 생김새와 촉감과 냄새를 체험해 가고 있다. 아이들의 눈빛과 표정에 초록의 숨결, 숲의 기운이 싱싱한 에너지로 충전되고 있는 듯하다.
성라산의 정상인 국사봉으로 향하는 제법 경사진 언덕을 따라 우리는 쉼없이 그러나 급하지 않게 올랐다. 정상에 가까이 왔을 때 나는 숲 속 오솔길가 옆에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상처받은 나무 형제들의 고통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부채꼴 모양으로 빙 둘러 서게 했다.
사람들의 눈높이쯤의 높이에 하나같이 커다란 상처와 패임의 흔적을 갖고 있는 나무들. 그들이 살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을 치며 신음했는지 온통 상처투성이와 피부암(축령)의 흔적이 끔찍스럽다. 일렬로 늘어선 채 죽어가고 있는 대여섯 그루의 아까시나무 오솔길은 사람들이 나무를 찌르고, 후비고, 부벼 판 철없는 죽임의 현장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나무와 풀, 새와 꽃과 흙이 어떻게 사람과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어떻게 서로를 아끼고 살피며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 대화했다. 아이들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지고 한층 차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