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제복을 입고 트럼펫을 불고 있는 '컬러맨(colorman)' 이명선씨
심현정
그가 '컬러맨(colorman)'으로 연주 봉사를 다닌 지도 올해로 10년째. "처음 봉사할 때는 쑥스러워서 소극적이었는데 이제는 봉사활동이 아니라 마실 가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부터 여주대 사회복지학과에 다니고 있다는 그는 "학교 다니니까 예전처럼 (봉사를) 자주 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매일 방과 후 큰 악기 가방을 들고 장애인 가정집으로 향한다.
"하여튼 특이해요. 이렇게 옷 입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요. 그래도 컬러맨 트럼펫은 최고에요. 최고." 이씨의 연주를 듣고 난 척추 장애인 서기원(49)씨의 말이다.
이어 그는 트럼펫을 내려놓고 서씨의 손을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긴다. "이 사람은 밥을 너무 조금 먹어요. 거기(소화기간)가 안 좋아서 그래요. 여기를 마사지 해줘야 해요."
한번도 안마를 배워본 적 없다는 그는 야무지게 서씨의 손 이리저리를 주무른다. 연주 솜씨뿐만 아니라 안마 솜씨도 일품이다.
이처럼 봉사활동에 애착을 갖는 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말뚝박기를 하다 뒤로 넘어져 돌부리에 머리를 다쳤다. 뇌수술을 했지만 의사는 가망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3개월 후, 그는 기적적으로 일어났다. 하지만 마비로 인해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잃었다. 한쪽 몸밖에 쓰지 못하는 1급 장애인이 된 것이다. 친구들의 놀림에 자살까지 결심했었다.
그러던 그에게 한줄기 단비와도 같은 사건이 있었다. 우연히 TV를 통해 하모니카의 연주 소리를 들었던 것. 엄마를 졸라 하모니카를 샀다. 박자 개념도 몰라 여러 번 음악을 듣고 그대로 따라 불었다. 이후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을 통해 트럼펫, 펜플룻 등 무려 일곱 가지의 악기를 터득하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악기를 드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데, 그는 "연주하면 즐거워 힘든 줄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의 연주는 자신뿐만 아니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10년 전 우연히 친구와 여주 군민회관 바자회에 참여했던 그는 공짜 국수 한 그릇을 먹었다. "국수값 대신 하모니카 연주해주고 가라"는 한 아저씨의 말에 하모니카를 연주해줬던 것이 그의 첫 무대가 되었다.
이후 10년간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 가정집을 방문해 한쪽 손만으로 악기 연주를 해줬다는 이씨. 그는 자신의 연주를 원하는 곳에는 어디든지 간다. 차비 한 푼 받지 못하지만 그는 정성을 다해 연주한다.
이씨의 봉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2월에는 '산타클로스'로 변신한다. 이씨는 전동휠체어에 사탕, 과자 등 큰 선물 바구니를 싣고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아이들에게는 '컬러맨'이 아닌 '산타클로스'라 불린다.
"잘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치매 할머니가 제 연주 듣고 감동해서 울더라고요. 이래서 제제가 못 그만둡니다. 큰 복지관 지어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게 꿈이고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사람들에게 음악을 연주해주고 싶어요. 한 30년 더 남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