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전 총재가 지난달 24일 오후 시청 앞 광장에서 보수단체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사수 국민대회' 에 참석한 뒤 행사장을 나서며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남소연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출마도 하기 전에 지지율 2위가 됐다.
범여권은 대단한 충격을 받았는데
'이회창 지지율 2위는 국민의 개혁·진보세력 모욕주기' 라는 글은 이런 심정의 일단을 대변한다.
그러나 보수 진영이 일사불란한 것은 아니다.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를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노망 들었다"는 욕설 수준으로 비난하는 쪽이 있다.
사실 이명박 후보의 정체성은 애매모호한 면이 있다. 그는 진보 진영 입장에서 보면 '꼴 보수'이지만 보수 진영 입장에서 보면 '완소(완전 소중한) 보수'는 아니다.
"이회창이 갖고 있는 파괴력은 이명박이 집권해도 '한나라당 집권한 거 맞아?'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여전히 많다는 것"(강원택 숭실대 교수가 5일 <경향신문> 좌담회에서 한 말)이라는 분석에 일견 수긍이 간다.
진보가 보기엔 '꼴 보수'지만 보수가 보기엔...일단 조중동은 이회창씨의 출마를 융단 폭격하고 있다.
5일 <조선일보> A4면에 실린 기사 2개의 제목은 각각 "이회창 측 '보수 분열 책임론 어쩌나…", "제 정신이냐…역사의 죄인 될 것" 등 이다. <조선일보>는 다른 신문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던 '이회창 출마 반대 민주연대21 단식 농성'이라는 기사도 A5면 맨 밑바닥이지만 3단 크기로 실어줬다.
김대중 고문은 '이회창 출마 감상법'이라는 칼럼에서 점잖게 '창'의 출마를 만류했다. 그러나 글 속에는 "이(회창)씨는 세상의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다" "(막판에 슬쩍 끼어드는) 기회주의적 행태는 한국정치의 치부를 드러내는 졸렬함의 극치" "(이명박 낙마로 자신이 구원투수가 되는 것을 상정하는 것도 아니라면) 이씨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 등 날선 문장이 들어있다.
<동아일보>는 '한나라당, 이회창씨가 아니라 국민 보고 뛰어라'라는 사설을 썼는데 그의 출마를 쿠데타에 비유하고 있다.
"이제 이 전 총재가 설령 출마 의사를 접는다 하더라도 당심과 민심이 합법적으로 선택한 대선 후보를 밀치고, 자신의 대권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한국 정당사에 전례 없는 '쿠데타'를 기도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게 됐다. 그가 지금 보이고 있는 행태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정계은퇴 약속 번복이나 이인제 민주당 후보의 10년 전 신한국당 경선 불복보다 그야말로 '죄질'이 나쁘다. 이 전 총재는 동지들이 여름 내내 비지땀을 흘려 가며 농사를 지을 때는 뒷전에서 에어컨 바람만 쐬다가 추수하려는 순간 낫 한 자루 달랑 들고 나타나 '내 곡식이야' 하는 식의 염치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DJ나 이인제씨는 적어도 그러지는 않았다."이회창은 보수 진영에게 증오의 대상인 DJ나 이인제 보다 못한 인간으로 '격하'됐다.
김동길 "이회창 노망 들었다"김동길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
www.kimdonggill.com)에 5일 올린 글에서 " 이회창이 뛰어 들어 당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국민의 판단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노망든 사람도 문제지만 그를 부추기는 주변의 인물들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썼다. 이회창씨가 '노망 들었다'는 막말을 한 것이다.
보수 진영 사이트에 올라온 글 가운데는 좌파 매체가 이 전 총재 지지율을 부추기고 있는데 이는 보수 진영의 분열을 노린 범여권의 '역 선택'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한나라당 경선에서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일 때 '박빠'들의 주요 논리 가운데 하나가 "이명박 지지율이 높은 것은 본선에서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후보를 내세우기 위한 범여권 지지자들의 역선택의 결과"였다. 이런 논리를 이명박 지지자들이 사용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조중동의 일방적인 공격에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이회창의 출마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 특히 5일 조 전 대표가 자신의 홈페이지(
www.chogabje.com/)에 올린 '조중동의 '이회창 두들겨패기'는 왜 효과가 없는가?'라는 글은 눈에 띈다.
조중동 출신인 그가 조중동을 비판하는 모습이 과거 조중동 출신 박근혜 캠프 인사들이 조중동의 일방적인 '이명박 편들기'를 맹비판하던 모습과 겹쳐진다. 더구나 조 전 대표는 한나라당 경선 때 이명박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했었다.
아무튼 조 전 대표는 이 글에서 "나의 기억으로는 세 신문이 거의 같은 논로로써 한 정치인을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비판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며 "조중동의 이회창 두들기기는 언론의 정도를 벗어났다"고 비판했다.
그는 "조중동 3대 신문의 집중폭격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지지율은 떨어지기는커녕 그 기간에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이는 독자들의 반란이다, 보수층의 이명박에 대한 이념적 배신감을 제대로 읽지 못한 논조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분노의 핵심은 이명박 후보에 대한 이념적 배신감"이라며 "'이번 선거는 친북좌파 대 보수우파의 대결이다'고 경선 직후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에게 말했던 이명박 후보의 모습은 그 뒤 실종되었다"고 비난했다.
기자가 조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한나라당 경선 때는 이명박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더니 이제는 왜 갑자기 입장이 바뀌었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는 그런 일 없다, 나는 누구를 개인적으로 지지한게 아니라 그 행동을 본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