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는 세계적인 구리의 생산국이지만, 영국의 지배 아래에서 구리의 주인은 영국인이었고 현지인들은 채굴 노동자로 일했을 뿐이다. 게다가 독립 후 독재정치와 부정부패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조수영
200㎞의 거리를 세 시간 만에 질주했다. '뽈레뽈레('천천히'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아프리카에선 좀처럼 드문 일이다. 루사카의 시외버스 터미널은 국제 터미널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나미비아의 빈트훅으로 가는 버스도, 다음 목적지인 리빙스턴으로 가는 버스도 이 곳에서 출발한다.
수도인 루사카는 잠비아 최대의 도시이지만 역사가 오래되지 않고 볼 거리도 그다지 많지 않다. 눈에 띄는 빌딩도 없고 박물관도, 또 다른 볼 거리도 없다. 그러나 많은 여행자들이 이 곳에 들르는 이유는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국경도시 리빙스톤으로 가기 위해서 중간 기착점이기 때문이다.
루사카도 케냐의 나이로비처럼 고도 1300m에 자리 잡은 고원도시이기 때문에 선선하다. 긴 기차여행의 피로도 풀고, 다음의 일정을 점검하기로 했다. 도시 이름은 마을의 추장이었던 루사카에 유래되었다고 한다.
볼 것 없는 루사카의 내키지 않는 시내구경에 나섰다. 루사카는 메인 거리인 카이로 거리를 중심으로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상점·대형마켓·여행사·은행들이 있다. 그러나 낡은 건물과 쓰레기들로 수도다운 매력조차 주지 못했다.
시내 동쪽으로 자리잡은 신시가지인 만다힐 쇼핑센터는 그동안 보았던 잠비아의 모습과 달랐다. 대형마켓과 다국적 은행과 기념품 가게, 화려한 카페는 마치 미국에 온 것 같았다. 주차장에도 형태가 온전하고 광을 낸 자동차들만 세워져 있다. 보드를 타는 아이들의 표정에도 여유가 보인다.
이렇게 잠비아가 빈곤층과 부유층의 극심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독립 후 아프리카 여러 나라가 겪는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빚과 질병, 그리고 부정부패와 잘못된 정치로 인해 중학교 사회시간에 ‘세계최대 구리 생산국’이라 열심히 외웠던 잠비아는 주민의 80%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 중 한 나라가 되었다.
인류의 조상은 흑인이었다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 중 "새까맣게 흑인이 되어서 오면 어떻게 해?"라는 걱정이 여럿이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왜 흑인일까? 태어날 때는 하얀 피부였는데 뜨거운 햇볕에 그을린 것일까? 모든 문제의 답은 진화론적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오래전 인류의 초기 조상은 오늘날 침팬지처럼 온몸이 털로 덮여 있었다. 그들은 열대우림을 떠나 사바나 초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태양에 그대로 노출된 사바나에서 이들은 먹을 것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고, 이 과정에서 땀을 잘 흘려 과열된 몸을 효율적으로 식힐 수 있는 개체가 생존에 유리했다.
이런 과정에서 땀의 증발을 방해하는 두터운 털이 없어지면서 피부는 벌거벗게 됐다. 그러나 털 없는 피부는 햇빛, 특히 자외선에 취약했다. 결국 자외선을 흡수해 피부조직을 보호하는 수단이 함께 진화해야 했다. '멜라닌 색소'라는 흑갈색 햇볕 차단제가 그것이다. 결국 우리 조상은 털 대신 짙은 피부색으로 햇빛에 견디며 사바나의 주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