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각에도 한국의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조선사회는 자체적으로 자본주의의 길로 나아갈 수 없었다’는 증거를 찾는 데에 여념이 없다. ‘일본이 식민통치를 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결코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탱하는 중요한 이론적 틀이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5단계 생산양식 이론이다. 인류 역사가 원시공산제사회-고대노예제사회-봉건제사회-자본주의사회-사회주의사회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이를 근거로 ‘봉건제사회인 조선은 마땅히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했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5단계 생산양식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해 한번쯤 의문을 품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사회에서 과연 원시공산제니 노예제니 봉건제니 하는 것들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여부도 되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카를 마르크스는 영국의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5단계 이론을 정립했다. 그가 전 세계의 역사를 모두 연구한 다음에 그런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전체 유럽은 물론 전체 세계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론이 한때 세계적으로 강력했던 것은 그의 이론이 보편적이라서가 아니라 그 이론을 추종하는 세력이 강대한 정치력·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5단계 이론이 세계사적 보편성을 띨 수 없다는 점은 한국·중국의 역사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흔히들 중국의 중세는 당나라와 5대 10국 시대까지라고 한다. 960년 송나라 건국 이전의 시대를 중세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논리대로라면, 송나라 이전에 중국에서는 봉건제가 지배적 경제질서로 존재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점에 관한 뚜렷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분권제적인 봉건제사회에서는 중앙권력이 지방 백성에게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어야 하는데도, 중국의 황제권력은 일반 백성들을 호(戶)로 편제함으로써 직접 지배의 목표를 이루려 했다. 이는 마르크스가 말한 봉건제와는 배치되는 양상이다.
봉건제의 또 다른 요소인 농노의 경우도 그렇다. 영국 중세에 있었던 농노가 과연 중국에도 있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그 누구도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에 농노가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누구도 자신 있는 답변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잣대로 이해할 수 없기는 한국사도 마찬가지다. 고려시대를 중세라고 하지만, 한국사에서 지역분권적인 제후국 정치가 실현된 적이 있었을까? 또 조선사회의 소작인이나 노비를 농노와 같은 존재로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원시공산제나 고대 노예제가 존재했다는 증거가 있을까?
“한국사에서 봉건제가 나타났는가?”라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대해 간혹 이렇게 답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통시대의 한국사회에서는 엄격한 상하관계를 내용으로 하는 봉건제적 윤리가 지배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하는 봉건제는 토지에 얽매인 농노를 생산자로 설정하는 분권적 경제질서를 말하는 것이고, 과거 한국사회를 지배한 봉건제는 윤리적 관계에 국한된 것이다. 앞의 것은 경제적 관념이고 뒤의 것은 윤리적 관념이다.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사물에 대해 동일한 용어를 부여하다 보니, 이런 오류를 파생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영국을 제외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원시공산제·고대노예제·봉건제 등이 일률적으로 나타났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5단계 이론을 세계사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5단계 생산양식 이론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것이라면, ‘봉건제인 조선사회는 일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자본주의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 역시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만다. 조선사회가 마르크스가 말하는 봉건제 사회가 아니었음은 물론, 한국사에서 5단계 이론이 실증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사회가 자생적으로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할 가능성이 있었느냐 여부를 따지는 것은 애초부터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조선사회가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했어야만 근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5단계 생산양식 이론이 증명된 다음에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자본주의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로 갔다 해도 그것이 생산과 분배를 증대시켰다면 그 역시 근대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아직까지는 세계사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단계적 생산양식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그저 영국이라는 작은 섬나라에 국한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므로 전통시대 한국사회의 경제발전 여부를 진단하려면, 한국사에 내재하는 경제적 법칙을 탐구해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에 적용되는 이론을 갖고 한국을 진단하는 것은 오류만 낳을 뿐이다.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다’는 한국 속담이 있다. 한국의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바로 그러하다. 숭늉(한국사의 경제발전법칙)은 한국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이 아닌 영국(마르크스의 5단계 이론)에서 한국 숭늉을 찾고 있으니, 이는 차라리 한 편의 희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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