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한국 교회>
박지훈
많은 사람들을 십자가 밑으로 모으기 위해 교회는 오늘도 '부흥'을 외친다. 이런 교회를 향해 어느 청년은 "(사람을) 끌어 모으기 전에 있는 사람이나 내쫓지 말라"고 냉소를 퍼붓는다. 진정한 기독교 정신을 망각한 채 오늘도 건물 올리기 바쁜 교회를 향한 일갈이다. 실제 이 청년 일침대로 개신교 인구는 줄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개신교 인구는 14만여 명이 줄었다.
왜 사람들은 교회에 등을 돌리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문제가 많으니까. 그렇다면 무슨 문제를 안고 있나. 최근 <추락하는 한국교회>(인물과 사상)를 낸 이상성 교수(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는 ▲근본주의 신학 ▲목회자의 비윤리적 행위 ▲보수화된 교회와 신도 ▲안하무인적 선교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사실 이런 문제점의 근본 원인은 근본주의 신학에 모아진다. 시대상황과 전후 사정을 무시해 가며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근본주의 신학이 한국교회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
예를 들어보자. 말라기 3장 10절은 십일조를 강조하는 목사들의 단골 메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하지만 이 교수는 "사실상 십일조는 성서적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십일조는 헌금 이상의 의미였다. 당시 제사장은 정치와 종교를 아우르는 지도자였다. 때문에 십일조는 성전 운영에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데 필요한 경비를 충당했다고 봐야 한다. 오늘날 의미에서 본다면 십일조는 헌금과 국가에 내는 세금을 합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십분의 일만 성전에 내면 하나님의 백성 뿐 아니라 국민의 의무까지 완수했던 것인데 오늘날 국민들은 세금만도 십분의 일이 훨씬 넘는 돈을 국가에 바친다. 무조건 수입의 10%를 교회에 바쳐야 한다는 십일조 관습은 유래와 용도를 너무나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하나 더 살펴보자. 요한복음 14장 6절은 다른 종교엔 구원이 없다며 배타적 근본주의의 중요한 성서적 근거가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이에 대해 이 교수는 "성서가 다른 종교의 구원 가능성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반론을 편다.
"복음서 중 가장 나중에 쓰인 요한복음은 초대교회 내부의 다양한 신학적 주장들에 대해 교통정리를 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후 기록됐다고 보인다. 애초 초대교회는 유대교 한 분파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했는데 유대교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전혀 없자 유대교에 나와 새로이 교회를 세우기로 작정했으며 이로 인해 복음을 전하는 선교 대상이 이방인으로 확대됐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14장 6절의 구절은 새로운 개척지, 세계 종교로 나아가는 기독교가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자기 확신을 굳건히 하기 위해 교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내린 하나의 메시지였다. 때문에 성서가 다른 종교의 구원 가능성을 절대로 용인치 않는다는 주장에 찬성할 수 없다. 오히려 예수는 유대교가 잘못됐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말했지 다른 종교에 대한 심한 비판은 찾을 수 없다."
저자는 이와 함께 교회 세습 문제, 종교다원주의 등 다양한 삶과 문화를 배척하는 기독교, 여성 및 소수자에 대한 차별, 갈등 조장 및 반통일 행태 등을 꼬집는다.
해결 열쇠 안 보이는 한국교회...예수를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고 있다"한국교회 문제는 전후좌우를 봐도 해결의 열쇠가 안 보인다. 교회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없고 영광의 보좌에 오른 예수만 있다.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로하는 영광의 예수가 아니라 도리어 그들의 피를 뽑는 예수만 존재한다. 이는 말구유에서 태어나 억눌린 자, 고통 받는 자, 소외당한 자, 가난한 자 편에서 그들이 바로 하늘나라 주인공들이라고 말했던 예수를 다시 한 번 더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다."
한국교회를 향한 이 교수의 울분이다. 그러면서 그는 20대는 없이 노년층만 차지한 미국 교회의 몰락을 한국교회가 기억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미국 교회는 베트남전 당시 젊은이들이 공포로 전전긍긍할 때 침묵했다. 전쟁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월남전 지지 성명을 낸 교계도 있다. 이같이 사회정의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미국교회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그것도 단지 20년이란 짧은 시간에. 이런 추락의 길은 미국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한국 교회 내에서도 젊은 청년층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한국 교회의 당면 문제이기도 하다."
하나님 선교는 복음보다 인권을,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찾게 해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