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 캄캄하잖아?" "영감, 저기 달 좀 봐요?"
송유미
칼로 물 베기의 사랑"영감 아무래도 나 안 되겠어요. 저기 좀 앉았다가 가요."
할머니는 이제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나무라듯이 말씀하십니다.
"그거 보라구. 내가 뭐라고 했어? 혼자 집에 있으면 내가 얼른 휴지를 사 올텐데… 꼭 따라와서… 힘들잖아. 이제 앞으로 휴지 같은 건 좀 비싸도 구멍가게에 사자구."
"영감, 저 달 좀 봐요 ? 너무 환해요."
"달이 환한 거 처음 봤어?"
"영감… 미안해요."
두 분이 일어서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귀가할 수는 없어 발걸음을 먼저 재촉했습니다. 휴지 하나 사기 위해 하루의 나들이로 잡은 노부부의 일상 속에 흘러나오는 대화 속에서, 서로를 끔찍하게 생각해 주고 위해주는 부부 일심동체의 아름다운 사랑에 감동 받았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말씨는 무뚝뚝해도 할머니를 바라보는 부드러운 눈빛에서 할머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져 왠지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부부란 두 개의 반신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이다"는 고흐의 말이 문득 떠올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유명 연예인들의 잇단 이혼 소식도 씁쓸하게 떠올려졌습니다.
노란 달이 자꾸 따라오는 귀갓길, 낙엽은 발밑에서 사각사각 소리내며 무언가를 속삭이는듯 이 만추의 아름다움을 노부부의 나직나직한 속삭임처럼 들려주었습니다.
"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 서정주 '무등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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