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주대.
천년의시작 제공
언제나 목이 잠겨 있는 조그맣고 눈 맑은 사내 아니, 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서울 화곡동 허름한 목로에서였다. 엄청난 속도로 술잔을 뒤집던 그는 21세기 사람답지 않게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문학만을 이야기했다.
이윽고 술이 오른 그는 듣기에도 무시무시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시를 모르는 것들은 다 죽여버리고 싶다." 어떤 사람도 문학의 효용성과 시의 위대함을 이야기하지 않는 21세기 벽두. 그날의 기이했던 기억이 낡은 벽화처럼 아직도 선명하다.
바로 그 사람, 김주대가 민주화의 함성이 한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1990년대 초반, 대학 4학년 어린 나이에 '공안통치분쇄와 민주정부수립을 위한 범국민대책본부' 부대변인을 맡았으며, 스물 넷엔 <민중시>와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 시집을 낸 문인이라는 것을 안 것은 한참 후였다.
며칠 전이다. 아침에 울린 전화벨. 김주대였다. 새 시집이 나왔다고 했다. 첫 시집 <도화동 사십계단>(청사)이 출간된 게 1990년 11월이니 자그마치 17년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 것이다. 기쁘게 건네 받아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꼼꼼히 읽었다.
아, 이런 느낌을 어떻게 필설로 형용할 수 있을까? 편편이 절창인 그의 두 번째 '자식' <꽃이 너를 지운다>(천년의시작)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기자는 이렇게 한탄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를 왜 이제서야 들려주는 것인가."
아래, 짧은 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슬픈 속도'를 함께 읽어보자.
새벽
아버지의 칼을 피해 도망치던 어머니처럼
고주망태 아버지의 잠든 틈을 타 잽싸게 칼을 숨기던 형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녀석의 그림자 돌아보면
모든 속도가 슬프다.자신과는 무관하게 시위를 떠난 화살의 속도로 지나온 세월. 그리고, 의지와는 다르게 세파에 시달리며 얼굴 가득해진 잔주름. 시인에게 세상이 강제하는 '속도'는 독성 강한 청산가리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해사하고 눈물 많던 스물셋 소년을 생활에 찌든 마흔둘의 아저씨로 바꿔놓은 세상의 속도. 하지만, 김주대는 이를 한탄해 주저앉지 않았다. 그렇다. '희망의 발견'을 시인 외에 누가 해줄 것인가. 예컨대 이런 시다.
위층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저것들은 사랑하고 있다걱정할 것 없다.
- 위의 책 중 '신혼부부'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